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소설 펴낸 황시운 작가 "생을 포기하고 싶을때 내 이야기가 도움되길"

이호재 기자 2021. 6. 9. 03:0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2011년 5월 17일 저녁 강원 원주시 토지문화관 창작실에 머물던 황시운 작가(45·여)는 동료들과 산책에 나섰다.

2년의 병원 생활을 끝내고 집에 돌아온 2013년 그는 다시 소설을 써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소설을 쓰다 포기한 것도 여러 번이지만 그때마다 가족이 힘이 됐다.

소설을 써냈지만 책을 다시 낼 수 있을 거라고 믿지 못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첫 장편 발표 직후 불의의 사고
하반신 마비돼 1급 지체장애 얻어
단편집 '그래도, 아직은 봄밤'
좌절하는 인물 통해 희망 이야기
황시운 작가는 “사고를 당하고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운이 좋다. 손으로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쓸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황시운 작가 제공
2011년 5월 17일 저녁 강원 원주시 토지문화관 창작실에 머물던 황시운 작가(45·여)는 동료들과 산책에 나섰다. 산책길은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났다. 신이 난 그는 깔깔대며 웃었다. 그가 첫 장편소설 ‘컴백홈’(창비)을 출간한 다음 날이었다. 이제 작가로서 제대로 된 밥벌이를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돌다리를 건너던 황 작가는 그만 발을 헛디뎠다. 그러곤 수 미터 아래로 추락했다.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다.

지난달 25일 소설집 ‘그래도, 아직은 봄밤’(교유서가)을 펴낸 그는 7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추락한 뒤 병원에 실려 갔을 때는 내가 다쳤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고 담담히 말했다. 사고 직후 응급차로 서울로 이송된 뒤 병원에서 3차례 대수술을 했지만 최고의 순간 찾아온 최악의 비극을 차마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 그는 “6개월에 걸쳐 치료와 재활에 힘썼지만 흉추가 부러져 신경이 망가진 사실을 바꿀 순 없었다.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고 나서야 현실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황시운은 2007년 신춘문예 단편소설로 등단했다. 학원 강사로 일하며 문학을 독학한 지 7년 만이었다. 신인 작가에게 현실은 가혹했다. 수차례 계간지에 작품을 기고하다 공모전에 도전했다. 그 결과가 2010년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컴백홈이었다. 이를 통해 작가로서의 자립을 꿈꿨다.

하지만 그는 불의의 사고로 지체장애 1급이 됐다. 휠체어 타는 법을 배우고 바뀐 일상에 적응하는 데 한참이 걸렸다. 하루 종일 멍하니 보내는 날이 많았다. 2년의 병원 생활을 끝내고 집에 돌아온 2013년 그는 다시 소설을 써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통증 탓에 무엇인가에 집중하는 일 자체가 어려웠다. 소설을 쓰다 포기한 것도 여러 번이지만 그때마다 가족이 힘이 됐다.

소설을 써냈지만 책을 다시 낼 수 있을 거라고 믿지 못했다. 자존감이 바닥까지 내려갔다. ‘책을 내는 건 종이 낭비가 아닐까’ ‘소설을 제대로 쓴 걸까’. 지난해 출판사 연락을 먼저 받고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등단 후 첫 책을 내기까지 3년 동안 출판 제의를 거절당한 트라우마 때문에 먼저 출간할 생각조차 못 한 거죠. 이제는 그 기억이 자격지심이자 피해의식이라는 걸 알아요.”

그의 경험은 소설에 녹아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그의 인생처럼 삶의 파도에 휩쓸려 좌절하곤 한다. 단편소설 ‘매듭’에서 주인공은 결혼 석 달 만에 닥쳐온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남편을 돌보고, ‘어떤 이별’의 주인공은 이웃에 사는 정신지체 청년에게 아이를 잃는다. 그는 사고 경험을 담은 에세이를 쓰고 있다. “어느 한 시절의 제가 그랬듯 생을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 좌절한 누군가에게 제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쓰고 또 쓸 준비가 돼 있어요. 다른 이들보다 느릴지언정 멈추지는 않을 겁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