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고 쌍둥이 최후의 반격, "아버지는 애초 답안 유출 안했다"

이수정 입력 2021. 6. 10. 05:02 수정 2021. 6. 10.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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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ON] 숙명여고 쌍둥이 부정시험 의혹 재판②
숙명여자고등학교 정문. [연합뉴스]

‘정기고사 답안 유출’을 의심받는 숙명여고 쌍둥이 현모(20)씨 자매의 최후의 반격이 시작됐습니다.

9일 숙명여고 교무부장이었던 아버지 현모(54)씨는 지난해 3월 대법원에서 답안 유출 혐의로 징역 3년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는 데 "아버지의 답안 유출 자체가 없었다"라고 반격에 나선 겁니다. 사실 쌍둥이로선 항소심이 사실관계를 다툴 마지막 기회입니다. 아버지 확정 판결에 이어 지난해 8월 쌍둥이들도 1심에서 각각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상황입니다.

쌍둥이 측에 새롭게 합류한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항소심 2차 공판에서 2시간 넘는 프레젠테이션을 했습니다. 프리젠테이션의 핵심은 이미 아버지의 대법원 유죄 확정판결을 반박하는 것이었습니다. 쌍둥이들이 무죄를 받으려면 아버지의 답안 유출이란 전제 사실부터 뒤집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답안 유출 안 했다” 대법 판결 공격한 변호인

쌍둥이 딸에게 시험문제와 정답을 유출한 혐의를 받는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 [뉴스1]

양 변호사는 우선 "쌍둥이 자매의 급격한 성적상승→부정행위 의심→답안 유출 인정으로 이어지는 이 사건 수사와 재판의 흐름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거꾸로 아버지 현씨가 답안 유출을 했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는다면 앞선 자매에 대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부정행위의 흔적’으로 인정된 시험지에 적은 깨알정답 등의 정황은 "쌍둥이들의 평소 시험 습관이나 특성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쌍둥이 자매는 숙명여고 1학년이던 2017년 1학기 기말고사부터 이듬해 1학기 기말고사까지 5번의 시험에서 아버지가 빼돌린 답안을 보고 시험을 치뤄 학교 성적평가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교무부장인 아버지 현씨는 당시 과목별 시험 문제와 답안을 거둬 모아놓는 교무실 금고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고, 시험지 수합 결재를 담당하는 위치에 있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죠.

이에 양 변호사는 "앞서 법원은 입증되지 않은 전제를 기반으로 판결을 했다"며 “현씨가 금고를 열 수 있었다는 가능성만 제시됐지, 실제 열었다는 사실 입증은 실패했음에도 열었을 것이라는 추정에 기반해 유죄가 나왔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버지가 교무실 금고 열었다는 증거가 없다"
그는 검찰의 주장대로 현씨가 금고에서 답안을 유출했다면 ▶검찰이 범행 일시로 특정한 때에 금고 안에 답안이 수합돼 있어야 하고 ▶교무실에서 현씨 혼자 답안을 빼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점이 입증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반박했습니다.

예를 들어 2017년 1학년 1학기 기말고사 ‘운동과 건강생활’과목은 쌍둥이들이 답안 유출로 치른 첫 시험이라고 의심받는 과목입니다. 검찰은 시험 직전인 2017년 6월 19일 저녁 아버지 현씨가 기록 없이 초과근무를 한 점을 들어 이때 답안을 유출했을 것이라고 의심하는 데 양 변호사는 “당시에는 운동과 건강생활 답안이 금고에 수합되지 않은 때”라고 디테일을 공략했습니다. 담당 교사가 시험지 및 답안을 제출하기로 예정한 날이 22일이었는데 어떻게 19일에 벌써 답안이 금고에 있었겠냐는 겁니다.

이어 다른 유출 의심 날짜에도 현씨가 ‘홀로’ 교무실에서 근무했다는 점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시험 전후 2~3주 동안 현씨가 교무실 CC(폐쇄회로)TV에 찍힌 장면은 딱 2번”이라며 “현씨가 매일 CCTV를 피해 다녔거나 이 CCTV만으로는 누가, 언제 교무실에 출입했는지 전체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뜻”이라고 하면서죠.


"쌍둥이 5가지 의심스러운 흔적, 뒤집어 보라" 반박
앞서 아버지 현씨와 1·2·3심과 자매 1심 재판부가 유죄를 인정한 건 ① 자매가 시험지에 적어 놓은 깨알정답 ② 답안 정정 전(前) 정답 ③ 부실한 풀이 ④ 수기메모장 ⑤ 구문적중 등 5가지 수상한 '흔적'들입니다. 이런 간접사실과 정황을 모았을 때 답안유출이 있었다는 점이 합리적인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본 것입니다.

숙명여고 쌍둥이의 시험지에 적힌 '깨알 정답' [수서경찰서제공]


하지만 양 변호사는 이 5가지도 조목조목 반박했습니다. 그는 “깨알 정답이 아닌 깨알 오답”이라며 "만약 부정행위를 위해 시험지에 적은 것이라면 지우거나 없앴어야지 그러지 않고 보관하다가 교육청에 제출했기 때문에 컨닝페이퍼로 보긴 어렵다"고 했습니다. 또 쌍둥이가 적어 놓은 깨알 정답 중 실제 정답이나 쌍둥이가 선택한 답과 다른 경우가 있다라고도 내세웠습니다. 답안들을 적어 놓은 수기메모장도 통상 생각할 수 있는 컨닝페이퍼와 모양이 매우 다르고, 외운 답안으로 보기에 부실하게 적혀져 있다는 점도 지적했죠.

숙명여고 쌍둥이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영어 서술형 답안 구문. [사진 수서경찰서]


수학이나 물리 과목에서 문제풀이가 부실했다거나 나중에 출제 오류로 정정된 정답까지 쌍둥이들이 적어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논리적 오류가 있다"라고 했습니다. 풀이 과정은 개인 차가 큰 데 풀이가 없다는 것만으로 부정행위로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며 정답이 정정된 경우 기존 정답을 선택했다고 부정행위로 볼 수 없다는 점도 짚었습니다. 쌍둥이가 시험 전 휴대폰 메모장에 시험에 출제된 영어 구문을 적어둔 흔적에 대해서는 “해당 메모가 만들어지기 전 30분간 해당 구문을 검색하고 공부한 흔적”이라고 반박했고요.


"의심의 사슬, 반대 증거 있다면 해소돼야"

관점에 따라 토끼 또는 오리로 보이는 그림. [소프트뱅크 그룹 제공]


양 변호사는 “검찰과 법원이 부정행위로 단정한 의심스러운 흔적과 답안 유출 인정은 여러가지 의심의 나열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의 누군가에겐 토끼, 누군가에겐 오리로 보이는 ‘토끼-오리’ 그림을 보여주면서 "관점에 따라 사물을 달리 볼 수 있다"며 “의심의 사슬로 누군가를 엮으면 그 사람은 영원히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의심에 반대되는 증거가 있다면 그 의심은 해소되어야 한다”고 변론을 마쳤습니다.


檢 “움직일 수 없는 정황 사실 배제한 침소봉대 변론”
검찰 측은 이날 간략하게 양 변호사의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검사는 “이 사건에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들이 있는데, 교무부장인 아버지가 시험·답안을 관리했고 금고는 아버지 뒷자리에 있어 언제든 볼 수 있었다는 점”이라고 했습니다. 또 “두 딸은 강남의 유수 고교에서 급격하게 성적이 상승했지만 사건 이후 성적이 급하락했고, 내신과 모의고사 성적은 매우 상이한 결과가 나왔다”며 “이같은 움직일 수 없는 정황 사실들을 배제한 변호인의 변론은 일종의 침소봉대”이라고 일축했습니다.

쌍둥이의 항소심 재판은 피고인신문과 최후 변론, 구형 절차를 남겨둔 상태입니다. 재판부는 다음 달 23일 쌍둥이 측 요청에 따라 피고인 신문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검찰이 자매에 대한 직접 신문에서 변호인 측 주장을 어떻게 반박할지 중앙일보 법정 LIVE [法ON]이 계속 전해드리겠습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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