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에게 권하라'는 지주택에 쏠리는 눈.."투자해도 될까요"

박승희 기자 2021. 6. 9. 06: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토지 95% 확보해야 사업계획승인..땅 문제로 사업지체·비용↑
"성공사례 있지만 섣부른 진입 금물..토지매입율 등 확인해야"
© News1 DB

(서울=뉴스1) 박승희 기자 = "서울 한가운데서 유명한 건설사 이름을 걸고 광고를 하길래 혹했죠. 시세 절반 값에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얼른 가입하려고 했어요. 조건이 너무 좋아 보여 주변에도 투자를 권했는데, 지주택이란 얘길 들은 친구가 '지주택은 원수에게나 권하는 것'이라고 뜯어말려서 결국 접었어요. 맞는 선택인지는 모르겠네요."

끝을 모르고 치솟는 집값에 지역주택조합(지주택)에 관심을 보이는 수요자들이 늘고 있다. 지주택은 청약통장 없이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토지 확보가 까다로워 장기간 사업이 표류하거나 결국 좌초되는 경우도 많아 유의해야 한다는 경고가 이어진다.

9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시내 25개 자치구 중 19개 구, 총 109곳에서 지주택 사업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 중 69.7%인 76곳이 사업 첫 단계인 조합원 모집 신고 단계에 머물러 있고, 조합설립인가와 사업계획승인을 거쳐 착공까지 완료한 곳은 5곳에 그친다. 4.5%가량이 실제 공사에 들어간 것이다.

조합원 모집 단계 이전까지 지주택 사업 현황을 포함하면 성공 확률은 더욱 줄어든다. 지주택을 시작하려면 20명 이상으로 구성된 추진위원회가 필요하다. 인원이 확보되면 목표 토지 50% 이상의 사용 동의서를 확보해 구청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과정 이후에야 첫 단계인 '조합원 모집 신고' 단계에 돌입한다.

지주택은 해당 시 또는 군에서 6개월 이상 거주한 무주택자나 85㎡ 이하 1주택자들이 조합을 결성해 주택을 짓는 사업이다. 토지주가 아니더라도, 청약통장 없이도 조합원 가입이 가능하다. 조합이 직접 토지를 확보하고 건축비를 분담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시행사 이윤 등이 없으니 조합원 분담금이 저렴하다. 실제로 초기에 조합원이 되기 위한 분담금은 수천만원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토지매입이 지연되거나 조합의 운영 비리가 터지면 사업 자체가 불투명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지주택 사업은 토지 확보율에 따라 단계가 나뉜다. 착공 바로 전 단계인 사업계획승인이 나려면 토지 확보율을 95%까지 높여야 한다. 토지 소유자가 '알박기'를 시도하며 토지가격을 높이 부르면서 사업이 수년간 지체되는 경우도 많다. 가입 때는 추가 분담금 이야기가 나오지 않지만, 사업이 지체되며 비용 증가로 추가 분담금 부담도 커진다.

중간에 '털고' 나오려고 해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일부 조합에서는 조합원이 도중에 사정이 생겨서 탈퇴하고 싶더라도 이미 납입한 금액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탈퇴 자체가 어려워 울며 겨자먹기로 사업을 따라가다 보면 초기에 생각했던 비용보다 훨씬 많은 추가 분담금을 내게 되는 경우도 많다. 당초 광고했던 '반값 아파트'는 먼 일이 되는 것이다.

조합 관계자의 부정행위도 비일비재하다. 지난 2월 서울북부지검은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지주택 관계자들을 업무상횡령 등 혐의로 기소했다. 이들은 토지가 확보되지 않았는데도 토지매입율 등 사업현황을 속여 5년간 조합가입비 등 60억원을 편취한 혐의를 받았다. 결국 사업이 무산되더라도 그동안 쏟아부은 투자비 회수는 난망이다. 사업 주체가 조합이라 리스크도 조합원이 떠안게 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지주택 사업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여경희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서울에도 지주택 성공 사례가 있다. 하지만 성공사례만 보고 섣불리 진입했다간 생각보다 사업이 지체되거나 비용이 과다할 수 있다"며 "토지확보율이 얼마나 되는지, 조합이 신뢰감 있게 운영되는지 사전에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정부와 지자체도 지주택 사업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제도 정비에 나서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주택법 개정을 통해 과장 광고를 금지하고 토지 확보 현황 등을 공개하도록 했다. 서울시도 지난해 11월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최종 실행 및 개선 방안 정리를 위해 자치구별 최종 의견수렴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seunghee@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