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 고통 먹고 자란 욕망은 파멸.. 완전무결한 행복은 없다"

박동미 기자 2021. 6. 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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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추구하고 집착하는 게 아니라 결핍과 불운을 인정할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죠.” 새 장편 ‘완전한 행복’을 출간한 정유정 소설가가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출판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호웅 기자

■ 스릴러 ‘완전한 행복’ 출간한 정유정

결핍이나 불운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신’ 돼 타인 조종·착취

나르시시스트 행복강박증 그려

온 세상이 ‘난 특별하다’ 외쳐

이런 집단 징후는 부작용 불러

‘고유정 사건’도 집필에 영향

행복하냐고? 내 행복은 90점

재능 결핍 알기에 쓰고 또 써

정유정 작가가 ‘스릴러’로 돌아왔다. 스릴러의 여왕이라 불리는 정 작가이지만, ‘돌아왔다’는 말은 많이 부족하다. 성장 소설(‘네 심장을 쏴라’)로 시작해 ‘악의 3부작’으로 불리는 ‘7년의 밤’ ‘종의 기원’ ‘28’을 지나, 또 다른 성장소설(‘진이, 지니’)을 쓴 후, 2년여 만에 선보이는 스릴러이니, 정유정의 작품 세계는 ‘원’을 그리며 순환하고 있다는 게 더 어울리겠다. 그리고 그 원은 점점 더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저만의 사이클이 있는 것 같아요. 이번 책이 ‘욕망’에 관한 것인데, 앞으로 관련해서 두 번 더 쓸 거예요. 팬들이 벌써 ‘욕망의 3부작’이라 이름 붙여 주셨더라고요.” 새 장편 ‘완전한 행복’(은행나무)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완전무결한 행복을 추구하며 주변 모두를 희생양 삼는 인물을 내세운다. 타인의 고통을 먹고 자란 욕망은, 어떤 파멸을 불러올까. 비극적 결말은 추측할 수 있지만, 소설은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예기치 않았던 서늘함과 충격을 안겨준다. 책이 출간된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정 작가를 만났다.

“욕망은 때로 삶에 의지가 되기도 하니까 긍정적인 면도 있어요. 그런데 이게 자신만의 성취를 위한 집착으로 흐를 때 위험해지죠. 가장 나쁜 건 무결한 것을 원할 때인 거 같아요. 완전한 행복이 있을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여기에 이르려고 해요. 내게 있을 수 있는 결핍이나 불운 같은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불행한 기분이 드는 거죠.”

이 ‘불행’을 품은 채 사는 인물이 소설 속 ‘유나’다. 자신만의 ‘완전한 행복’을 향해 폭주하는 그에겐 엄마와 아빠, 언니, 전남편과 딸 등 가족도 ‘수단’일 뿐이다. 늘 “나는 참 운이 없어”라고 말하는 유나는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 형태가 매우 비극적이다.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비움’의 철학처럼 들렸던 유나의 말은, 책을 다 읽고 난 후 가장 섬뜩하고 슬픈 대사로 남는다. 유나가 자신의 인생에서 ‘빼버리고’ 싶은 가능성이란 무엇이었을까. 그는 왜 차곡차곡 쌓이는 ‘덧셈’의 기쁨을 알지 못했을까.

소설을 쓰기 전 수개월에 걸쳐 꼼꼼히 취재하는 걸로 유명한 정 작가는 이번엔 ‘자기애적 성격 장애’, 즉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다. 누구나 이런 장애를 조금씩 갖고 있는데, 유나는 그중에서도 1%에 속한다는 ‘악성’ 나르시시스트다. 관계에 ‘서열’을 만들고, 늘 자신이 우위에 서며, ‘신’이 돼 타인을 조종하고 착취한다. 정 작가는 “유나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린 일상에서 자주 이런 자기중심적 인물들을 만난다”며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이런 착취로 초라해진 경험들이 있다”고 말했다. 집필 과정에선 실제 사건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바로 전남편을 살해·유기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고, 범죄자의 성향이 나르시시스트에 가깝다고 분석되는 ‘고유정 사건’이다. 하지만 가장 근원적인 질문은 “사회와 시대로부터 읽히는 수상쩍은 징후”에 있었다는 게 작가의 말이다. 그는 이 징후로 자기애와 자존감, 행복에 대한 강박증을 꼽았는데, 이에 대해 “삶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미덕”이라면서도 “온 세상이 ‘너는 특별한 존재’라 외치고 있다는 점에서 이상하기 그지없다”며 의문을 품었다. “SNS만 봐도 지나치게 ‘행복’에 집착하는 게 느껴져요. 세대 불문, 국적 불문 전 세계적인 현상이죠. 이런 집단적인 욕망은 반드시 부작용을 불러오죠.”

정 작가가 소설을 통해 세상에 던진 질문을 반대로 해보았다. 그렇다면 정 작가는 불운과 결핍을 인정하고, ‘진짜’ 행복의 의미를 찾아냈는지. 세상에 ‘완전한 행복’이 없고, 완벽한 사람도 없으며, 무결한 소설도 없을 텐데, 참 얄궂은 질문이다. 그런데도 작가는 “내 행복에 90점을 주겠노라”며 웃었다. “소설가로서 저는 재능의 결핍을 알아요. 인정해요. 쓸 때마다 괴롭지만 어떻게든 써내요. 할 수 없는 건 생각하지 않아요. 할 수 있는 걸, 열심히, 잘하려고 하죠. 그리고 오늘 새 책 나왔잖아요, 이렇게 소설 이야기할 수 있고, 곧 독자들도 만나요. 안 행복할 수 있을까요, 하하.”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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