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사 총파업, 택배 대란 없었지만 우체국 타격 클듯

신다은 2021. 6. 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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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 저임금..위기의 택배노동자]1월 사회적합의서 택배사 전담 약속했는데
상반기 내 표준계약서 완성 기약 못해
분류인력 투입은 기대이하..1년 연기설 반발
5만5천명 중 11%가 조합원..택배차질은 부분적
9일 송파구 서울복합물류센터에서 한 우체국 택배기사가 파업 결의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택배노조는 2차 사회적 합의 결렬로 이날부터 무기한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연합뉴스

경기도 수지우체국의 택배를 배송하는 김아무개(54)씨는 평소 새벽 5시30분에 출근한다. 팔레트 위에 쌓인 택배를 지역별로, 개인별로 분류하는 작업에만 두 시간이 넘게 걸려서다. 이 분류작업은 애초 택배기사의 일이 아니라서 별도 보상도 없다. 김씨는 우체국에 “택배를 분류하는 인력을 따로 두거나 분류작업에 대가를 지불하라”고 여러 차례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택배기사들이 단체로 분류작업을 거부하며 출근 시간을 늦춘 9일, 김씨도 평소와 달리 오전 9시께 회사에 출근했다.

김씨와 같은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택배노조) 소속 택배기사들이 택배사에 택배 분류작업을 책임지라고 요구하며 무기한 총파업에 나섰다. 택배기사 6500여명이 소속된 택배노조 진경호 위원장은 이날 서울 송파구 서울복합물류센터에서 총파업 대회를 열고 “찬반 투표를 한 결과 찬성률이 92.3%로 나와 이 시간 이후로 무기한 전면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말했다.

택배기사들이 파업에 나선 건 택배사가 사회적 합의 기구를 통해 합의한 대로 택배 분류작업을 책임질 의지가 없다고 봐서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21명의 택배기사가 과로사하자 택배사와 택배 대리점, 택배노조는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 사회적 합의 기구’를 만들고 장시간 노동의 주범인 택배 분류작업에 대해 택배사와 대리점이 책임지고 전담인력을 투입하기로 지난 1월 합의했다. 구체적으로 분류작업 전담인력을 어느 시점에 얼마나 투입할지는 택배사와 영업점이 표준계약서를 올해 상반기까지 만들기로 했는데, 지난 8일 최종 합의를 앞두고 택배사들이 ‘시행 준비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취지로 합의를 1년 유예하자는 뜻을 정부 쪽에 전달했다는 게 택배노조의 주장이다. 이에 더해 택배대리점연합회까지 택배노조의 출근 시간 지연 등에 항의하며 회의에 참석하지 않으면서 합의는 파행으로 치달았다.

택배사 쪽은 공식적으로는 택배노조의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택배사는 지난 2월 씨제이대한통운이 4천명, 한진택배와 롯데글로벌로지스틱스가 각각 1천명씩의 분류 전담 인력을 투입했고, 인원을 추가할 의지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택배기사들은 택배사의 현재 대응 정도로는 상황을 개선하기 극히 어렵다고 보고 있다.

택배노조의 총파업이 ‘택배 대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다. 전국 택배기사 약 5만5천명 가운데 택배노조 조합원은 11% 정도인 데다 대리점별로 쟁의 절차를 거쳐 합법적으로 쟁의할 수 있는 조합원은 2100여명 정도다. 그러나 조합원이 다수 소속돼 있는 일부 지역 대리점은 배송에 차질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우체국 택배노조 조합원은 파업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되 출근 시간을 오전 7시에서 오전 9시로 늦추고 배송 출발 시각을 오후 1시에서 오전 11시로 앞당기는 식으로 분류작업 거부 투쟁에 나섰는데, 우체국 전체 택배기사 3800여명 가운데 2800여명이 택배노조 조합원이어서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이에 우체국 일부 지점은 분류작업을 집배원에게 시키거나 택배 접수를 제한하는 식으로 대응 중이다. 우체국 택배에서 대리점 구실을 하는 우체국 물류지원단은 이날 택배노조원에게 ‘파업을 철회하지 않으면 계약 물량을 줄이겠다’는 경고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택배기사들은 계약서상 자영업자인 특수고용직 노동자로, 건당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택배량이 줄면 수입이 함께 줄어든다.

씨제이대한통운은 2만여명 택배기사 가운데 약 2500여명이 조합원인데, 1500여명이 파업에 참여하고 1000명은 출근 시간을 미룬다. 로젠택배는 6천여명 가운데 500여명이 택배노조에 가입돼 있다. 한진택배와 롯데택배는 소속 택배기사 가운데 조합원 비율이 1% 수준이지만 특정 지역에 조합원들이 다수 소속돼 있어 일부 지역에 배송 지연이 발생할 수 있다.

택배노조 진경호 위원장은 “택배사들이 ‘사회적 요구안을 전면 수용할 테니 파업에서 빼달라’고 요구한다”며 “택배사들이 공개적으로 방침을 발표한다면 협상할 수 있지만 끝까지 버틴다면 택배노조도 투쟁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 합의 기구는 오는 15일께 다시 회의를 열 예정이다.

신다은 박수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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