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40] 부끄러운 역사도 남겨야 한다

허윤희 문화부 차장 2021. 6. 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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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친필 새긴 한국은행 머릿돌
문화재위, 만장일치 보존 의결
치욕의 역사도 남기고 되새겨야
부끄럽지 않은 미래 가능하다
이토 히로부미의 친필 글씨 ‘定礎’(정초·주춧돌을 놓음)를 새긴 옛 한국은행 본관 머릿돌. 최근 문화재위원회에서 보존하기로 결론이 났다. /문화재청

철거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글씨 머릿돌’을 보존하기로 최근 결론이 났다. 문화재위원회 근대분과는 지난달 26일 회의에서 옛 한국은행 본관(사적 280호)의 머릿돌 관리 방안을 심의한 끝에 돌을 그대로 두고 설명 안내판을 따로 설치하기로 의결했다. 머릿돌에는 한반도 식민지화에 앞장섰던 초대 조선통감 이토의 친필로 ‘定礎’(정초·주춧돌을 놓는다는 뜻)가 새겨져 있다.

논란은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전용기 의원이 이토 친필설과 함께 처리 방안을 질의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전 의원은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 민족의 원수인 이토 히로부미의 친필이 남겨져 있다는 것은 굉장히 부적절하다”며 “저는 건물을 없애자는 것도 아니고 정초석 하나 옮기자는 주장을 하는 거고…”라며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후 문화재청은 전문가 조사를 벌여 이토 친필이 맞다는 결론을 발표했다. 한국은행이 제시한 방안은 세 가지다. ①머릿돌은 그대로 두되 이토의 글씨라는 안내판을 설치 ②머릿돌 글씨 부분을 석재로 덮어 씌우기 ③머릿돌 철거 후 독립기념관으로 이전. 근대분과의 한 문화재위원은 “원형을 유지하고 안내판을 설치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됐다”고 했다. 돌을 철거하거나 글씨를 새긴 표면을 덮어 흔적을 지우는 것은 단순히 ‘정초석 하나 옮기는’ 문제가 아니라 문화재에 대한 또다른 훼손이기 때문이다.

이번 논란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옛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과정이 떠올랐다. 1993년 김영삼 정부는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기로 했다. 이때도 찬반 논란이 뜨거웠다. “일제 침략의 상징이자 치욕의 흔적인 총독부 건물을 철거해야 한다”는 의견과 “그럴수록 보존해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견해가 팽팽히 맞섰다. 완전 철거, 원위치 보존, 이전 복원 등 여러 의견이 나왔으나 끝내 완전한 철거를 강행한 대목은 두고두고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광복 50주년인 1995년 8월 15일 중앙돔 첨탑을 해체하고, 이듬해 11월 전체 건물이 폭파되는 장면이 중계되면서 통쾌한 감정을 느낀 국민도 많았을 것이다.

‘네거티브 유산’에 대한 철거 논란이 반복될 때마다 우리가 간과하는 게 있다. 총독부 건물은 일제 36년간의 역사만 담고 있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 건국의 산실이자 우리 현대사의 역사적 기념물인 중앙청이었다는 것. 총독부 건물 철거는 뒤집어보면 대한민국 산업화와 근대화의 현장을 우리 손으로 깨끗이 부숴버렸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한국은행 본관 건물은 1909년 주춧돌을 세운 뒤 1912년 조선은행 본점으로 준공됐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경제 수탈을 위해 일본이 세운 건축물이지만, 광복 이후 1950년부터 한국은행 본관이었고 6·25전쟁 때 폭격으로 내부가 불에 탄 뒤 1958년 1월 임시로 복구했으며, 1989년 5월 원형 복원해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토의 흔적을 지우면 당장 속이야 후련하겠지만, 수탈의 증거와 함께 현대사의 현장을 우리 손으로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다행히 근래 들어선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네거티브 유산을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치욕의 순간을 간직한 유산이라고 해서 눈앞에서 없애버린다고 그 시간까지 도려낼 수 있는 건 아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현장인 아우슈비츠 수용소나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유적지처럼, 남기고 알려서 과거에서 어떻게 교훈을 얻을지 되새겨야 한다. 부끄러운 역사를 남겨야 부끄럽지 않은 미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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