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완전한 행복·인간 존재 안해..집착할수록 사회 위험해져"

김은비 2021. 6. 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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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 주인공, 행복위해 수단 방법 안가려
딸, 남편 등 가족의 삶까지 파멸로 이끌어
자신만이 특별하단 생각 위험
고통·결핍 등 삶의 일부라 인정해야 진정한 행복도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완전한 인간도, 행복도 존재하지 않잖아요. 내 행복이 타인의 불행과 겹치는 지점이 있는 만큼 우리 모두 타인의 행복에도 책임이 있죠.”

정유정(55) 작가가 신간 ‘완전한 행복’(은행나무)으로 2년만에 돌아왔다. 앞서 ‘7년의 밤’ ‘28’ ‘종의 기원’ 등 이른바 ‘악의 3부작’으로 사이코패스의 심리를 깊게 파고든 저자는 이번에는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다룬다. 책은 뼛속까지 나르시시스트인 주인공 유나가 ‘완전한 행복’을 추구하며 저지르는 악에 대해 이야기한다. 완전한 행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 그녀를 둘러싼 딸, 남편 등 가족의 삶까지 파멸에 이르게 된다.

정유정 작가(사진=ⓒ안상미)
최근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작가를 만났다. 잔인한 살인 사건을 다룬 스릴러 소설부터 사이코패스의 내밀한 심리까지 치밀하게 쓰는 작가는 왠지 냉철할 것 같다는 생각과 달리 부드럽고 쾌활한 미소로 마주했다. 그는 “사람들이 나를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차갑고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니다”라며 “사실 타인에게 쉽게 상처를 받는 ‘개복치 스타일’”이라고 웃었다. 상처를 잘 받는 성격덕에 사람들의 심리에 특히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도 덧붙였다.

정 작가는 이번 책의 주제로 ‘행복’에 주목했다. 현재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행복에 집착하고 있다는 우려에서다.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하고, 여유가 생기면서 부작용으로 한국 사회 전반에 행복에 대한 강박이 생겼다고 저자는 분석했다. 그는 “미디어에서 비춰지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반드시 행복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다”며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은 박탈감을 느끼고, 왜 불행한 일이 일어날까 속상해하며 심지어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작가의 생각은 오히려 반대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건 아니다”고 단호히 말한 그는 “고통, 불안, 결핍 등도 삶의 일부라는걸 인정할 때 진정한 행복도 알 수 있다”고 부연했다.

여기에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나르시시스트에도 주목했다. 최근 사회적 분위기도 그렇고 부모들도 자녀에게 ‘특별하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저자는 “우리가 특별하다고 생각할 때 위험해질 수 있다”고 염려했다. 극단적 예지만 그는 독일 나치를 말하며 “한 민족이 신탁을 받을 정도로 스스로 특별하다고 생각했을 때 저지른 만행이 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고유하고, 유일무이한 존재인 건 맞지만 특별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번 소설에서도 정 작가의 가장 큰 특징인 입체적 인물과 생동감 넘치는 묘사는 빛을 발한다. 매번 소설을 쓸 때마다 “주인공처럼 생각하고 살려고 한다”는 저자는 이번에도 지난 2년간 나르시시스트로 살기 위해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곤 했다고 말했다. 때문에 지난 4월 소설 집필이 끝나고 일상으로 복귀가 힘들었다. 그는 “책을 다 쓰고 1주일 정도 제주도 올레길에서 하루 20~30km를 걸었다”며 “몸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걷다가 오니 오히려 정신적으로 비뚤어졌던 마음이 다잡혔다”고 말했다.

작가는 인생의 목표이자 욕망을 “평생토록 독자들에게 재미있고, 의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작가에게 글쓰기가 항상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이 더 많다. 2007년 등단 후 14년간 꾸준히 글을 써왔지만 작가는 “매번 신간을 쓸 때마다 처음 책을 쓰는 것처럼 버벅댄다”고 털어놨다. 그는 “고치고 또 고치며 읽을 만하게 만드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솔직히 말했다.

앞으로의 집필 계획에 대해서 작가는 ‘완전한 행복’에 이어 앞으로 ‘욕망’에 대한 소설 2편을 더 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올해는 처음으로 단편 소설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그는 “나이가 더 들어서 힘이 빠지기 전에 최대한 글을 쓸 것”이라고 전했다.

김은비 (demeter@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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