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인 듯, 데뷔 아닌, 데뷔 같은 외출.."차차 아시게 될 것"

박순봉 기자 2021. 6. 9.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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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두 달 만에 첫 공개 행보..'전략적 모호성' 유지

[경향신문]

윤석열·송영길 악수 윤석열 전 검찰총장(오른쪽)이 9일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에서 열린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관 개관식에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악수하며 인사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오늘은 손님으로 온 사람”
입당 관련 묻자 대답 피해
여권 ‘내로남불’ 우회 지적
일각에선 “간보기” 비판도

야권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9일 두 달 만에 처음으로 공개 행보를 했다. 그는 “좀 지켜봐주기를 부탁드린다”면서 구체적인 계획을 언급하지 않았다. 당장 국민의힘 입당 등 정치적 계획을 내비칠 경우 주목도가 떨어지거나 중도층 확장 효과를 잃을 수 있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계획이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이어서 정치 활동을 곧 공식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내년 대선에 출마할 인사의 ‘모호한 행보’가 길어지면서 ‘간보기’식 정치라는 비판도 나온다.

윤 전 총장은 이날 서울 남산예장공원에 지어진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하며 기자들에게 “국민 여러분의 기대 내지는 염려를 다 경청하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지층의 기대감과 리더십에 대한 우려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입당 여부도 “제가 걸어가는 길을 보시면 차차 아시게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은 기념관을 둘러보는 도중 기자들이 재차 질문하자 “지켜보시라고 하지 않았나”라며 “오늘은 여기 손님으로 온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행사 참석 배경으로 우당 선생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엘리트의 사회적 책임)를 거론했다. 여권을 향해 제기된 ‘내로남불’ 행태를 우회 지적한 것으로 해석된다.

윤 전 총장이 자신의 일정을 공개하고도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은 것은 전략적 모호성을 강조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백넘버 2번을 달고 뛰겠다’ 등의 ‘관계자발’ 보도로 윤 전 총장의 국민의힘 입당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최근 측근을 통해 ‘확정된 것이 없다’는 메시지를 내놓고 실제 공개 행보에서도 계획을 밝히지 않아 입당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의힘 입당이 확정되면 중도 성향 지지자들을 끌어안기 힘들 수 있어 선택지를 남겨두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차차 알게 되지 않겠느냐”는 그의 발언은 정치 입문 선언을 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윤 전 총장의 ‘대선 시간표’는 국민의힘 일정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11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당대표가 선출되고 대선 경선은 9월 시작된다. 윤 전 총장은 그 전에 본격 행보를 시작해야 한다. 실제로 윤 전 총장 측이 최근 언론을 담당하는 공보팀을 꾸리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기자에게 “윤 전 총장이 언론 창구 역할을 맡길 현직 언론인을 접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은 대권 주자지만 정계 입문조차 하지 않은 상황이라 주자들 중에선 가장 출발이 늦다. 정치 선언을 늦춰 대중 앞에 나타났을 때 주목도를 높이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윤 전 총장의 모호한 태도를 두고 비판적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기자와 만나 “윤 전 총장이 큰 착각에 빠진 것 같다. 검찰총장일 때는 원하는 정보만 내보내 언론 방향을 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국회는 다르다”며 “메시지 차단도 불가능하고, 그 방향이 원하는 대로 가지도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대권 주자인 원희룡 제주지사는 전날 KBS 라디오에 출연해 “빨리 수면 밖으로 나와 정치력을 검증받고 국민들에게 비전을 보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이날 개관식 현장은 소란스러웠다. 윤 전 총장이 입장할 때 윤 전 총장 팬클럽인 ‘열지대’ 회원들이 빨간 우산을 쓰고 “윤석열, 대통령” 등 구호를 외쳤다. 윤 전 총장 반대자들은 “윤석열, 구속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맞섰다.

박순봉 기자 gabg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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