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못한 가족들..'광주 붕괴 참변' 또 人災였다

이혜영 기자 2021. 6. 10. 17:1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철거 당시 해체계획서대로 진행하지 않은 정황 포착
작업 전 안전장치·통행 제한 등 곳곳서 부실 대처 흔적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6월10일 오전 광주 동구 재개발지역 철거건물 붕괴 사고 현장에서 잔해물 아래에 깔려 차체가 납작하게 눌린 시내버스를 수사 당국이 견인하고 있다. 전날 오후 4시22분께 발생한 사고로 인해 정류장에 멈춰 선 시내버스에 타고 있던 9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 연합뉴스

"미역국 챙겨주고 일나가신 어머니…고생만하다 떠나실 줄은"
"버스 탔다며 '사랑해'라고 통화했는데…어떻게 살아가나요"
"너무나도 착했던 막내딸, 못 지켜줘서 미안해"

광주에서 발생한 철거건물 붕괴 참사로 9명의 소중한 목숨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유족들은 황망하게 떠난 어머니, 아들, 딸의 모습을 떠올리며 큰 슬픔에 빠졌다. 

총 17명의 사상자를 낸 이번 참사는 철거 과정에서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철거 건물은 도로변을 끼고 버스정류장까지 바로 앞에 두고 있었지만, 안전 장치없이 가림막만 두른 채 진행됐다. 철거 작업이 진행되는 때 만이라도 보행과 도로 통제가 있었다면 인명 피해는 막을 수 있었지만 이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직접적인 붕괴 원인으로 지목된 철거 작업 과정 전반이 부실하게 진행된 흔적이 나오면서 총체적인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온다.   

광주 건물 붕괴 참변 당시 모습이 담긴 CCTV. 9일 오후 4시42분께 광주시 동구 학동 주택재개발사업 공사현장에서 철거 중이던 5층짜리 H빌딩이 왕복 6차변 도로변 쪽으로 넘어지고 있다. 이 사고로 건물 앞 정류장에 정차 중이던 시내버스가 매몰돼 9명이 숨지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 ⓒ 독자 제공

생일상 차려주고 나간 母, 생사 갈린 父女, '사랑해' 마지막 인사 전한 늦둥이 子

10일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철거 건물 붕괴로 숨진 A(64·여)씨의 둘째 아들 B씨는 황망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사고 당일인 9일, A씨는 생일인 아들을 위해 미역국을 끓여놓고 일터로 향했다고 했다. 아들이 끓여놓은 미역국을 보지 못할까 봐 다시 전화를 걸어 "미역국을 챙겨 먹으라"던 어머니였다.

형제는 그 전화가 마지막이 될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B씨는 "어머니가 항상 고생하시던 모습밖에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홀로 두 아들을 키워낸 A씨는 2년 전 법원 앞에 작은 곰탕집을 차렸다. 그러나 곧장 코로나19 사태가 터졌고 그 여파로 손님이 줄어든 탓에 A씨는 평소 점심 장사를 마친 뒤 귀가했다. 사고 당일은 아들의 생일상을 차려주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점심 장사를 마치고 시장에 다녀오는 길이었다고 한다.

집 앞 정류장까지 두 정거장을 남겨놓은 곳에서 A씨가 타고 있던 버스는 정차 중 철거 건물 붕괴로 순식간에 매몰됐다. 

타지역에 살고 있던 B씨는 지난주 주말 어머니를 뵈러 왔다가 간 게 마지막 순간이 됐다. B씨는 어머니 집에서 나설 때 "밥을 먹고 가라"는 말을 뿌리치고 그냥 돌아왔던 게 가장 후회되는 일이라고 했다.

B씨는 "철거 당시에 차량까지 안전하게 통제를 해줬으면 이렇게까지는 안 됐을 것"이라며 "행인들을 통제하면서 차량 통제를 하지 않아 결국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피해가 컸다. 그게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6월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의 한 철거 작업 중이던 건물이 붕괴하면서 정차 중이던 시내버스가 그대로 매몰됐다. 이 사고로 9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 ⓒ 연합뉴스

붕괴 참변 사고로 생사가 갈린 부녀의 사연도 전해지며 안타까움을 더했다. 

집안의 막내딸이던 C(29)씨는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버스에 탔다가 변을 당했다. 버스 앞좌석에 앉은 부친은 사고 후 구조돼 의식을 회복했지만, 뒷 좌석에 있던 C씨는 결국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C씨를 비롯해 사망자 대부분은 버스 뒷편에 앉아있던 승객이었다. 

C씨의 부친은 의식을 회복한 직후 딸의 안부를 물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C씨 시신이 안치된 광주 동구 조선대병원에서 C씨 모친은 "이렇게 갈 거면 왜 그렇게 열심히 했어. 우리 막내딸 못 지켜줘서 미안하다"고 오열했다. 

참사 희생자 가운데 가장 어린 D(17)군의 부모도 아들의 사망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비탄에 잠겼다. 고등학교 2년생인 D군은 비대면 수업이어서 등교할 필요가 없었지만, 동아리 후배들을 챙기기 위해 등교 했다 돌아오는 길에 참변을 당했다.

D군의 부친은 뉴스1과의 통화에서 "사고 발생 전 오후4시2분쯤 아들과 통화를 했고, '아빠 버스 탔어요. 집에서 만나 사랑해'라고 한게 마지막 인사가 됐다"고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평소 음악을 좋아하고 애교가 많던 늦둥이 아들을 떠나보낸 D군 부친은 "애 엄마랑 나랑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사나"라며 "공부하라는 잔소리에도 보름달처럼 해맑게 웃던 아들아, 이제는 머리를 쓰다듬지도 따뜻했던 손을 잡지도 못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너를 늘 사랑한다. 그리고 미안하다"라며 눈물을 쏟았다. 

6월9일 17명의 사상자를 낸 철거 건물 붕괴사고와 관련, 사고 발생 수 시간 전 철거 현장 장면을 촬영한 사진이 공개됐다. 철거업체 작업자들이 건물을 층별로 철거하지 않고 한꺼번에 여러 층을 부수는 정황이 포착돼 해체계획서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 연합뉴스

'가림막'만 쳐놓고…이번에도, 인재였다

이번 사고는 총체적인 안전 불감증이 낳은 후진국형 인재(人災)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점차 짙어지고 있다. 

광주 동구청 등에 따르면, 학동 4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지 철거 업체가 구청에 제출한 해체계획서를 검토한 결과 계획서를 준수하지 않고 철거를 진행한 정황이 포착됐다. 철거 업체가 이번 사고 건물을 포함해 광주 동구청에 낸 재개발구역 건물 10채의 해체계획서에는 안정성 검토 결과와 구체적인 철거 순서 등이 기재됐다.

계획서에는 굴착기 등으로 콘크리트를 파쇄하는 무진동 압쇄공법을 이용해 측벽부터 철거를 진행하기로 돼있다. 계획대로라면 위층에서 아래층 순서로 철거를 진행하고 외부벽, 방벽, 슬라브 순서로 해체한 뒤 3∼5층은 중장비 붐대가 닿을 수 있도록 성토체(盛土體)나 잔재물을 쌓아 철거한다. 저층인 1∼2층은 성토체를 제거한 뒤 철거하기로 했다. 업체는 또 층별로 구조적 안정성을 보강하기 위해 지지대를 설치하기로 했다. 

그러나 동구청은 사고 전 건물 사진이나 영상, 주민 진술 등을 종합하면 해제계획서대로 작업이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업체 측은 사고가 난 9일에서야 본격적으로 해당 건물의 철거를 시작했다고 밝혔지만, 시민들이 제보한 영상과 사진에는 이미 지난 1일부터 건물 4∼5층을 그대로 둔 채 굴착기가 3층 이하 저층의 구조물을 부수는 모습이 포착됐다.

또 지난해 개정된 건축물관리법에 따라 500㎡ 이상, 3층 초과 건물 철거 시 지자체 허가와 건축물관리점검(감리)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데 이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구청은 재개발조합 측이 '비상주 감리' 계약을 맺은 자체는 큰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지만, 위험도가 높은 해체 일정 당시 감리인이 현장에 없었던 점 등은 문제라고 판단했다.

6월10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지역 철거건물 붕괴 현장에서 국과수와 경찰 등 합동 감식반이 사고 현장을 감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철거에 투입된 현장 인력들이 붕괴 당일 이상을 감지해 모두 대피했는데, 이후 보고 및 후속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도 규명해야 할 부분이다. 이 때만이라도 차량 통제가 이뤄졌다면 안타까운 희생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하도급에 재하도급을 주는 형태여서 현장 인력들의 보고 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철거 작업 전 시내버스 정류장을 옮기는 등 보다 적극적인 안전 조치를 했어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광주와 화순을 잇는 왕복 6차로와 버스 정류장을 앞에 두고 진행된 위험한 철거공사 현장에 설치된 안전 시설물은 분진 가림막이 전부였다. 

이에 대해 임택 동구청장은 "버스정류장을 옮기는 문제는 시공업체에서 요청을 받으면 검토한다. 철거 업체 측은 안전문제를 해결했다고 판단한 것 같은데, 저희가 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임 구청장은 "업체 측이 구청에 낸 해체계획서가 적법한지, 국토부 매뉴얼 등을 준수했는지, 구청에서 제대로 확인하고 허가했는지 한 번 더 확인하겠다"고 덧붙였다. 

Copyright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