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월 철거는 '적절', 항의글은 '잠금'..전쟁기념관 왜 이러나

최윤아 2021. 6. 9.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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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고객의소리에 '왜 마음대로 비공개 처리하죠' 항의글
기념관측 "비방글은 원래 비공개.. 해당 이미지 철거 적절했다"
포토월 철거, 임직원 30명의 논의 거쳐 이뤄진 일
전쟁기념관 고객의소리 홈페이지 갈무리.

한국 남성 성기 크기를 비하하는 ‘집게 손가락 모양’ 이미지를 시설물에 사용했다는 일부의 억측에 즉시 포토월을 철거했던 전쟁기념관(관장 이상철·육사 38기)이 이번에는 포토월 철거를 비판하는 게시글을 ‘비공개’ 처리해 또 다시 빈축을 사고 있다. 해당 포토월은 2013년 제작된 것이다. 온라인 사이트인 메갈리아는 2015년 등장했다. 시점만 고려해도 포토월 속 이미지는 한국 남성 성기 비하 이미지가 아닌 게 명백하다. 그런데도 전쟁기념관은 민원이 발생하자 즉시 철거하고 사과문까지 게시하더니, 이 대처를 비판하는 민원 게시글은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도록 자물쇠를 채웠다. 전쟁기념관은 포토월을 철거하기로 한 결정은 관리자급 임직원 30명이 모인 비상단체 채팅방에서 이뤄진 것이며 ‘적절한 대처’였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전쟁기념관의 위기대처능력과 판단력이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9일 국방부 산하 기타 공공기관인 전쟁기념사업회가 운영하는 전쟁기념관 고객의소리 게시판에는 ‘왜 마음대로 비밀글 처리하죠?’라는 글이 올라왔다. 게시자는 “제가 글에 욕설이라도 썼냐, 담당 직원 마음대로 그렇게 처리해도 되느냐”고 항의했다. 9일 오후 2시 현재 상당수 게시글들이 비공개처리 됐다. 비공개 글 가운데는 “공공기관이면 기준과 원칙을 갖고 대응해달라”,“그 어느 공공기관보다 엄중하게 줏대를 지켜야 할 곳이 어이없는 악성민원에 공지까지 띄우냐”는 등 전쟁기념관의 대처를 비판하는 글 18개, 포토월이 ‘남성혐오’ 이미지라며 철거를 요구하는 글 8개가 섞여 있다.

전쟁기념관은 게시글 ‘비공개’ 전환의 근거로 홈페이지 관리규정을 내세운다. 이 규정에는 ‘특정인 또는 단체 등에 대한 비방, 폭력성 내용의 글 및 선전, 광고, 상업적인 내용을 게시할 경우 통보없이 비공개 및 삭제됨을 알려드린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한겨레>가 전쟁기념관 관계자에게 이 규정 중 ‘특정 단체’에 전쟁기념관도 포함되느냐고 묻자 “그렇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전쟁기념관 관계자는 “해당 게시판은 남녀노소가 다 볼 수 있는 공간이어서 비방성 글이거나 선정적인 글은 모두 비공개처리하고 있다. 게시판 관리는 에이아이(AI)가 하되, 사람(운영자)도 함께한다”고 했다. 2013년에 제작한 포토월에 2015년 메갈리아에서 쓰이던 ‘집게 손 모양’이 있다며 ‘한국 남성 성기 크기 비하 이미지’라고 비난하는 게시글과, 비상식적인 문제제기에도 사과하고 포토월을 철거한 전쟁기념관에 대한 비판을 동일선상에서 본 것이다.

전쟁기념관이 삭제한 포토존 이미지.

더 심각한 문제는 전쟁기념관이 여전히 포토월 철거의 문제를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비상식적 민원에 공공기관이 사과하고, 즉시 시정한 점이 비판 받고 있는데도 ‘적절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전쟁기념관 관계자는 “해당 이미지는 설치 뒤 8년이 지날 정도로 노후했고, 원래 철거예정이었다. 그 와중에 논란까지 제기돼 즉각 철거한 것”이라고 했다. 8년도 넘게 유지해 온 이미지를 왜 하필 비상식적 민원이 들어온 다음날 철거했느냐고 묻자 “8년을 방치했으니 이 기회에 철거하는 게 맞겠다고 판단했다. ‘메갈’ 논란 외에도 태극기가 반전되어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답했다.

민원이 처음 제기된 날이 공휴일인 현충일(6일)이어서 소수 근무 인원이 충분한 숙의 없이 결정한 게 아니냐는 일종의 ‘동정론’도 있었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전쟁기념관 관계자는 “해당 판단은 사무총장, 부서장 9명, 팀장 15명 등 총 30명이 넘는 임직원이 모여있는 비상 단체채팅방에서 논의를 걸쳐 이뤄졌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메갈리아가 대중화 된 시점이 2015년이어서 해당 민원은 선후관계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런 결정을 했고, 철거 이후 논란도 어느 정도 예상했다고 전했다. 판단 과정에서 외부 기관에 별도로 자문을 구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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