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 쓰레기 두 개 [삶과 문화]

2021. 6. 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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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숍에 들러 차가운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켰다.

어떤 커피숍은 아예 일회용 잔만 쓰기도 한다.

종이잔 안에 투명한 일회용 잔이 담겨 있었다.

그러니까, 커피 한 잔에 두 개의 일회용품을 쓰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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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커피숍에 들러 차가운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켰다. 직원은 묻지도 않고 일회용 잔에 담아냈다. 코로나 시국이라 매장 안에서 마셔도 일회용 컵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안타까웠다. 미리 다회용 잔에 달라고 할걸. 어떤 커피숍은 아예 일회용 잔만 쓰기도 한다. 닦고 관리하느니 차라리 그 편이 더 유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건비’가 덜 들어서 유리하다고도 한다. 어떤 이는 손님이 더 원한다고도 주장한다.

또 다른 커피숍에서 역시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더니, 일반 종이잔에 담아냈다. 차가운 음료는 속이 보이도록 투명한 걸 쓰는 것이 당연한 일이니 이상했다. 자세히 보니, 그 종이잔은 일종의 미끄럼 방지 홀더였다. 보통 쓰는 갈색의 미끄럼 방지 홀더 대신 멀쩡한 종이잔을 전용(?)한 셈이었다. 종이잔 안에 투명한 일회용 잔이 담겨 있었다. 그러니까, 커피 한 잔에 두 개의 일회용품을 쓰고 있는 것이었다. 카페로선 '독특한 콘셉트'라며 자랑스러워할 일인지 모르겠지만 보고 지나칠 일만은 아닌 듯하다. 커피 맛이 써서 속이 쓰린 건 아니었다. 이 업보를 어찌 할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런 쪽으로 거의 포비아급의 고민을 하는 분들이 많다. 세상 살아가면서 지구에 끼치는 부담 때문에 늘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는 그날까지 엄청난 양의 자원을 쓰며, 폐기물을 남기고 돌아간다. 문명사회의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갖는 한계다. 그 문명은 문자 그대로 문명일까 싶다. 미구에 어떤 큰 충격이 오지 않는다면 무감각하게 살아간다. 법과 규정이 그 무신경을 부추긴다. 합법이라는 이름 말이다. 당장 수많은 일회용품, 일회용에 가까운 여러 물건들, 다회용이지만 생산할 때 엄청난 폐기물을 수반하는 용품들이 마구 소비된다. 뭐 당장 뭔 일이 생기는 건 아니니까. 속이 보이지 않는 물병에 물을 담을 때, 턱까지 물이 차도 우리는 모른다. 넘쳐야 안다. 그게 지구에 사는 우리들의 삶이다.

재활용이 그나마 대안일 텐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실상 눈 가리고 아웅일 때가 더 많다. 정기 수거일에 아파트 마당에 쌓여 있는 거대한 산 같은 재활용 쓰레기들도 실은 재활용될 거라는 심리적 위안 말고는, 구체적 실익이 없는 경우가 더 많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기 전에 꼼꼼하게 분류하고, 종이박스에 붙은 테이프를 칼로 제거하고 PET병의 라벨을 떼어내고 음료병 목에 걸린 플라스틱 링(병과 재질이 달라서 떼어 내야 재활용에 유리하다고 한다)을 자르기 위해 칼질을 하는 사람들의 수고가 막상 재활용장에 가서 무용할 때가 많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안다. 더러워서, 원래 재활용이 안 되지만 수거하지 않으면 반발할 시민들 때문에 그저 가져가서 폐기해 버리는 게 엄청나다.

폐기물 처리를 할 때 수고를 소비자가 떠안는 일도 들여다봐야 한다. 판매자는 뒷짐 지고, 소비자가 시간과 수고를 들여 처리한다는 게 온당한가. 편리는 반드시 후과를 가져오게 마련인데, 새벽배송이니 하는 서비스를 경험해 보고 놀랐다. 소소한 품목을 한꺼번에 담아 오지 않고 박스나 비닐로 다 개별 포장되어 온다. 물류 시스템을 효율 중심으로 짜다 보니 생기는 폐해다. 이런 걸 항의해 봐야 씨도 안 먹힌다. 법으로 보장해주는 까닭이다. 합법이라는 말이 얼마나 우리 삶을 물어뜯고 있는 것인가. 불투명한 병의 턱까지 물이 차도 우리는 잘 모른다.

박찬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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