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진화의 여정, 그리고..미래는 '가능'한가

배문규 기자 2021. 6. 10.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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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기획특별전 '호모 사피엔스 : 진화 ∞, 관계&, 미래?'

[경향신문]

왼쪽부터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700만~600만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320만년 전),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180만년 전),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7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3만2000~3만년 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루시에서 수백만년의 시간을 지나
현생인류에 다다르는 생존의 자취
6번째의 절멸이 다가온다는 지금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대한 ‘성찰’

커튼을 젖히면 28개의 두개골이 관람객을 맞는다. 키가 허리춤에 머무는 것부터 눈높이가 맞는 것까지, 장관이다. 맨 앞줄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는 700만년 전 아프리카 초원을 두 발로 휘청이며 걷던 초기 인류다. 두개골 위에 가만히 손을 얹어본다. 손아귀에 들어올 정도로 작다. 이어 ‘루시’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 호모 에렉투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수백만년 시간을 지나 마지막 줄에 다다르면 현생인류라고 불리는 3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를 만난다. 뻥 뚫린 안와를 응시해본다. 턱을 딱딱 부딪쳐 말을 건넬 거 같다. ‘누구냐 넌?’

국립중앙박물관 기획특별전 ‘호모 사피엔스: 진화∞, 관계&, 미래?’는 700만년에 걸친 인류 진화의 여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시다. 날카로운 발톱도 강한 힘도 없는 인간은 오늘날 우주를 여행할 정도로 ‘전능한’ 존재가 됐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은 대자연 앞에서 인간이 미약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전 지구적 재앙으로 ‘인간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때 박물관이 할 수 있는 기획은 질문을 틀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어디서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렀는가. 진화적 관점에서 본 인간 존재의 의미와 진화 과정에서 맺어온 다양한 생물종과의 관계를 화석과 유물 등 700여점의 전시품과 영상으로 풀어냈다.

국립중앙박물관 기획특별전 ‘호모 사피엔스: 진화∞, 관계&, 미래?’에선 700만년에 걸친 인류 진화 과정을 고인류의 두개골과 모형으로 펼쳐 보인다. 다양한 전시품과 함께 매머드 3D 프린팅, 3D 모션 캡처 영상물 등 새로운 기법으로 엮어냈다.

전시는 ‘프롤로그: 진화를 이해하는 방식’ ‘진화’ ‘지혜로운 인간, 호모 사피엔스’ ‘에필로그: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로 구성됐다. 프롤로그에선 직립보행, 도구, 기호와 언어, 장례식, 사냥 등 앞으로 전시의 키워드가 되는 영상으로 워밍업을 한다. 이어 만나는 것이 인류의 진화 과정이다. 전시장 초입에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경전처럼 있고, 거기로부터 두개골이 펼쳐져 있다. 시간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일종의 ‘입체 연표’다.

전시에선 ‘인류의 진화’가 단선적 과정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흔히 고인류가 구부정한 모습이었다가 이후 두 발로 걷고, 손에 도구를 쥐고, 체형이 날씬해지는 장면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진화 모델은 최근 연구들이 쌓이면서 나뭇가지 모양이나 강줄기 모양 등 복잡한 모델로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진화는 특정한 환경 조건에 대한 적응이며, 진화의 산물이 최상의 결과는 아니다. ‘극심한 환경 변화 속에서 인류가 어떻게 적응해 왔는가’라는 전시의 서술은 ‘인간 존재가 다른 동물과 얼마나 다른가’라는 성찰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참고로 인간의 유전자(DNA)는 침팬지와는 98.8%, 고릴라와는 98.4%, 오랑우탄과는 96.9%, 닭과는 75%, 바나나와는 60% 정도를 공유한다고 한다.

다음은 동굴이다. 라스코, 쇼베 등 구석기 시대 후기의 동굴 벽화를 영상으로 재현했다. 눈에 익은 황소, 사자에 이어 펭귄 세 마리가 등장한다. 구석기 시대 프랑스까지도 무척 추웠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호모 사피엔스는 유럽에서 시베리아까지 넓은 지역을 이동하며 많은 유적을 남겼다. 그중 독일 슈타델 동굴에서 발견된 ‘사자인간’은 반인반수의 형상을 상아로 만든 것이다. 4만~3만5000년 전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고대 조각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허구를 믿는 능력이다. 상상력, 더 나아가 예술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손바닥만 한 크기에 놀랄 것 같다. 그저 ‘다산의 상징’으로 등치시키던 ‘비너스’(고대 여성 조각상)들에서 당시 직조 기술과 의생활, 더 나아가 여성의 역할까지 읽어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코로나19로 해외 유물 반입이 어려웠다고 한다. 대신 연구자들이 사용하는 재현품을 가져왔다. 좋은 점도 있다. 유리 부스 바깥에 있는 대다수의 유물을 직접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교과서에서나 보던 뗀석기도 만져보자. 전시 개막 몇 주가 지났는데도 종이가 베어진다. 다양한 체험으로 인간에 대한 탐구를 제안하는 흥미로운 전시다.

전시에선 “다른 피부색, 다른 언어, 다른 가치관에도 우리는 모두 같은 호모 사피엔스 종입니다”라고 핵심 메시지를 던진다. 지구상에 생명이 탄생한 이래 5차례의 멸종이 있었다. 인간이 초래한 환경오염과 기후위기로 오늘날 6번째 대멸종이 이야기되고 있다.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우리는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고민으로 이어진다. 연약한 개인이던 호모 사피엔스는 소통하며 협력한 덕분에 위기를 극복해왔다. 다른 미래는 가능할 것인가. 전시는 9월26일까지.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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