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 일본 법원보다 못한, 한국 '강제동원 1심 각하' 판결

김소연 2021. 6. 10. 16:4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서울중앙지법이 최근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각하 결정을 내린 것과 관련해 일본 재판부보다 못한 판결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법원조차 "강제노동 피해자들의 고통이 컸다"며 전범기업을 향해 "구제 노력을 기대한다"고 판결문에 명시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제 강제노역]2007년 일본 최고재판소 "피해자들 고통 커, 구제노력 기대"
전범기업 니시마쓰건설 재판 이겼지만 2년 뒤 사과·배상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열린 강제징용 노동자와 유족 85명이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1심 선고에서 각하 판결을 받은 유족 임철호(왼쪽)씨와 대일민간청구권 소송단 장덕환 대표가 공판이 끝난 뒤 법원을 빠져 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중앙지법이 최근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각하 결정을 내린 것과 관련해 일본 재판부보다 못한 판결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법원조차 “강제노동 피해자들의 고통이 컸다”며 전범기업을 향해 “구제 노력을 기대한다”고 판결문에 명시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4월 일본 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는 태평양 전쟁기간 동안 중국에서 강제 동원된 노동자와 유족이 전범기업인 니시마쓰건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기업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렸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개인청구권이라는 실체적 권리는 있지만 1972년 중‧일 공동성명 제5항(일본국에 대한 전쟁배상의 청구를 포기할 것을 선언한다)에 따라 피해자들이 재판에 호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는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이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 85명이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소송을 각하시킨 근거와 비슷한 논리다. 법원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등을 근거로 “소송으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제한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일본 재판부와 서울중앙지법 판결엔 큰 차이가 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판결문에 피해자들이 패소했지만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을 제언으로 담았다. 재판부는 판결문 마지막 부분에 “피해자들이 입은 정신적·육체적 고통이 매우 컸다”면서 “반면 니시마쓰건설은 중국인 노동자들을 강제노동에 종사시켜 상응한 이익을 얻는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보면, 니시마쓰건설을 포함한 관계자들이 피해자들의 피해 구제를 위해 노력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은 피해자들의 재판받을 수 있는 권리를 막아버렸지만, 피해자 구제를 위해 최소한의 길을 제시한 셈이다.

피해자들과 변호인들은 최고재판소의 ‘구제 노력’이라는 문구를 근거로 니시마쓰건설을 압박했고, 2년 뒤인 2009년 10월 화해를 이뤄냈다. 니시마쓰건설은 1944년 중국인 노동자 360명이 히로시마에 있는 야스노 발전소 공사 현장에 강제 동원돼 고통을 겪은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했다. 후세 교육을 위해 기념비를 건립했으며 2억5천만엔(약 25억5천만원)을 피해자들에게 지급했다. 1998년 시작된 소송이 재판에선 졌지만 11년 만에 화해로 마무리됐다. 니시마쓰건설은 이번에 한국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 대상이 된 기업 16곳에 포함돼 있다.

이에 반해 서울중앙지법 판결은 국가적 이익을 앞세워 피해자들의 권리를 전면적으로 막아버렸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 15개 시민단체는 최근 성명에서 “대한민국 사법 역사 중 민사소송에서 피해자의 주장을 ‘국가안전보장과 질서유지라는 헌법 원칙을 침해하여 권리남용’이라고 판단한 사례 자체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국제법의 흐름이 국가가 아닌 개인의 권리, 피해를 어떻게 배상해 나갈 것인가 하는 쪽으로 크게 방향 전환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점에 비춰보면 서울중앙지법의 각하 결정은 시대에 뒤떨어진 판결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