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미8군 77년과 한국의 전략적 가치

기자 2021. 6. 1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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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평화와 민주주의연구소장

강대국의 전략적 판단 중요성

6·25 직전 애치슨라인이 입증

‘감수할 위험’이 잘못된 신호

美 군사력 덕분에 北야욕 좌절

전산놀이 같은 한미훈련 한심

북한에 또 잘못된 신호될 우려

한 국가에 닥치는 위기의 성격과 상황은 각기 다르지만, ‘비(非)강대국’의 운명이 강대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은 동서고금을 통해 불변이다. ‘제노사이드 팩스’는 1994년 1월 유엔 르완다 평화유지활동을 총괄한 로미오 달레어 사령관이 집단학살 경고를 위해 유엔본부로 보낸 중대한 정보였다. 하지만 유엔은 이를 그저 상존하는 종족 분쟁으로 치부했다. 이후 강경파 후투 정부군에 의한 투치족과 후투 온건파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로 80만 명 이상이 희생됐는데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거부권을 가진 미국은 개입에 반대했다. 1991년 소말리아 내전 개입 실패의 후유증에다 르완다는 미국에 전략적 가치가 없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6·25전쟁 전에도 북한의 남침 조짐에 대한 숱한 경고가 있었다. 그중 일본 주재 미국 극동사령부(FEC) G-2(정보관)인 찰스 윌로비 소장은 1950년 3월 ‘G-2 리포트’를 통해 구체적 정황을 보고했으나 워싱턴은 간과했다. 북한군의 움직임을 일상적인 활동의 연장선에서 ‘감수할 만한(tolerable)’ 위협이라 판단한 것이다. 당시 스탈린의 핵실험 성공, 마오쩌둥(毛澤東)의 중국 대륙 장악 등으로 세계 질서의 판이 요동치자 미국은 유럽과 인도차이나에 전략적 무게추를 뒀다. 하지만 잦은 남침 경고는 ‘거짓 소동(cry wolf)’으로 치부됐다. 이는 (애치슨선언과 더불어) 미국 개입을 우려해 김일성의 남침을 허락하지 않던 스탈린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줬다.

전쟁이 발발하자 안보리가 즉각 열렸고, ‘잠정조치’(즉각 정전과 병력 철퇴 요청)를 취하는 결의안 제82호가 채택됐다. 통상 이런 결의안은 일종의 권고이고, 유엔의 임무 수행 수단은 없었다. 따라서 소련은 남침과의 ‘무관계성’을 입증해 미국과의 정면 대립을 피하고자 안보리에 불참,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후속 결의안 제84호에 따라 미국이 유엔의 이름으로 참전 결정을 한 것은 소련에는 예상치 못한 악재였다. 유엔 집단안보 원칙이 처음 실현돼 16개국이 참전했지만, 한국군(49%)과 미군(46%)이 유엔군 대부분을 차지했고 나머지 파병국은 상징적 성격이 컸다. 게다가 한국군 전투 장비는 모두 미국에서 지원받았다. 결국, 북한과 소련의 적화야욕을 좌절시킨 것은 막강한 미국의 군사력이었다.

6·25전쟁에 가장 먼저 투입된 것은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 창설돼 일본에서 군정을 담당하던 미8군이었다. 물론 미국의 개입은 한국을 방치해 소·중 주도의 공산화 도미노로 이어지는 것을 막으려는 자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미8군 예하 장병들은 듣도 보도 못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참전했다.

오늘은 미8군 창설 77주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 육군, 즉 미8군에 대한 찬반론이 분분하다. 지난 4년간 문재인 정부는 북한을 의식해 기동훈련 없이 컴퓨터 시뮬레이션 방식의 한·미 연합지휘소훈련(CPX)을 해왔다. 더욱이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훈련 취소·축소가 잇따르자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은 한·미 훈련이 전산놀이가 됐다고 개탄했다. 정부·여당은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우리 군에 백신을 지원한 것은 동맹을 중시한 뜻깊은 선물이라 했지만, 그 행간에는 코로나19 핑계 대지 말고 연합훈련을 제대로 해 보자는 미국의 취지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조만간 워싱턴에서 ‘세계적 방위태세 검토(GPR)’ 보고서가 발표될 예정이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북한의 장거리 투발 수단과 핵무기 소형화 기술이 진화하고는 있으나 ‘감수할 만한 위협’으로 인식하는 듯하다. 대신, 중국의 대만 침공을 상정해 유사시 인도·태평양사령부의 전략적 유동성을 확대하고 있다. 이에 일본은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해 미국과 대중 견제의 보조를 맞추려 하고, 유엔사 후방지휘소인 주일미군의 규모와 역할도 확대되는 추세다. 한편, 2020년 2월 재소집된 미 5군단은 러시아 견제를 위한 나토(NATO)군의 보강 방안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우리의 전략적 가치를 어떻게 볼지, 미8군의 인력과 예산이 축소되는 건 아닌지, 북한에 잘못된 시그널을 주지는 않을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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