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법리 대신 '정치논리'로 대법원 판단 뒤집은 강제징용 판결
[경향신문]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이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이 각하 결정을 내린 것을 두고 파장이 일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7일 내린 결정은 2018년 10월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을 뒤집는 것은 물론 식민지배의 불법성마저 ‘국내 논리’로 깎아내리는 등 선을 넘는 논리로 점철됐기 때문이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했을 때 본안 심리 없이 재판을 끝내는 결정이다. 재판부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낼 자격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결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되거나 포기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한다는 것이 재판부의 인식이다. 게다가 재판부는 2018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마저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기초한 판결이며 “국내법적 해석에 불과하다”면서 폄훼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은 한일협정이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한 협정이 아니므로 강제징용 위자료 청구권은 한일협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 것임을 잘못 해석했거나 무시한 오독(誤讀)과 다름없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재판부는 원고 승소로 강제집행이 이뤄지면 한·미관계까지 악화돼 안보가 불안해진다며 사건 쟁점과 무관한 논리를 동원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적 가치를 공유하는 서방세력의 대표국가들 중 하나인 일본과의 관계가 훼손되고, 이는 결국 한·미 동맹으로 우리 안보와 직결된 미합중국과의 관계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은 행정부의 외교권에 대한 간섭으로 볼 소지도 있다. 강제집행이 ‘국가의 안전보장과 질서유지라는 헌법상의 대원칙을 침해한다’는 인식은 논리의 비약이다. 일본 정부와 법원조차 개인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터에 국가 우선의 논리를 동원한 일장훈시와 같은 주장이 당혹스럽다.
이번 판결로 소송 제기 이래 6년간 결정을 기다려온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낙담하고 있다. 상급심의 판단을 물어야 한다. 최근 들어 한·일 과거사와 관련된 소송에서 법원이 잇따라 정치적 판결을 내고 있다. 하지만 재판부가 언급한 외교·안보 사안은 정부가 해결해야 할 몫이다. 사법부는 법리에 충실한 판단을 하면 된다. 정부는 지속적으로 외교적 해법을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이런 판결이 문제의 해결을 더 어렵게 하는 건 아닌지 법원은 성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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