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에 충분한 표" vs "사기 징후"..페루 대선 결과 발표 3일째 지연되는 이유
[경향신문]
“이 정도면 승리하기에 충분한 표”라는 좌파 지지자들과 “사기 징후가 있다”며 맞서는 우파 진영. 좌우 양극단 포퓰리스트 후보 두 명의 대결로 펼쳐진 페루 대선 당선자 발표가 투표 사흘째인 9일(현지시간)까지 이뤄지지 않자 양측 지지자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극과극 성향의 지지자들은 서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이겼다며 시위를 벌였다.
페루 현지 안디나통신에 따르면, 10일 오전 2시 기준 개표가 99.998% 진행된 상황에서 ‘좌파’ 자유페루당의 페드로 카스티요(51)의 득표율은 50.204%를 기록하고 있다. ‘우파’ 민중권력당의 게이코 후지모리(46)는 49.796%로, 두 후보 간 득표율 차는 불과 0.408%포인트 차다. 현재 표차는 7만표 가량이다.
뒤늦게 도착한 재외국민 표가 속속 개표되면서 후지모리가 격차를 좁혀갔지만,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수만 표 차이로 승부가 갈릴 수 있기 때문에, 개표 과정에서 추가 검토가 필요한 것으로 분류된 투표용지 30만장이 최종 결과를 좌우할 것으로 전망된다. 선거배심원단이 투표 관리자 서명이 없는 등 재검토가 필요한 표들을 유효표로 받아들일지 결정하는데 며칠이 소요될 수 있다. 재검표 상당수가 수도 리마를 비롯해 후지모리 강세 지역인 도시 투표소에서 나왔기 때문에 낙선 후보가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앞서 후지모리는 카스티요에 역전을 당하자 기자회견을 열고 “자유페루당이 민의를 반영한 결과를 왜곡하고 지연시키는 전략을 행사했다”면서 “사기 징후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이날 각기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양측 시민들이 거리 시위를 벌였다. 카스티요 지지자들은 “이 정도면 (승리하기에) 충분하다”며 거리에서 노래를 하며 춤을 췄다. 카스티요를 상징하는 전통모자와 남아메리카 전통 인디언 복장을 한 지지자들도 많았다. 교사 저스티니아노 일라리오는 승리 시위를 하며 “국민들은 지쳤다. 우리 대통령(카스티요)이 이미 이긴 권리를 계속 짓밟는다면 우리는 사회투쟁에 돌입할 것”이라면서 “시골에서 온 우리들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이런 부패에 질렸다”고 말했다. 시골 초등교사인 카스티요는 마르크스주의를 기반으로 세금인상과 주요산업 국유화 등을 주장해 지방에서 지지층이 많은 반면 후지모리 후보는 자유시장 원리를 옹호하며 기업과 도시 상류층을 대변해왔다.
카스티요 또한 이날 “승리 축하를 보내온 이웃국가들에 감사한다”면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정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에보 모랄레스 전 볼리비아 대통령은 이날 카스티요의 승리를 축하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카스티요의 승리를 인정한 국가는 없다.
후지모리 지지자들도 거리로 나왔다. 이들은 후지모리 이름이 새겨진 모자를 쓰고 ‘선거 사기’를 주장했다. 후지모리 지지자인 루이스 카노는 로이터통신에 “카스티요 진영이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전술을 쓰고 있다”면서 “후지모리가 우세한 지역에서 무효표가 속출하고 있다”면서 개표 사기 가능성을 제기했다. 페루 선거관리 당국은 개표가 “공식적인 절차에 따랐다”면서 후지모리 측이 제기한 부정행위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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