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과 함께했던 '한국축구의 순간들'

이정호 기자 alpha@kyunghyang.com 2021. 6. 8. 19: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스포츠경향]

2002년 6월 4일 저녁 부산에서 열린 한일월드컵 D조 한국의 첫경기 폴란드와의 경기에서 두번째 골을 넣은 유상철(왼쪽)이 설기현과 환호하는 모습. 연합뉴스


그는 모든 감독들의 워너비였다. 최후방 수비수는 물론 패스, 슈팅, 헤딩, 게임메이킹 능력에 최전방 해결사까지,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에 설 수 있는 뛰어난 축구 감각의 소유자였다. K리그에 데뷔한 1994년에는 수비수로, 1998년엔 미드필더로, 2002년엔 공격수(1998년 득점왕)로 베스트11에 뽑힌 만능 플레이어에 리더십까지 감독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울산 현대에 입단한 뒤 3년 만에 팀의 우승을 이끌며 일찌감치 한국축구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모든 면에서 특출나 오히려 그라운드에서는 평범해 보였다. 더 화려한 자리를 욕심낼 법도 했지만, 그는 소속팀에서나 대표팀에서 묵묵히 살림꾼 역할을 자처했다.

현역 시절 ‘유비’라는 별명으로 사랑받았던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췌장암 투병 끝에 7일 오후 향년 50세에 세상을 떠났다. 투병 사실이 알려진 2019년 인천 사령탑으로 정규리그 경남FC와의 최종전에서 극적으로 팀의 잔류를 이끈 유 전 감독은 ‘(건강하게 돌아온다는)남은 약속 하나도 꼭 지켜줘’라는 팬들의 현수막 응원에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의지력을 갖고 힘들더라도 잘 이겨내겠다”고 화답했지만 끝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유 전 감독이 현역으로 뛴 시간, 한국축구도 최전성기를 누렸다. A매치에서 18골(122경기)로 많은 골을 넣지 못했지만, 골넣는 수비수(혹은 미드필더)로, 두 팔을 벌려 환호하는 세리머리로 숱한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A매치 데뷔골부터 강렬했다. 역대 한일전 명승부 중 하나로 꼽히는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축구 8강에서 기록했다. 유 전 감독은 0-1로 뒤진 후반 16분 골문으로 쇄도한 한정국의 감각적인 힐 패스를 무릎으로 컨트롤한 뒤 오른발 슈팅으로 동점골을 넣어 극적인 반전을 만들어냈다. 한국은 이후 황선홍의 추가골로 일본에 2-1로 승리했다.

1998 프랑스월드컵 조별예선 최종전 벨기에전에서는 ‘투혼의 아이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성적 부진(2패)으로 차범근 감독이 중도 퇴진한 초유의 상황에서 유 전 감독이 주장 완장을 차고 팀을 추스렸다. 벨기에의 쉼없는 공세를 몸을 날려 막았다. 결국 동점골까지 넣었다. 0-1로 뒤진 후반 프리킥 찬스에서 하석주의 다소 긴 듯했던 패스를 유 전 감독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다리를 뻗어 또하나의 명장면을 남겼다.

유 전 감독은 그라운드에서 투사였다. 코뼈가 부러져도 몸을 사리지 않았다. 2001년 6월 월드컵 전초전으로 열린 컨페더레이션스컵 때는 멕시코를 상대로 후반 헤딩 결승골을 넣어 한국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경기 뒤 유 전 감독이 코뼈가 부러진 상태로 뛴 것이 알려졌다. 선배인 홍명보(울산 감독)도 “승부욕과 투혼이 대단했던 선수”로 유 전 감독을 추억하는 장면이다. 2003년 한일전에서는 유니폼 전면이 찢어질 정도로 견제를 받으며 뛴 장면이 화제가 됐다. 현역 후반기에는 왼쪽 눈이 거의 실명된 상태로 선수 생활을 한 것이 알려져 팬들을 놀라게 했다.

유 전 감독의 가장 유명한 득점은 월드컵 4강 역사를 쓴 2002년 한일 월드컵이었다. 6월 부산에서 열린 조별리그 1차전 폴란드전에서 1-0의 불안한 리드가 이어지던 후반 8분 유 전 감독의 중거리 슈팅이 그대로 골망을 흔들었다. 유 전 감독 스스로도 “잊혀지지 않는 골은 한일 월드컵 골”이라고 말했다.

유 전 감독은 한일 월드컵에서 세계적인 스타 히바우두(브라질), 미하엘 발라크(독일) 등과 함께 대회 올스타 미드필더 부문에 선정되며 한국축구의 위상을 더 높였다.

이정호 기자 alpha@kyunghyang.com

Copyright © 스포츠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