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형님·멋진 스승님..꼭 돌아오신다고 약속했는데"
[경향신문]
2002 월드컵 동료·팬 애도 속
유 전 감독 축구인장으로 영면
“다시 돌아오실 줄 알았는데…”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의 마지막 제자들은 여전히 스승과의 이별이 믿기지 않는다. 유 전 감독이 현장에서 누구보다 믿었던 인천의 옛 주장 정산과 현 주장 김도혁은 지난 8일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빈소에서 유 전 감독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정산은 기자와 통화하면서 “감독님은 꼭 돌아오신다고 선수들과 약속했다”면서 “힘든 항암치료 중에도 훈련장과 경기장을 찾아주실 때마다 건강해진 모습에 희망을 갖고 있었다”며 탄식했다. 김도혁도 “선수단 단골 사우나에 가면 항상 감독님이 앉아 계시던 자리가 있다. 오늘도 그곳을 찾으면 얼굴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옛 주장’ 정산
‘영웅’이 지도자로…가슴 뛴 기억
함께했던 페널티킥 훈련 못 잊어
유 전 감독은 2019년 5월 꼴찌로 추락한 인천의 소방수로 부임해 인천 선수들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를 떠올린 정산은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보면서 자란 우리에게 감독님은 영웅”이라며 “선수들이 모두 설렜던 기억이 선명하다. 첫 훈련에서도 정말 남달랐던 분”이라고 말했다.
정산이 유 전 감독을 특별하게 여기는 것에는 지도자가 아닌 형님처럼 같이 훈련했던 추억도 영향을 미쳤다. 골키퍼인 그는 유 전 감독이 직접 차주는 페널티킥을 막아내며 훈련했다. 정산은 “감독님은 찬 커피를 유독 좋아하셨다. 페널티킥 훈련 땐 커피 내기도 했는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현 주장’ 김도혁
암 진단 알린 그날도 “집중하자”
선수들 정말 울면서 경기 뛰었다
인천이 마지막까지 강등하지 않기 위해 싸웠던 그 시절이 안타까운 것은 김도혁도 마찬가지다. 2019년 8월 전역해 인천에 복귀한 김도혁은 “아직도 감독님의 생일(10월18일)이 잊히지 않는다. 전달수 대표이사님이 성남FC와의 경기를 하루 앞두고 케이크를 들고 울면서 그 이야기(췌장암 진단)를 해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정작 감독님은 ‘경기에 집중하자’고 하셨는데, 그날 선수들은 정말 울면서 뛰었다”고 덧붙였다.
두 선수 모두 단체사진을 빼면 유 전 감독과 따로 찍은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다. 그래도 유 전 감독의 축구철학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는 자부심은 갖고 있다. 김도혁은 “감독님이 이강인(발렌시아)에게도 ‘축구를 더 생각하고 즐기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평소 우리에게도 해주시던 말씀”이라며 “감독님에게 배운 걸 축구장에서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산도 “온 세상이 감독님이 세상을 떠난 것에 슬퍼한 것을 보면 감독님은 참 좋은 사람이셨다. 마지막 제자인 우리들이 감독님과 같은 길을 걷는 게 감독님에게 보답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9일 오전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선 유 전 감독의 장례가 축구인장(葬)으로 치러졌다. 발인 등 장례 절차는 유족 뜻에 따라 가족과 일부 대한축구협회 관계자 및 축구인 등만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진행됐다.
유 전 감독과 함께 한·일 월드컵 4강 기적을 일군 황선홍 전 대전하나시티즌 감독, 김병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최진철 전 한국프로축구연맹 경기위원장 등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유 전 감독은 경기 용인 평온의숲에서 화장된 후 충북 충주시 앙성면 진달래메모리얼파크에서 영면에 들었다. 지난해 3월 역시 췌장암과 싸우다 별세한 고인의 어머니를 모신 곳이다.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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