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하게 관리되는 철거현장.. "철거 순서 건너뛰었을 가능성"

연지연 기자 2021. 6. 10.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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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학동 4구역 재개발 사업지에서 발생한 붕괴 사고에 대해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진심으로 사죄하고 책임을 동감한다고 말했다. 권순호 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도 사과에 나서고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진상 규명은 관계 기관에 맡기고 회사는 사고 수습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했다.

사고가 발생하면 시공사나 담당자들이 사과하고 고개를 숙이지만, 공사현장에서는 인명 사고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건물이 도로로 쏟아져 내리는 붕괴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하도급 관리가 문서로만 되는 데다가 현장 관리감독은 여전히 공백이기 때문이다.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다보니 안전인식이 제각각인 데다가 저가입찰구조라서 안전보단 비용이나 효율성에 방점이 찍혀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왔다. 인재(人災)라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 비용을 아끼기 위해 철거 보강물을 제대로 넣지 않고 철거에 임했을 가능성, 철거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한층씩 건물을 부순 게 아니라 무리하게 철거했을 가능성 등이 제기되고 있다.

9일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지역 철거 공사를 하던 5층짜리 상가 건물이 통째로 무너지면서 건물 앞 정류장에 정차해 있던 시내버스 1대가 잔해 아래에 깔렸다. 함몰된 버스 안에 갇힌 17명 가운데 9명이 숨지고 8명은 중상을 입었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10일 오후 광주 학동 건물 붕괴 현장에서 이동하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는 전날 9명이 숨지고 8명이 다친 사고 발생지인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의 시공사다./연합뉴스 제공

◇ 현장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시공사

건설 현장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분위기다. 공사를 책임지는 ‘시공사(HDC현대산업개발)’가 현장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고가 난 현장은 시공사가 현장사무소를 개소했고, 현대산업개발 직원들 일부가 상주해 있고, 주기적으로 공정률은 보고받고 있었다.

현대산업개발은 현장 상황에 대해 조사 중이란 이유로 입을 다물고 있지만, 사고 직후 권순호 대표이사가 사건 현장을 브리핑한 것을 보면 철거 작업 자체가 어떻게 돌아갔는 지 여부에 대한 보고는 많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권 대표이사는 하도급의 재하도급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냐는 질문에 “재하도급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시공사는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다.

시공사는 철거업체를 발주하는 과정에서 법적인 절차는 모두 지켰을 가능성이 크다. 통상 시공사는 시행사와의 공사기간 계약을 지키기 위해 철거기간 준수가 가능한 철거업체를 선정한다. 이 과정에서 현장에 투입될 인력과 기기 등을 적시한 투입계획서도 제출된다.

문제는 실제로 계획대로 인력과 기기가 투입되는 지를 잘 확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철거업체가 철거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것이 ‘확실한’ 정규직원을 몇 명을 투입하기로 했는데, 해당 직원이 갑자기 부재하는 상황이 펼쳐지면 급하게 인력을 조달하는 경우도 많다. 이 경우 하도급의 재하도급은 아니지만, 안전관리 상으로는 실질적으로 재하도급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인력을 임시로 데려온다는 점에서다.

한 기술사 관계자는 “시스템을 갖춘 철거업체인 경우 비슷한 역량을 갖춘 인력을 충당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해당 현장의 머리 수만 채우는 경우가 생길 때도 있다”고 했다. 이런 일을 방지하고자 감리를 두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밝혀진대로 비상주 감리방식으로 계약이 되면 현장 관리감독이 사실상 공백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시공사가 철거업체로부터 석면 문제나 공정률은 주기적으로 아주 타이트하게 보고 받지만, 해당 현장에 어떤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투입이 되고, 안전관리가 어떻게 되는 지에 대한 보고까진 받지 않는다”면서 “법적으로 문제가 안되는 정도의 절차만 지켜서는 사실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데, 현실은 법적으로 규정된 절차만 지키거나 그만도 못한 경우도 많다”고 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경인여대 교수)은 “건설 현장에서 인명 사고는 미흡한 하도급 업체 관리가 불씨가 되는 경우가 많다”며 “공사계획서와 안전관리 계획서를 제출한다고 하지만, 서류에만 의존하는 관행이 많고 중대 재해로 이어지곤 했다”고 지적했다.

9일 발생한 17명의 사상자를 낸 철거 건물 붕괴사고와 관련, 사고 발생 수 시간 전 철거 현장 장면을 촬영한 사진이 공개됐다. 철거업체 작업자들이 건물을 층별로 철거하지 않고 한꺼번에 여러 층을 부수는 모습이 사진에 찍혀 해제계획서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음이 의심된다./연합뉴스 제공

◇ “철거 순서 지키지 않았거나 보강 장치 설치하지 않았을 가능성”

건설 기술사들은 아직 현장의 조사가 완결되지 않아 조심스러운 상황이지만, 철거 순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을 가능성에 가장 무게를 두고 있다. 한 층씩 철거하는 것이 원칙이나 철거 기간을 줄이기 위해 2~3층씩 철거를 진행했을 가능성이다. 원칙은 한 층을 철거하고 폐기물을 반출한 다음, 또 한 층을 철거하는 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한꺼번에 철거할 경우 폐기물도 반출되지 못해 건축물에게 무리한 하중을 줄 수 있다. 한 기술사는 “철거를 할 때 한 개층씩 철거가 진행이 돼야 하고 바로 폐기물이 반출되어야 하는데, 이를 무시하고 한번에 건물을 전도시키는 방법으로 철거를 진행하면 폐기물 반출이 제때 되지 않아 이런 사고가 날 수 있다”고 했다. 사고 현장은 이달 말까지 시한으로 철거가 진행 중이었다. 현재 철거 공정률은 90%인데, 공기를 맞추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게 기술사들의 견해다.

두 번째 가능성은 철거 당시에도 하중을 견디는 보강 장치(잭서포트)를 제대로 설치하지 않는 경우다. 잭서포트(Jack Support)는 지하 주차장이나 대형보의 하부를 지지해 주는 중하중용 서포트다. 철거 때 하중이 집중적으로 가해지는 무게 중심점에 설치해 붕괴 등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잭서포트 설치를 건너뛰면 그만큼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다.

한 기술사는 “공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잭서포트’의 설치기준이 무시되거나 미흡하게 시공되는 경우가 있다”면서 “저가 수주로 적정한 인력 배치가 어려울 수 있고, 기간까지 쫒겨 무리하게 공사가 진행되면 이런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기술사는 “장비기사의 전문성 부족으로 철거 방법, 위치 선정 등이 미흡해서 계획대로 철거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했다.

◇ “현장 관리감독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이런 사고가 다시 나지 않으려면 ‘안전’을 중심으로 절차와 공정을 지키는 현장을 만드는 데 시공사와 시행사, 하도급업체와 인력 수준이 두루 보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적 절차를 지켰다고 보여주는 전시행위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번 사고는 2년 전 서울 잠원동 철거 현장 사고와 비슷하다. 당시에도 인재라고 지적이 되면서 철거 규정이 강화됐지만 또 이런 일이 발생했다. 당시 건축법상 신고제도였던 건축물 해체(철거) 작업을 허가 및 감리제로 변경했다. 또 철거업체는 지자체에 건축물 해체계획서를 제출하고 지자체는 건축물 해체계획서 검토를 국토안전관리원에 의뢰하도록 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건축물관리법에 의한 해체계획서를 작성하고 철거 심의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가장 현실적인 부분은 저가 수주로 인해 무리한 공사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라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적정 공사비를 산정하여야 하고 관리감독도 철저히 해야 한다”고 했다.

이상현 단국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는 “철거 건물은 구조적으로 점점 더 불안정해 지는 상황이라 각별한 주의를 요하지만, 철거업체에서 철거 순서를 지키지 않고 임의 진행하면 무게중심이 무너지면서 사고가 생길 수 있다”며 “그러나 현장에선 구조 중심 계산 등은 용역 단가가 비싸 전문적인 자문을 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기술사는 “관리감독을 통해 해체계획서에 준하여 철거가 진행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는 물론 해체 방법이 변경될 경우 공사를 중단하고 해체계획서를 재검토를 받아야 하는 행정적인 절차가 필요하다”면서 “시공사가 현장을 더 잘 이해해야하고, 감리도 더 심층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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