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지표 웃지만 민생경제는 울상
한국 가계부채 증가 폭 가파른데
정부부채 증가 폭 주요국 중 꼴찌
금리 인상 땐 민간은 '생존 위기'
[경향신문]
서울 관악구에서 20년간 김치찌개집을 운영해온 A씨는 대출금이 코로나19 이전보다 30%가량 늘었다. 정부의 재난지원금 약 1000만원은 두 달치 고정비에 그쳤다. 설상가상으로 계란을 비롯한 주요 식자재 값이 올 들어 50%까지 인상됐지만, 손님이 줄어들까봐 음식값을 못 올리고 있다. A씨는 “코로나19가 터지고 정부가 재빠르게 금융지원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다 내 빚”이라고 말했다.
인천 구월동 로데오거리의 호프집 사장 B씨는 지난 1년을 대출금 총 8000만원으로 버텼다. 코로나19 방역으로 지난해 12월 월 200만원으로 고꾸라졌던 매출은 지난달 900만원까지 회복됐지만 임대료·인건비 같은 고정지출 1400여만원을 충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4차례 재난지원금으로 받은 600만원도 다 쓴 지 오래다. A씨는 “빌린 돈을 갚아야 해서 결혼식 날짜도 미루고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나라 전체의 경제성장률은 수출 덕에 4%대의 강한 회복세가 예상되는 반면, 코로나19 타격을 입은 민간경제는 주요국에 비해 크게 늘어난 가계부채 때문에 회복이 더뎌질 것으로 우려된다.
9일 한국은행은 올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7%로, 지난 4월 속보치보다 0.1%포인트 상향되며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경제규모를 회복’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올 연간 경제성장률도 지난달 한은의 전망치 4.0%를 웃돌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거시경제의 회복 신호와 달리 민간 부문의 가계빚 규모는 위험수준이다. 나라살림연구소가 국제결제은행(BIS)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0년 3분기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규모는 101.1%로, 전년보다 5.95%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같은 기간 영국(88.9%, 5.1%포인트), 미국(78.0%, 3.3%포인트), 일본(64.3%, 4%포인트), 독일(57.7%, 3.4%포인트) 등의 부채 규모와 증가폭을 모두 크게 넘어선다.
한국 가계신용 잔액은 지난 3월 말 기준 1765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개인사업자대출 증가세도 꺾이지 않고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전월보다 3조547억원가량 줄며 소강상태를 보였지만 개인사업자대출은 같은 기간 1조7936억원 늘었다. 줄어든 소득을 빚으로 메운 것으로 해석된다. 올해 1분기 자영업자 가구주의 월평균 사업소득은 2019년 1분기 대비 18.8% 급감한 것으로 통계청은 집계했다. 코로나19 타격이 시작된 2020년 1분기와 비교해도 6.7% 감소했다.
‘낮은 정부부채-높은 가계부채’ 구조가 코로나19 이후 더 고착화하고 있다고 연구소는 분석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한국 정부의 부채 비율(45.6%)이 전년에 비해 6.4%포인트 증가하는 사이 주요 4개국은 모두 두 자릿수 이상 증가폭을 기록했다. 정부는 올해 1차 추경(14조9000억원)에 이어 2차 추경 계획도 내놨지만, 재정부담을 이유로 소상공인에 대한 손실보상 소급적용에는 반대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8일(현지시간) 지난 1년간 민간 부채 비율이 높아진 한국 등 신흥국에 대해 “정부가 지출을 꺼려서 민간 부문 재정이 더 불안해졌다”며 “기업·가계부채 증가는 단기 경제성장은 가능해도 1~3년 뒤에는 성장률이 저하된다”고 보도했다.
금리가 오르면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생존위기에 내몰릴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금리가 1%포인트 인상될 경우 이자 부담액은 가계 약 12조원, 자영업자는 5조원 각각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윤지원·이윤주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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