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어떻게 코로나 사태를 조작했나.. 정치가 과학을 망가뜨리다 [왓칭]

손호영 기자 2021. 6. 10.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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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이전 엉망이었던 '코로나 대국' 미국
트럼프의 비과학적 감염병 대처
美 국민들 목숨을 볼모로 삼다
다큐멘터리 '토탈리 언더컨트롤'의 한 장면. 재선 준비에 몰두하던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 초기 바이러스에 무관심했다./왓챠

코로나 사태는 ‘세계 1위 경제 대국’ ‘의료 선진국’을 자처하던 미국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냈다. 10일 기준 미국의 코로나 누적 확진자는 3426만명, 사망자는 61만 3000여명에 달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2900여명이 사망한 9·11 테러가 200번 넘게 반복된 셈이다. 최근 백신 접종으로 확진자 수가 줄고 있지만, 그들의 역사에 남은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을 ‘코로나 대국’으로 만든 건 의료의 실패보단 정치의 실패에 가깝다. 정치적 이익에 눈이 먼 대통령은 전문가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비과학적인 언행과 조치로 국민을 혼란에 빠뜨렸다. 이 과정을 다각도로 담은 2시간 짜리 다큐멘터리가 나왔다. 알렉스 기브니 감독이 제작한 ‘토탈리 언더 컨트롤(Totally Under Control). 미국 대선 전인 지난해 10월 공개됐다.

현지에선 트럼프 낙선을 노리고 다큐멘터리를 서둘러 공개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이 다큐는 과학에 정치가 개입할 때 어떤 결과를 낳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경고의 메시지다. 코로나 사태는 현재 진행형이니, 우리나라의 정치 리더들에게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분열과 혼란으로 빠져드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비춘다. 이런 사태를 겪고도 과연 미국이 선진국인지 묻는다.

◇”코로나, 완벽히 통제하고 있다” 반복되는 대통령의 거짓말

다큐멘터리 '토탈리 언더 컨트롤'의 한 장면./Neon

“우리는 코로나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습니다(We have it totally under control).” 코로나 초기 트럼프가 즐겨 사용하던 말이다. 1년 반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 말이 완전한 사기였음을 안다. 그가 통제한 건 오로지 ‘경제’ 뿐이었다.

다큐멘터리엔 전·현직 공무원과 교수 등 보건 복지 분야 전문가 십여 명이 등장해 정부의 황당한 대처와 거짓말을 조목조목 짚는다. 트럼프는 호흡기 감염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날씨가 따뜻해지면 바이러스는 기적적으로 사라질 것”이라 했고, 과학적 근거도 없이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은 천국에서 보내준 선물”이라 했다.

진단 키트를 만들지도 못했으면서 “국민들은 충분히 검사 받고 있다”고 했고, 20대 자원봉사자들을 인턴으로 고용해 허울뿐인 코로나 물자 공급 전담팀을 꾸리고선 “의료 물자를 충분히 확보 중”이라고 떠벌렸다. 사상 최악의 경제 붕괴를 목전에 두고 “우리 소비자들은 강하고, 경제는 튼튼하다”고 자화자찬했다.

2020년 2월 23일 인도 순방을 떠나기 전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왓챠

다큐는 “대통령이 무엇을, 언제 알았느냐” 묻는다. 팬데믹 발생 8개월 후 그 답을 얻는다. 언론인 밥 우드워드 기자의 폭로를 통해서다. “코로나의 위험성과 전염성을 아는가”. 밥 우드워드가 트럼프에게 물은 건 미국에서 첫 사망자가 발생하기 2주 전인 2월 7일이다.

녹취록에서 트럼프는 이렇게 말한다. “공기를 통해 전염돼요. 접촉 감염보다 그게 더 까다롭죠. 접촉은 안 만지면 되는데, 공기 전염은 숨을 쉴 수밖에 없으니 그렇게 전염되는 거죠. 게다가 가장 독한 독감보다 훨씬 치사율이 높아요. 정말 치명적인 질병이에요.” 트럼프는 두 달 뒤 국민들 앞에서 “마스크를 안 써도 된다”고 공언한다.

◇과학에 정치가 개입할 때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왼쪽)과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Neon

트럼프가 반복되는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려 했던 이유는 단 하나, ‘경제’였다. 트럼프의 재선과 연임 가능성은 경제 호황에 100% 기대고 있었다. 그는 “민주당에서 코로나를 정쟁에 이용하고 있다” “코로나는 사기다”라고 주장하면서 코로나의 위험성을 애써 외면하고 축소했다. 다큐는 트럼프가 국민의 코로나 진단을 의도적으로 늦추려 했다고 주장한다.

다큐멘터리는 코로나 초기 진단 키트 부족 사태를 방역 실패의 핵심으로 본다. 트럼프는 미국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한 1월 충분한 진단 키트를 확보하지 못했고, 그나마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2월 초 개발해 미 전역에 보낸 코로나 진단 키트에선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돼 한 달여 간 하루에 100건도 검사하지 못했다. 민간 제조사의 진단 키트 승인도 막았다.

다큐멘터리 속 전문가들은 “눈을 가린 채 비행하는 느낌이었다”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며 당시의 참담한 심정을 전한다. 이들이 한목소리로 원하는 건 정치 논리의 개입 없는, 오로지 ‘과학’이었다.

다큐멘터리 속 전문가들은 1918년 전세계에 퍼진 유행성 독감 H1N1 사태와 코로나 사태가 비슷하다고 전한다. 당시엔 백신과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아 '마스크 착용'과 같은 효과적이고 단순한 예방 조치를 철저히 지켰다./왓챠

정부는 의료진과 필수 인력을 위한 마스크마저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의료진이 사용할 N95 마스크마저 부족해지자 트럼프는 일반 국민에겐 마스크가 필요 없다는 논리를 내세워 해결하려 한다. 결국 미국에선 공공장소에서의 마스크 착용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표현하는 도구가 돼 버린다.

◇과학과 전문가 무시하는 정권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보건복지부 산하 생물의약품 첨단 연구개발국장을 맡았던 릭 브라이트 박사가 인터뷰 도중 울먹이는 모습. 트럼프가 '코로나 초기 치료제'라고 주장하던 클로로퀸과 하이드록시클로로퀸에 코로나 치료의 의학적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2주 만에 해고된다./왓챠

팬데믹 직전 가을, 미국 12개 주에서 ‘팬데믹 대비 시뮬레이션’ 연방정부훈련을 벌였다는 사실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크림슨 컨테이전’이란 코드명의 이 모의훈련은 수개월 후 벌어질 현실과 기이할 정도로 비슷했다. 중국 발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들어와 미국민 1억1000만명을 감염시키고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훈련에선 ‘연방 부처 간 역할 분담 불분명’ ‘명확한 지시 부족’ ‘진단 물품과 개인 보호 장구 부족’ 등 문제점을 미리 경고했다. 그러나 현실에선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남아 있는 N95 마스크를 중국에 싼 값에 팔았다가 10배를 주고 되사온다. 의료용품 부족 사태가 벌어지자, 주 정부들끼리 이베이에서 물품 경매하듯 입찰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이 모든 일은 트럼프가 정부 고위직 자리를 전문성보단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채웠기에 벌어졌다. 경험보단 충성심이, 과학적 논리보단 정치적 목적에 맞게 과학을 포장해줄 이들을 찾았다. 보건복지부장관이자 CDC와 FDA의 책임자인 앨릭스 에이자, CDC 국장 로버트 레드필드 등이 그렇게 임명됐다.

정점을 찍은 건 말라리아 치료제로 알려진 ‘클로로퀸’과 ‘하이드록시클로로퀸’ 사태다. 뉴욕 하시디즘 공동체의 한 의사가 과학적 근거 없이 임의로 배합한 성분들로 약을 만들어 트럼프 대통령에게 “초기 코로나 환자에게 효과적”이라는 내용의 유튜브 영상 편지를 보낸다. 트럼프는 즉각 반응한다. 효과가 증명되지 않은 약을 전국 약국에서 코로나 치료제로 팔도록 허가한다. 치료제 개발에 매달려온 과학자들은 절망한다.

◇약발 떨어진 ‘K방역’… 상황은 역전됐다

다큐멘터리 '토탈리 언더 컨트롤'의 한 장면./Neon

다큐멘터리는 내내 한국을 모범사례로 소개한다. 한국이 미국보다 진단검사를 신속하게 실시해 더 큰 재앙을 막았다는 것이다. 미국은 초기 수 개월 간 진단키트를 구하지 못해 ‘검사-추적-격리’의 기본 전략부터 실패했지만, 한국은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거울삼아 긴급사태 시 검사 키트 승인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진단검사에만 초점을 맞춰 한국의 코로나 현실을 단편적으로 다룬 점은 아쉽다. 수십명을 인터뷰해 분석한 미국 현지 사정과는 달리 한국 전문가로는 LA타임즈 한국 담당 기자 한 명과 한국 첫 확진자의 주치의였던 인천광역시 의료원 감염내과의만 등장한다. 지난해 말엔 우리 보건 당국이 ‘검사 만능주의’에 집착해 코로나 대응의 전체적인 효율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더군다나 코로나 백신전쟁에서 양국의 상황은 역전됐다. 이 다큐멘터리는 기본적으로 백신 접종이 본격화되기 이전 상황을 다루고 있다. 백신에 사활을 건 미국은 전체 접종률 50%를 넘기며 세계 거대 경제권 중 가장 먼저 집단면역을 달성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경제도 점점 회복 중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 나라 가운데 104번째로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37개 회원국 중 꼴찌로, 미국·유럽보다 두 달 늦었다.

속도도 늦은 편이다. 접종 100일이 지나도록 전체 인구의 17.8%(1차 접종 기준)를 접종하는 데 그쳤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8일 기준 인구 100명 당 코로나 백신 접종 건수는 미국 92명, 한국은 22명 수준이다. 다양한 백신을 확보해 리스크를 분산시킨 미국과 달리, 한국 백신은 아스트라제네카에 집중돼 일부 국민들은 여전히 혈전(血栓) 생성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채로 접종하고 있다. 후속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면 한국은 ‘모범 사례’로 꼽히기 어려울 것 같다.

개요 다큐 l 미국 l 2020 l 2시간 4분

등급 12세 관람가

특징 과학에 정치를 들이대면 이런 재앙이 벌어진다.

평점 로튼토마토🍅99% IMDb⭐7.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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