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목 칼럼] 사법적폐 청산의 허구

2021. 6. 10.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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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피해자들을 돕도록 설계된 단체는 피해자들을 돕는 것이고, 아니면 정치단체나 만들어 정치행위를 하란 말이다. 정말로 피해자들을 도왔는지는 명명백백하게 검증하면 될 일이다. 위안부 할머니 문제를 공론화시켜 그동안 얼마나 커다란 공적을 쌓았는지는 별도의 문제이고, 그걸 이용해 정치인들을 후원하고 사리사욕을 채웠는지 여부를 묻는 거다.

위법행위가 있어도 공적이 커서 면책이 될 수 있는지 여부는 모든 걸 알아야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일반인들이 회계감사나 재판을 받으면 지옥이다. 법원은 이 문제에 대한 재판을 8개월째 공전시키고 있다.

필자는 2019년 9월 24일 일제 강제징용 배상금 판결 문제와 관련하여 국회 세미나에 발제자로 참석했다.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이 국제법 위반임을 설명했다. 반발할 줄 알았던, 강제징용 피해자 모임 대표가 오히려 필자의 견해가 "정답"이라고 소리치며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중간에 낀 인권변호사들이 막아왔다고 호통 쳤다.

피해자들이 원하는 건 일본 때리기가 아니라 정당한 보상이다. 일본측이 배상하는 게 국제법적으로 불가능한 데도 무한정 일본을 압박하는 것이 정치적 선명성과 지지세력 규합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집단이 피해자들을 대변하도록 구조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작 피해자들은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개인 비용만 지출하는데 돌아오는 건 없다는 것이다. 이젠 소송대리 변호사가 발언하기만 하면, 즉자적으로 피해자 대표가 오히려 반발하는 상황이 연출됐었다.

최근 6월 7일에서야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을 서울중앙지법에서 뒤집었다. 2018년 대법원 판결의 핵심은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금은 한일청구권협정의 대상에서 제외된다(다수의견)"는 것과 "사적 청구권은 정부가 협정체결로 소멸시킬 수 없다(별개의견)"는 것이다. 협정은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청구권 문제가 한일간에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다"고 명시하고 있는데도, 그 적용범위에서 '배상' 청구권만을 떼어내어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해 일본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해버렸다.

또 협정은 개인의 청구권 문제를 양국간에 '해결'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도, 마치 협정이 개인의 청구권을 '소멸'시키기로 합의한 것처럼 해석해버렸다. 협정에 '소멸'이라는 단어는 없다. 일본정부가 총 5억달러 규모의 자금을 제공하면서 한국정부로 하여금 개인의 청구권 문제까지 포괄 처리하는 것으로 양국간에 '해결'한 것이다. 실제로 이 합의를 기초로 한국정부가 피해자들에게 부분적이나마 배상금을 지불해왔다.

자신의 비리의혹을 떳떳하게 밝히지도 못하는 자가 법 앞에 군림하는 모습을 연출하며 국민의 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나라. 그런데도 "윤미향은 조국과 다르다"고 주장한 사람이 집권여당의 당수였던 나라. 그 나라에서 공적자금사용에 대한 재판이 8개월째 열리지 않고 있다. 한일청구권협정의 해석을 놓고, 대법원이 사안의 초점을 흐리며 무너뜨린 사법정의는 2년 반 동안 한일 통상보복과 적폐놀음으로 이어졌다.

지금이라도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금을 일본기업에 떳떳이 요구할 수 있는 방법은 따로 있다. 정부가 일본측으로부터 받은 5억달러 중 손실보상이 아닌 손해배상액 성격의 액수를 추정하여 계산해내고, 이를 일본측에 돌려주면서 협정의 해당합의 부분의 효력을 파기선언하면 된다. 그러면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청구권"이라는 말을 억지로 축소 해석할 필요 없이, 아직 살아있는 배상청구권에 대해 일본측이 배상하라는 논리가 선다.

정부가 그렇게 하지도 않고, 협정상의 국제중재 절차에서 판정을 받아보자는 일본측의 제안도 거부하면서, 대법원 판결을 통해 일본 때리기로 직진한 게 검찰개혁·사법적폐 청산을 외쳐댔던 기간 동안에 벌어진 일이다. 이런 '내수용' 논리로는 워싱턴을 설득하기는커녕 비정상국가 이미지만 굳어졌다. 법과 조약은 정치과정을 통해 탄생되지만, 국내정치의 시녀로 전락하는 걸 막는 게 법치주의이고 적폐청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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