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관우 "父 인간문화재 조통달, 6살때 부모님 이혼 후 눈칫밥 생활"(TV사랑)

이하나 2021. 6. 9.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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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관우가 항상 낯설고 무서웠던 아버지 조통달 국창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수준급의 가야금 실력을 보여준 조관우는 "저희 할머니가 옛날에 굉장히 유명하셨다. 인간문화재 고 박초월 명창이었다. 할머니의 뒤를 이어 아버지가 판소리를 하셔서 인간문화재가 되셨다"고 조통달 국창을 소개했다.

인사동에서 오프닝을 연 조관우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전학을 왔고, 아버지와 처음 살게 된 동네가 인사동이다. 할머니께서 막 태어났을 때 생가도 여기다. 모든 역사가 여기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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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이하나 기자]

조관우가 항상 낯설고 무서웠던 아버지 조통달 국창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6월 9일 방송된 KBS 2TV ‘TV는 사랑을 싣고’에서는 가수 조관우가 출연했다.

수준급의 가야금 실력을 보여준 조관우는 “저희 할머니가 옛날에 굉장히 유명하셨다. 인간문화재 고 박초월 명창이었다. 할머니의 뒤를 이어 아버지가 판소리를 하셔서 인간문화재가 되셨다”고 조통달 국창을 소개했다.

조관우는 “맨날 듣는게 국악이니까 손에 저절로 가야금이 익혀졌다”고 답했다. 김원희는 “확실히 예술가의 집안에서 내려오는 피를 받았다. 국가에서 보호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인사동에서 오프닝을 연 조관우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전학을 왔고, 아버지와 처음 살게 된 동네가 인사동이다. 할머니께서 막 태어났을 때 생가도 여기다. 모든 역사가 여기다”고 설명했다.

조관우는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기 싫다며 가정사를 고백했다. 조관우는 “아버지와 처음에 살기 시작한 곳이지만 아버지가 거의 외국에 계셨다. 하와이나 일본으로 공연가시면 2~3년 계시다 오셨다”며 “6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다. 아버지가 못 키우시니까 할머니댁, 큰집에서 얹혀살았다. 눈칫밥을 먹으면서부터 말수가 없어졌다. 아버지가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여기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10살 때 아버지와 같이 살게 됐다는 조관우는 “너무 오랜만에 오시니까 주위 분이 다 모이셔서 아버지 도착할 때 공항도 못 갔다. 인사동 길거리에서 아버지 오시기를 기다리는데 7시간 앉아서 기다린 기억이 난다”라며 “아버지인 걸 알겠는데 성큼 다가가지를 못하겠다. 가끔 보는데도 무서웠다. 말수도 없다 보니까 육성회비나 준비물 같은 것도 달라고 얘기를 못했다”고 회상했다. (사진=KBS 2TV 'TV는 사랑을 싣고' 방송 캡처)

뉴스엔 이하나 bliss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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