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사와 사진 1장 찍고 80달러?.. 맨해튼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뉴욕/정시행 특파원 2021. 6. 10.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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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제과] 팬데믹 후 뉴욕 관광산업 회복의 풍경들
뉴욕 타임스퀘어의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 (돈주머니 찬)엘사가 어린이와 사진을 찍어주고 있습니다. 이 즐거운 풍경은 20초 뒤 인질극이 됩니다. /뉴욕=정시행 특파원

지난달 뉴욕 맨해튼의 대표적 관광지 타임스퀘어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세계 대기업들의 휘황찬란한 광고판 홍수 속에서 비보잉 공연과 핫도그·팝콘 냄새, 마리화나 호객꾼들 틈을 뚫고 다섯살 난 아들 손을 잡고 걷는데 어디선가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 겨울 왕국 엘사가 우르르 달려오더군요. 커다란 인형탈을 쓰고요. 아이를 중심에 두고 일열 횡대로 병풍을 치더니, 저에게 ‘빨리 사진 찍으라’고 손짓합니다.

스크린에서 보던 분들이 떼로 몰려와 아이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겠다니, 역시 세계적 관광지답구나, 엉겁결에 휴대폰으로 두어 컷 촬영했습니다.

당연히 공짜가 아니죠, 숨만 쉬어도 돈 나가는 이 동네에서. 그런데 얼마를 줘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저도 뉴욕에 온 지 1년이 다돼가지만, 대부분 코로나 봉쇄 속에 살았기 때문에 이런 북적이는 도심 관광지에 나온 게 거의 처음이거든요. 주섬주섬 지갑을 열어보니 1달러(1100원) 짜리가 눈에 띄어 꺼내 건넸습니다.

그때 인형탈을 벗어 옆구리에 끼고 검정 복대를 앞으로 돌려 수금할 준비를 하던 ‘대장’ 미니마우스의 눈빛은 잊지 못할 겁니다. ‘뭐 이런 경우 없는 X가 다있어? 어디서 굴러온 맘충이야?’ 정도랄까요. 중년의 히스패닉 여성인 미니마우스는 20달러(2만2000원) 짜리를 들어보이며 걸걸한 목소리로 “이걸 달라고. 우리 넷한테 하나씩”이라고 합니다.

눈 뜨고 코 베이는 황당함을 꾹 누르고 “현금은 이것밖에 없다”며 5달러(5500원)를 찾아 꺼내줬더니, 미니마우스 역시 짜증 난다는 듯 한숨을 팍 쉬면서, 제 수중의 5달러와 1달러를 빛의 속도로 전부 낚아채갑니다.

아이는 자기 때문에 뭔가 불쾌한 일이 일어난 걸 눈치 챕니다. “엄마, 나는 엘사랑 사진 찍고 싶지 않았어요!”라며 울상입니다. 이후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아이가 좋아하는 스파이더맨과 범블비가 연이어 출몰하는데도 아이는 “저 사람들도 나쁜 사람들일 거에요!”라며 도망다니기 바빴습니다.

타임스 스퀘어의 '코스튬 퍼포머'들의 과도한 관광객 위협 행위 등을 단속한다는 월스트리트저널 기사. 딱 걔네들입니다.

타임스퀘어에 왔다가 저희처럼 당한 분들이 많았나봅니다. 며칠 뒤 뉴욕시 당국이 타임스스퀘어 명물인 이 ‘코스튬 퍼포머(costume performer·분장한 공연배우,라고 격조있게 표현하네요)’의 관광객 후려치기에 대한 신고가 너무 많아 대대적 단속을 한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공연’을 하되 아주 제한된 공간에서만 허용하고, 위협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는 식으로요. 팬데믹으로 1년 넘게 관광객이 끊겨 벌이를 못했던 이들이, 미국 백신 보급으로 경제가 살아나고 관광 산업도 회복되자 그야말로 작정하고 거리로 나왔는데요. 팁을 과도하게 요구해 뉴욕의 명성에 먹칠을 한다는 것이지요.

예술과 미식의 도시, 관광으로 먹고 사는 세계인의 판타지 도시 뉴욕에서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고 굶주렸던 관련 업계 종사자는 미키마우스를 포함해 수십만명에 달했습니다.

지난해 하루 40만여명의 관광객이 찾았다는 타임 스퀘어가 텅 빈 모습은 그 자체로 충격을 안겼죠. 브로드웨이가 닫히고, 미드에 나오던 브런치 식당과 세계적 미술관이 문을 닫고, 사람들이 어깨를 부딪히지 못하는 조용한 뉴욕은 뉴욕이 아니니까요.

코로나 팬데믹 발발 직후 텅 비어 있는 뉴욕 타임스 스퀘어 /로이터 연합

요즘 뉴욕은 팬데믹 이전으로 완전히 복귀한 모습입니다. 시내 관광용 2층 버스엔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무장한 관광객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있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허드슨 야드, 브루클린 다리, 센트럴파크와 쉐이크쉑 버거점 등 소위 ‘찍고 가는’ 명소들은 줄을 서야 할 정도로 북적댑니다.

아직까지는 미 국내 여행객들과, 가까운 멕시코 등 중남미 부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이제 한국에서도 방학을 맞은 대학생 등이 뉴욕에 백신도 맞을 겸 배낭 여행겸 뉴욕행 비행기를 탄다더군요.

뉴욕에선 지하철역이나 관광지에서 얀센 백신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놔주거든요. 지나가는 아무나 팔 붙잡고 “백신 좀 맞으라”고 사정할 정도입니다.

지나달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뉴욕시 주최 미술 교육 관련 대면 행사에 뉴요커들이 몰려든 모습. /AFP 연합
이달 초 뉴욕시 퀸스의 잭슨하이츠에 이동식 코로나 백신 접종소가 마련돼 10대 자녀와 부모가 가족 단위로 입장하는 모습. /AFP 연합

코로나로 1년 동안 꼼짝 못하셨던 분들, 백신 맞았든 안 맞았든 어디로든 떠나고 싶을 겁니다. 아직 떠나지 못한 분들을 위해 ‘뉴욕제과'에서 소보루빵과 팥빙수 먹듯, 여러가지 뉴욕 소식을 꾸준히 전해드리겠습니다. 미키마우스와 엘사는 이제 착하게 살고 있는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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