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뼈 부러져도 뛰었다..투혼의 멀티 플레이어

김형열 기자 2021. 6. 8.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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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팬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했던 유상철 전 감독은 투혼의 상징이었습니다.

마지막 벨기에전 동점 골로 한국 축구가 살아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골키퍼를 제외한 전 포지션에서 K리그 베스트 11에 뽑힌 '원조 멀티 플레이어'였고, 일본 J리그에서도 사랑받을 정도로 최선을 다한 선수였습니다.

축구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은 유상철은 많은 명장면과 함께 투혼의 멀티 플레이어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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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축구 팬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했던 유상철 전 감독은 투혼의 상징이었습니다. 선수 시절 코뼈가 부러지고도 골을 넣었고, 피를 흘리면서도 붕대를 감고 뛰었습니다. 골키퍼를 빼고 모든 자리를 다 소화할 수 있는 능력에다가, 이렇게 몸을 아끼지 않는 투지로 우리 축구 역사에 수많은 명장면을 남겼습니다.

그 순간들을, 김형열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한국 축구의 위기 때마다 유상철의 투혼은 빛났습니다.

감독이 경질된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는 온몸을 날려 '전패 치욕'을 막아냈습니다.

마지막 벨기에전 동점 골로 한국 축구가 살아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2001년 연이은 5대 0 패배로 비난받던 히딩크호를 구한 것도 유상철이었습니다.

상대와 부딪혀 코뼈가 부러진 상태에서도,

[유상철 : 뼛조각이 뇌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으니까 뛰지 말라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한다고 그랬어요.]

기어이 머리로 결승 골을 뽑아내며 불굴의 투지를 발휘했습니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

폴란드전에서 터트린 유상철의 통렬한 중거리포는 4강 신화의 기폭제가 됐고, 대한민국은 행복한 6월을 보냈습니다.

유상철은 한일전에서 더 빛났습니다.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역전극의 발판을 놓은 동점 골을 시작으로, 일본만 만나면 투지는 배가 됐습니다.

유니폼이 찢어져도 거침없이 부딪혔고 머리를 다쳐 피를 흘려도 붕대를 감고 뛰었습니다.

감독이 원하면 어디서든 뛰었습니다.

골키퍼를 제외한 전 포지션에서 K리그 베스트 11에 뽑힌 '원조 멀티 플레이어'였고, 일본 J리그에서도 사랑받을 정도로 최선을 다한 선수였습니다.

숨은 아픔이 있었기에 한 발 더 뛰었습니다.

[유상철 : 제가 왼쪽 눈에 시력이 없어요. '이 단점을 내가 어떻게 보완해야 하나?' 생각하면서 진짜 피나는 연습을 누구보다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축구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은 유상철은 많은 명장면과 함께 투혼의 멀티 플레이어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영상편집 : 우기정, CG : 강윤정) 

▷ 그라운드 돌아오겠다더니…'2002 영웅' 잠들다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6348142 ]

김형열 기자henry13@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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