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가 공문엔 '위층부터 해체'..실제론 '아래층 먼저 철거' 포착
[경향신문]
4·5층 두고 저층부터 해체
업체 “9일 시작”했다지만
그전부터 이미 공사 들어가
버스정류장 위험성도 감지
시, 안전 공문 4번 무용지물
건물 붕괴로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에서는 두 달여 전에도 이번 참사 현장 인근에서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 지난 4월4일 광주 동구 계림동에서 공사 중이던 주택이 무너져 노동자 2명이 숨졌다.
이 사고를 계기로 광주시는 안전점검이 필요하다고 보고 5개 자치구에 모두 4차례나 공문을 보냈다. 시는 4월6일 “공사 현장을 점검해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를 철저히 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시작으로 4월8일, 4월30일, 5월27일 비슷한 내용을 안내했다.
하지만 사고는 또 일어났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건설 현장을 철저하게 관리·감독하도록 4차례 공문으로 지시했음에도 이런 사고가 발생해 안타깝다”면서 “재개발·재건축 현장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도 시가 직접 나서겠다”고 했지만 돌이킬 수 없게 됐다.
학동4구역 재개발지역 내 건축물 철거공사를 맡은 업체가 관할 구청에 제출한 ‘해체계획서’대로 하지 않은 정황이 나오고 있다. 철거업체는 재개발구역 내 건물 10채의 해체계획서를 제출하고 지난달 25일 해체 허가를 받았다. 철거 대상 건물에는 지난 9일 무너진 5층 규모 건물도 포함됐다.
계획서상에는 3층까지 해체 완료 후 지상으로 장비를 옮겨 1~2층을 해체하는 것으로 돼 있다. 철거 공법은 무진동 압쇄였다. 이 공법은 방진벽과 비산먼지 차단벽이 필요하다. 먼지가 많이 발생해 물을 뿌리는 살수시설이 필수다.
업체 측은 사고가 난 9일에야 본격적으로 해당 건물 철거를 시작했다고 밝혔지만 시민들이 제보한 영상과 사진에는 지난 1일부터 4~5층을 그대로 둔 채 굴착기가 3층 이하 저층 구조물을 부수는 모습들이 포착됐다. 광주 동구 관계자는 “제출된 작업 순서로는 위층부터 해체해야 하는데, 건물이 넘어진 각도 등을 봐서는 아래서부터 작업을 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공사도 서두른 것으로 보인다. 업체는 구청에 제출한 계획서에서 오는 6월30일까지 철거공사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9일 철거 도중 붕괴된 건물이 사실상 해당 지역에 남은 마지막 건축물이었다.
박종국 경기노동권익센터 소장은 “하도급 철거업체는 공사 기간을 단축시켜야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에 관행적으로 안전수칙을 무시한 채 속도전으로 작업한다”며 “보강 구조물 없이 작업해 공사 도중 건물이 내려앉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현장에는 위험 상황을 관리·감독해야 할 감리자도 없었다. 지난해 개정된 건축물관리법에 따라 500㎡ 이상, 3층 초과 건물 철거 시 지자체 허가와 건축물관리점검(감리)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동구는 재개발조합 측이 철거 과정에서 감리자가 현장에 상주하지 않는 ‘비상주 감리’ 계약을 맺은 것엔 큰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 다만 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지만 작업의 위험도를 고려하면 현장에 감리자가 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체는 건물 앞 버스승강장의 위험성도 감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당 승강장에 정차하는 버스는 19개 노선이나 된다. 업체는 사고 당일 신호요원을 두고 승강장에 들어오는 버스를 건물을 벗어나 정차하도록 더 앞쪽으로 유도했다. 이는 인근 건물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
하지만 구청에 정식으로 승강장 이설 요청은 하지 않았다. 임택 동구청장은 “승강장을 옮기는 것은 시공업체의 요청이 있을 때 검토한다”며 “더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고 말했다.
강현석·오경민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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