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敵 없다고 하고 훈련도 안 하는 軍, 1인당 1억 쓰는 오합지졸

조선일보 2021. 6. 10.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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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욱 국방부 장관(왼쪽)이 9일 국회 국방위에서 정상화 공군참모차장과 대화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서욱 국방부 장관은 성추행당한 공군 중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당일 ‘단순 사망 사건’으로 알았다고 9일 밝혔다. 사흘 뒤에야 진상을 보고받았다고 했다. 성폭력 관련 사망 사건은 내용을 바로 보고해야 한다는 규정이 국방장관에게도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중사의 비극도 가해자 분리 등 규정과 규율이 제대로 지켜졌으면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국방부가 ‘뒷북 수사’에 나서자 육·해·공에서 성추행 피해 신고가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군 기강이 총체적으로 붕괴한 군대 모습이다. 어떻게 전쟁에 이길 수 있나. 부실 급식과 조리병·조교 반발 등도 군기 문란의 결과다. 북한 선전 도구가 이날 성추행과 부실 급식 등을 거론하며 “남조선군의 고질적 병폐”라고 조롱하는 지경이 됐다.

지금 대한민국에 군(軍)이 있나. 공군 법무관은 7개월간 19일밖에 정상 출근하지 않고 무단 결근, 허위 출장 등을 일삼다 적발됐다. 일부 군의관은 실리콘으로 지문을 뜬 뒤 ‘대리 출퇴근’을 해오다 들켰다. “엄마가 화나게 한다”는 핑계로 3년 새 124번이나 지각한 군의관도 있었다. 상병이 야전삽으로 여성 대위를 폭행하고, 남성 부사관이 남성 장교를 집단으로 성추행하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장교들은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민원’과 싸우며 병사들 눈치를 본다고 한다. 병사 부모 수만 명이 가입한 인터넷 사이트엔 ‘부대 민원 넣는 법’ 등이 올라온다. ‘군부모’들은 자식 군 생활에 시시콜콜 간섭하고 간부들은 이런 부모 요구에 휘둘린다. 군대가 유치원인가. 어떻게 적과 싸워 이기나. 싸우기나 할 수 있나.

우리에게는 북한이라는 명백한 적(敵)이 있다. 핵무장 등 중무장을 한 120만 군을 보유한 적이다. 합리성을 결여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폭력 집단, 범죄 집단이다. 수많은 도발을 자행해 해친 우리 국민이 부지기수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은 이런 적이 갑자기 없어졌다고 한다. 국방 백서에서 “북한은 적”이라는 표현을 뺐다. 남북 평화 이벤트로 표 얻는 데만 골몰한다. 북한이 싫어한다고 한미 연합 훈련도 안 한다. 이런 대통령에게 장군들은 아첨하며 진급할 욕심에 여념이 없다. ‘군사력 아닌 대화로 나라를 지킨다'고 선언했다. 세계 역사에 전무후무할 일이다. 눈앞의 적을 보지 않기로 한 군대, 훈련 안 하는 군대에 기강이 있을 리 없다. 지금 한국군이 그렇다.

수류탄 사고 한번 났다고 1년 이상 수류탄 투척 훈련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 사이 입대한 병사들은 수류탄을 던져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40㎞ 행군에 부대원 530명 중 230여 명이 아프다고 빠졌다고 한다. 연병장에 나온 300여 명 중 180여 명은 물통만 찼고 100여 명은 빈 군장을 들었다. 지휘관이 제대로 훈련하라고 지시하자 ‘병사에게 고통을 준다’며 해임하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요즘 병사는 18개월이면 제대한다. 군인으로서 야전의 기본 능력을 갖출 만하면 전역한다. 병종(兵種) 간 호흡도 맞을 리 없다. 이젠 지휘관 명령도 먹히지 않는다. 보통 일이 아니다. 국방 예산이 50조원을 넘는다. 50만 군대가 1인당 1억씩 쓰는 막대한 액수다. 그 돈으로 무엇을 했나. 국방이 튼튼해졌나. 오합지졸 군대는 ‘국민 혈세 먹는 하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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