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업적연봉도 통상임금"..한국GM 14년 밀린 임금 지급해야

신다은 2021. 6. 1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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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3부, 원심 확정 판결
서울 서초동 대법원. <한겨레> 자료 사진

한국지엠(GM) 사무직 노동자들이 회사로부터 성과연봉제 개념으로 받은 ‘업적연봉’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노동자들은 소송 제기 14년 만에 밀린 임금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0일 한국지엠과 연구개발법인 지엠테크니컬센터코리아 사무직 노동자 1천여명이 2007년 제기한 통상임금 체불소송 재상고심에서 한국지엠 쪽의 상고를 기각하고 ‘밀린 임금을 근로자들에게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한국지엠 사무직 노동자들이 2004년부터 2007년까지 3년 동안 받은 업적연봉과 조직수당, 가족수당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시간외수당 등 각종 법정수당의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이 늘어나면 직원들이 받아야 할 임금도 늘어난다. 이에 따라 한국지엠은 새로 산정된 통상임금에 근거한 추가 임금을 노동자들에게 지급해야 한다. 한국지엠 사무직 노동조합의 설명을 보면, 이달 기준 한국지엠이 지급해야 하는 금액은 이자를 제외해도 약 80억원에 이른다.

한국지엠은 2002년 회사 노동자 임금체계를 호봉제에서 성과연봉제로 개편하면서 사무직의 정기상여금을 업적연봉으로 바꿔 각자의 성과에 따라 임금에 차이를 두도록 했다. 월 기본급의 700%에 전년도 인사평가에 따른 인상분을 더한 뒤 그 총액을 12개월치로 나눠 지급하는 식이었다. 노동자들에겐 사실상 임금의 일부나 다름없었지만 회사는 노동자마다 지급하는 금액이 다르다며 이를 통상임금에서 제외했다. 2005년 노조를 조직한 사무직 직원들은 ‘업적연봉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며 한국지엠에 임금 추가분을 요구하는 소송을 2007년 제기했다.

대법원은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따라 업적연봉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쪽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의칙은 권리를 행사할 때 당사자가 신의를 좇아 성실히 행해야 한다는 민법 법리인데,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일정 기간마다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라고 판단하면서도 ‘노사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기로 사전에 합의한 경우’에는 노동자가 법정수당 지급을 추가로 청구해 사용자에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게 하는 건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봐 논란이 됐다. 한국지엠도 이번 사건에서 신의칙 법리를 활용해 한국지엠 노동자들의 임금체불 소송이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으나, 대법원은 업적연봉이 정기상여금과는 성격이 다를뿐더러 이를 통상임금에서 배제하자는 노사 협의가 사전에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업적연봉을 통상임금으로 본다는 법원의 판단이 확정되기까진 15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2009년 1심 재판부는 업적연봉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으나 2013년 2심 재판부가 이를 뒤집고 통상임금으로 판단했고, 2015년 대법원은 2심 판단을 유지하면서도 단체보험료, 귀성여비, 휴가비 등 노조가 함께 청구한 다른 임금 항목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봐 다시 사건을 2심 재판부인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2017년 서울고법은 대법원의 판단을 그대로 인용했고, 노조의 임금체불 청구가 신의칙에 위배된다는 한국지엠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국지엠이 이에 다시 상고해 대법원으로 사건이 접수됐고, 약 4년이 흐른 이날 대법원이 2심 재판부의 판결을 모두 유지하면서 소송이 마무리된 것이다.

이 사건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도 연관이 깊다. 이 사건 소송이 진행 중이던 2013년 5월 박 전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해 미국상공회의소가 주최한 오찬에 참석했다가 댄 애커슨 지엠 회장으로부터 ‘통상임금 문제가 해결되면 한국 시장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듣고 “통상임금 문제를 풀겠다”고 답해 논란이 됐다. 7개월 뒤인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신의칙에 따라 노동자의 임금 추가 지급 청구를 불허할 수 있다는 판결을 냈다. 근로기준법이라는 강행규정보다 신의칙이 우선할 수 있다는 취지여서 파장이 컸다. 이후 5년이 지난 2018년 노회찬 전 의원이 사법개혁특별위원회 법원행정처 질의에서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통상임금 판결에 대해 ‘BH(청와대)가 흡족해 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법원행정처 문서가 나왔다”고 밝혀 행정부가 법원 판단에 개입한 게 아니냐는 논란이 또 한 차례 불거졌다.

한국지엠 사무직 노조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어 “한국사회에 아직도 회사의 일방적이고 편법적인 임금체계로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있고 신의칙 위배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노동자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하는 사례들이 다수 있다”며 “오늘의 판결이 좋은 본보기가 되어 앞으로 이어질 통상임금 소송에 대해 법원의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회사가 요구한 부분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유감스러운 부분이며 구체적인 지급 금액에 대해서는 법원의 결정문 내용을 면밀히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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