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천 칼럼] 역풍의 시간: 이준석 현상, 제대로 보고 있는가

한겨레 2021. 6. 10.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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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천 칼럼]이준석은 세대교체 기수를 자처하며 그렇게 인정받는다. 진보개혁 성향 학자들도 이준석을 치켜세운다. 어떤 이는 이준석의 '싸가지 없는' 능력주의와 엘리트주의조차 부족주의에 비하면 '자유주의로의 진화'이며 판을 '흔드는 행위 자체가 선'이라 주장한다. 이준석이 세대교체 민심을 여는 '병따개'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이병천 l 강원대 명예교수·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

포스트 문재인으로 가는 한국 정치는 다시 전환의 기로에 섰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짓누르는 불평등과 차별, 일자리 불안, 주거 불안, 삶의 불안은 여전하다. 각자도생을 강요하는 삶의 조건 속에 밀려든 배신감과 불신감, 분노가 거센 반사적 역풍을 불게 했다. 보수 변화의 선두에 세대교체 열망을 등에 업은 ‘이준석 돌풍’이 일고 있다. 당대표 경선 과정을 보면 이제 국민의힘 지지층이 이준석 후보를 대안으로 선택한 모양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대선 도전 의지를 굳히고 있다. 이로써 국민의힘은 대선 가도를 드라마틱하게 연출할 수 있게 됐다.

더불어민주당이 부동산 대책이라며 ‘공시가격 상위 2%’ 종부세 완화안(부자감세나 다름없다)을 내놓는 건 뭐 하자는 걸까. 그들이 표방한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은 어디로 간 걸까. 문 대통령이 재벌 중대범죄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세우고 사면권을 제한하겠다고 한 약속을 태연히 깨고 이재용 사면 의사를 밝히자 ‘가석방도 가능하다’며 맞장구를 친다. 민주당이 생각하는 공정이란 이런 걸까. 조국의 시간과 이준석의 시간이 경쟁하면 어찌 될까?

보수가 이끄는 변화 바람이 거세게 부는 가운데 ‘공정’이 소환되었다. 한국 정치의 시대정신으로 재소환된 공정은 어떤 것일까? 공정 가치의 실체 여하에 따라 변화의 실체도 크게 달라진다. 공정한 경쟁, 공정과 상식, 공정소득 등 여러가지다. 민주당 쪽 이재명 경기지사는 기본소득과 함께 공정성장을 주장하지만 그 의미가 아직 분명하지 않다. 공정프레임 전쟁에서 선두 주자가 이준석인데 그가 내건 깃발은 ‘공정한 경쟁’이다. 그 실체를 알아야 한다.

이준석은 세대교체 기수를 자처하며 그렇게 인정받는다. 진보개혁 성향 학자들도 이준석을 치켜세운다. 어떤 이는 이준석의 ‘싸가지 없는’ 능력주의와 엘리트주의조차 부족주의에 비하면 ‘자유주의로의 진화’이며 판을 ‘흔드는 행위 자체가 선’이라 주장한다. 이준석이 세대교체 민심을 여는 ‘병따개’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런데 이런 평가에는 뭔가 착각이 있는 듯하다. 이준석이 세대교체 열망을 타고 있는 건 맞고 이걸 ‘이준석 현상’으로 부르는 것도 좋다. 하지만 정말 그가 구태정치를 깨고 세대교체 열망을 실현할 수 있는 인물, 전향적 보수혁신을 가져올 정치인일까. 매우 불평등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약육강식의 실력경쟁으로, 여성과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차별하고 혐오하게 해 ‘이대남’의 지지를 얻는 전략으로 새로운 전향적 변화와 보수혁신이 일어날까?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저자 조지 레이코프는 우리가 공정 착각에서 벗어나도록 피와 살이 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에 따르면 공정이라는 개념 안에는 공통 부분(치우침 없는 분배라는 부분)과 진보, 보수로 갈라지는 분쟁(contested) 부분이 같이 들어 있다. 대학의 소수자 우대 정책을 보자. 진보주의자에게서 이 정책은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에 대한 차별 및 조건의 불평등을 시정하고 공동선에 기여해야 할 대학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시행된다. 진보주의자는 타인의 상황에 대한 공감(empathy)의 눈을 통해 공정을 보며 소수자 우대 원칙은 공정하고 올바른 정책이다.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자력 성공이란 원칙으로 공정을 바라본다. 당신이 위험한 하청노동이나 배달노동을 하고 있다면, 칙칙한 지하에 살고 있다면, 좋은 대학에 다니지 못한다면, 여성이든 청년이든 절망하고 있다면 누구 탓할 일이 전혀 아니다. 그들은 말한다. 바로 당신 탓이오! 실력 부족이오! 게으름 피우지 말라! 열심히만 하면 누구든 ―이준석처럼!― ‘성공’할 수 있다. 자기규율과 실력경쟁으로 성공해야 한다. 그들의 눈에 당연히 소수자 우대 정책은 불공정하고 비도덕적이다. 노력해서 얻지 않은 특혜를 주는 것이다.

보수적 공정경쟁 세계에서 너와 나를 연결해주는 공감, 불평등 체제의 구조개혁과 제 조건의 평등에 기반한 공정한 사회, 사회적인 것은 증발된다. 레이코프는 공정의 이름으로 불평등과 차별을 옹호하며 각자도생과 약육강식 정글을 미화하는 보수의 프레임 함정에 진보주의자들이 빠질 위험에 대해 경고한다.

공정을 쟁투적 개념으로 풀이하고 코끼리(보수)가 치는 함정에 빠지지 말고 너의 길을 가라는 레이코프의 말은 지금 한국에서 공정을 둘러싼 분분한 논란, 무엇보다 이준석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 좋은 충고다. 이준석이 내건 공정경쟁 담론이 전혀 새로운 게 아니고 약육강식의 정글보수 프레임에 줄을 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준석은 기득권 정치를 넘어 세대교체를 부르짖는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한다. 약자가 처한 불평등하고 차별로 가득 찬 조건을 미약하나마 균형 잡게 하는 할당제를 불공정할뿐더러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이준석은 약자의 정치를 무장해제시키고, 젊은 세대에 대해서도 새 희망을 주기는커녕 그들을 동원하며 희망을 고문하는 자의 얼굴을 갖고 있다.

이준석은 대담집 <공정한 경쟁>(216, 220쪽)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두가 자유로운 세상은 정글이죠. 또한 정글에는 나름의 법칙이 있습니다. 약육강식입니다. 강자가 다 먹는 세상이죠. 미국은 이런 정글의 법칙, 약육강식의 원리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아요. … 그것이 자연의 섭리라고 보는 것이죠. … 저는 한국이 경제적으로 다시 도약해 선진국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국식 자유의 가치를 사회 전반에 받아들이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정글보수주의자가 보수혁신의 아이콘, 세대교체의 기수란 말인가.

마거릿 대처는 “사회는 없다”라는 말을 했다. 기후위기와 함께 극적으로 심화된 불평등 위기 상황, 그에 따른 삶의 불안 극복이 한국은 물론 전세계적 과제가 된 시대에, 이준석은 철 지난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 박근혜식 ‘줄푸세'(세금을 줄이고 규제를 풀고 법질서를 세움)를 불러내고 혐오 정치를 활용한다. 조건의 평등과 시민적 공동선을 제창하며 능력주의에 선 공정의 착각에서 벗어나자고 일깨운 마이클 샌델을 이준석은 ‘약장수’로 비하한다. 그는 심지어 박정희 개발독재를 사회주의적 전체주의 또는 공산주의 방식이라 간주할 정도로 극우 성향의 시장주의자다. 대처처럼 이준석의 머리에도 ‘사회’라는 게 있을까 싶다. 그의 언어세계에서 ‘사회통합’이라는 말은 잘 찾기 어렵다. 이준석의 정체란 혹시 대한민국을 진짜 ‘헬조선’으로 만들려는 자가 아닐지 묻게 된다. 이준석, 그는 누구인가. 우리는 과연 그를 제대로 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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