[편집국에서] '이준석 돌풍', 민주당이라면..

구혜영 정치부 선임기자 2021. 6. 1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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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국민의힘 전당대회 전날(10일)인 지금까지도 나는 이준석 돌풍이 정치 발전을 몰고 올 것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제1야당의 유력 대표 후보가 젠더라는 시대 가치를 뒤집고 혐오를 유발하는데, 후기자본주의가 저무는 때 능력주의를 외치는데 어디에 미래가 있고, 도대체 어디에 대의가 있단 말인가. 낡은 정도가 아니라 틀렸고, 오히려 퇴행이다.

구혜영 정치부 선임기자

그럼에도 심상치 않다는 직감이 든 것은 지난 3일 이준석 후보가 대구에서 “탄핵은 정당했다”고 연설한 뒤부터다. 박근혜 키즈가 보수의 심장부에서 탄핵이 옳았다고 호소했다. 당 핵심 지지층은 과거를 버리는 한이 있어도 미래와 가겠다며 이 돌풍에 올라탔다. 전략적 지지가 ‘대놓고’ 지지로 바뀐 순간이다. 여론이 적극적으로 반응한다면 내 소신과 달라도 폄훼보다 이유를 살피는 게 정치 기자의 자세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준석 돌풍’은 10년 전 ‘안철수 현상’을 소환한다. ‘안철수 현상’은 기성 정치가 싫었던 2030세대, 박근혜(친박)가 싫었던 중도·보수, 친문이 싫었던 호남이 불러온 바람, 즉 ‘퍼펙트 스톰’이었다. 기득권 정치에 대한 불신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이준석 돌풍’과 유사하다. 하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다. ‘이준석 돌풍’은 정당 안에서 촉발됐다. ‘안풍(安風)’은 정당 밖에서 시작됐지만 집권여당 후보임에도 정권교체 이미지를 선점한 박근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후보가 흡수했다. ‘안풍’의 실패 요인이다. 양당제 정치에선 정당 내부의 변화가 관건이라는 의미다. 이 때문에 상대 정당의 환골탈태는 ‘○○○ 현상’의 영향력을 넘어 성패까지 가늠할 수 있다. ‘이준석 돌풍’이 더불어민주당에서 가능했을까라는 질문은 그래서 중요하다. 당 안팎 인사들에게 물었다. 결론은 ‘불가능하다’였다.

내부 환경이 문제라는 지적이 많았다. 사회·경제적 권력을 쥔 4050세대가 중심인 이상, 이들의 힘을 젊은 세대가 깨지 못한다고 단언했다. 한 당직자는 “당 플랫폼이 너무 낡았다. 2002년 대선 이후 그대로다. 노무현 정부 인사들이 문재인 정부의 한 축”이라고 했다. 보수 주류인 영남 엘리트는 약해졌지만 진보 주류는 20년간 공고한 기득권을 유지했다. ‘이준석 돌풍’이 기성 정치에 대한 반발이라는 점에서 민주당은 젊은 세대에 갈아엎을 땅 한 귀퉁이도 주지 않았다는 고백이다.

기득권을 지탱한 힘은 정체성 정치였다. 정체성 정치는 협소하고 배타적이다. 사회적 약자들의 어렵고 복잡한 고통을 해결하는 대신, 편을 갈라 정체성을 앞세우면 쉽게 정치할 수 있다. 한 정치 컨설턴트는 “자신들만의 의제 실현에만 관심을 둔다. 지금도 검찰개혁에 몰두하는 것 보라”고 가리켰다. 대표가 ‘조국 사태’에 사과하자 일부 지도부가 공개 반발하고, 당 밖에선 대표 출당을 요구하는 모습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 이는 민주당의 핵심 딜레마인 당심과 민심의 괴리가 좁혀지지 않는 원인이다. ‘이준석 돌풍’이 당 내부 딜레마를 정면 돌파했다는 점에서 뚜렷하게 대비되는 부분이다.

변화와 쇄신을 절박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한 30대 청년은 “민주당은 ‘바꾸면 죽는다’는 정서가 강하다. 국민의힘 바람을 모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공성전보다 수성전에 3배의 실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부동산 정책 혼선을 보면 실력 있게 지키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현실만 보면 민주당은 ‘이준석 돌풍’ 무풍지대다. 물론 부동산 투기 의혹자 출당 조치, 박용진 의원의 빅3 후보군 진입 등 변화가 없는 건 아니다. 정치는 필연적으로 정(기득권)·반(역동성)·합(조정)을 거치게 마련이다. 지금 시민들은 진보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그럼 민주당은 다른 얘기를 해야 한다. ‘이준석 돌풍’이 시발점이 되더라도 치열한 내부 투쟁은 민주당의 몫이다.

다시 ‘이준석 돌풍’의 내부를 들여다본다. 여전히 이준석 ‘돌풍’을 ‘현상’이라 쓰는 데 주저하고 있다. 브레히트가 알렉산더에게 했던 질문이 솔직한 심경이다. 알렉산더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점령한 정복자이자 동서양 문명교류의 영웅이라고 역사는 기록했다. 그 영웅에게 브레히트는 묻는다. “젊은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다. 그가 혼자서 해냈을까? … 역사의 페이지마다 승리가 나온다. 승리의 향연은 누가 차렸던가.” 11일 오후면 ‘이준석 돌풍’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준석 돌풍’은 이 후보 개인이 끌고 왔지만 이후 국민의힘과 이 후보가 함께, 제대로 변하지 않는다면 더 큰 승리의 향연은 누릴 수 없다. 이준석 ‘현상’도 물론 없다.

구혜영 정치부 선임기자 koo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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