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김학의 유죄 확정 않고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이유는

박은하 기자 2021. 6. 10.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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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뇌물수수 혐의가 1심 무죄에서 2심 유죄로 뒤집힌 것은 뇌물을 줬다는 ‘스폰서’ 최모씨의 법정 진술이 결정적이었다. 대법원이 사건을 2심 법원으로 돌려보낸 이유도 최씨의 증언 때문이었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10일 최씨가 1·2심의 증인신문 전 검사와의 면담에서 검사의 회유 등에 영향을 받아 김 전 차관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것인지 여부를 따져 다시 심리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검사의 증인사전면담 이후 이뤄진 증인의 법정증언 신빙성을 판단할 때 지금보다 더 엄격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앞서 지난해 10월 서울고법 형사1부는 1999년 뇌물공여 사건으로 수원지검에서 기소돼 유죄 선고받은 최씨가 향후 또다른 수사를 받을 경우 도움을 얻을 목적으로 2000년 10월~2011년 5월 김 전 차관에게 백화점 상품권이나 법인카드 대금, 휴대전화 사용료 등 4300여만원을 뇌물로 제공했다고 판단하고 징역 2년6개월 등을 선고했다. 최씨가 대가를 바라고 김 전 차관에게 금품을 제공했다고 본 것이다.

최씨는 수사 초기인 2019년 5월 검찰 조사에서 “(수원지검에서 기소된 사건에서) 사건 관련 청탁은 (김 전 차관에게) 안 했고, 사건에 연루돼 기소됐었다는 이야기를 (김 전 차관에게) 하며 넋두리 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1심 법정에서는 “김 전 차관으로부터 (수원지검) 사건과 관련해 본인이 수사대상자인 것 같다는 수사정보를 들은 적이 있다”고 김 전 차관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다 명확하게 증언했다.

1심 재판부는 “검찰 증언과 법정 진술이 다르며 진술이 변화한 이유가 불분명하다”며 최씨의 이 같은 진술을 믿지 않았다. 증인사전면담 제도를 통해 증인신문 전 최씨가 검찰과 면담한 사실이 있는데 이 과정에서 진술이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10일 오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보석으로 석방되고 있다. 앞서 대법원은 이날 김 전 차관의 상고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내며 보석을 허가했다. 연합뉴스


최씨는 2심에서도 동일하게 진술했다. 증언을 바꾼 이유에 대해 “아들이 연예인인데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보도가 나가서 감출 필요가 없어졌다”고 진술했다. 재판 도중 인디밴드 보컬로 활동하는 최씨 아들이 김 전 차관과 연관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2심 재판부는 최씨의 설명을 타당하다고 판단해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1심과 마찬가지로 최씨의 진술을 의심했다. 대법원은 “검사가 증인신문 전 면담 과정에서 회유나 압박 등으로 최씨의 법정진술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점을 최씨의 진술 등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한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파기환송심 역시 최씨의 입이 결정적 변수가 됐다.

파기환송심 재판을 맡을 서울고법 재판부가 최씨 발언을 신뢰할 수 있다고 본다면 김 전 차관 유죄를 인정할 수도 있다. 반면 최씨 발언을 믿기 어렵다고 본다면 무죄를 선고할 수 있다. 김 전 차관 수사팀은 이날 “증인 사전면담은 검찰사건사무규칙 189조에 근거한 적법한 조치이고 증인을 상대로 한 회유나 압박은 전혀 없었다”며 “파기환송심에서 유죄를 입증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이 검사의 증인사전면담 이후 진술의 신빙성을 평가하고 판단기준을 제시한 최초의 판례”라고 밝혔다. 증인사전면담이란 증인의 법정 증언에 앞서 증인을 신청한 당사자가 증인과 미리 접촉해 증언 방법과 절차를 설명하고 증언 내용을 확인하는 행위를 말한다. 검사는 사전면담을 통해 사건 진상을 파악하거나 증인의 진술번복을 방지하거나 허위 증언을 하지 않도록 알릴 수 있다. 변호인 역시 철저한 재판준비를 위해 증인과 사전면담을 할 수 있다. 다만 변호사 업계에 따르면 이 경우 재판부가 증언의 신빙성을 배척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김 전 차관의 뇌물수수·성접대 혐의 사건은 초동수사에 실패하고, 사건이 알려진지 6년 만에 재수사되면서 절차를 둘러싸고 잡음이 끊임없이 일고 있다. 김 전 차관의 출국금지 조치에 불법 개입한 혐의로 이모 검사와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관리본부장이 재판을 받고 있다. 서울고검장으로 승진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출국금지 의혹 수사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며, 박상기·조국 전 법무부 장관, 윤대진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전 법무부 검찰국장) 등이 검찰과 공수처에 고발된 상태이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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