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한 보상은 언제 주나".. '분류작업 거부권' 카드 꺼내든 택배기사들

심민관 기자 2021. 6. 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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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택배기사 A(44)씨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A씨는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하루 2~3시간의 분류작업을 포함해 주 70시간의 과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다른 택배기사 최모(43)씨는 “과로사를 막기 위한 노사간 사회적 합의가 올해 초 극적으로 타결됐지만, 택배기사들의 업무 부담은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택배업계에 따르면 과로사로 사망한 택배 노동자는 지난해 16명, 올해 들어서만 5명으로 추정된다.

택배기사들이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 올초 노사간 ‘사회적 합의’를 통해 기사들의 과로사 원인으로 지목돼 온 택배 분류작업을 택배회사 부담으로 바꾸기로 했지만, 약속 이행이 지연되고 있는 탓이다.

택배업계는 사회적 합의 이행을 명분으로 택배비 인상을 추진해왔다. 이를 통해 분류작업을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분류 담당 인력 충원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택배기사들이 여전히 격무를 떠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한 택배물류센터에서 관계자들이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기사와는 무관). /연합뉴스

택배업계 노사는 지난 1월 사회적 합의를 통해 30년간 택배기사가 해 온 분류작업을 택배회사가 맡도록 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다만, 현장 사정 등을 감안해 택배기사가 분류작업을 하는 경우에는 택배회사가 대가를 지급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현장에선 택배기사들이 여전히 대가 없이 분류작업 업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택배노조가 전국 1186명의 택배기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약 85%의 택배기사들이 여전히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택배회사들이 분류작업 인력을 지원하지 않아 혼자서 분류작업을 전부 처리하는 택배기사도 3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택배업체들은 분류작업 지원인력 채용이 쉽지 않아 여전히 기사들에게 의존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한 업체 관계자는 “택배물류 터미널의 경우 도시 외곽에 자리잡은 경우가 많고, 아침 7시부터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할 사람을 찾는게 ‘하늘의 별따기’”라며 “분류작업 인력 지원을 하기 싫어서 못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택배업계에 따르면 보통 1명이 2명의 택배기사 분류작업을 지원하는게 적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택배 자동화설비를 갖춘 경우에는 2명이 5명의 택배기사 분류작업을 지원할 수 있다. 전국 택배업 종사자는 총 5만5000여명인데, 이를 토대로 추정하면 택배 분류작업 지원 인력으로만 최소 2만2000명 이상이 필요하다. 이마저도 자동화 설비를 모든 택배 물류장이 갖췄을 때 얘기다.

현재 가장 많은 분류작업 지원인력을 확보한 CJ대한통운도 분류작업 지원인력이 4100명에 불과하다. 이 회사에 총 2만명의 택배기사가 일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1명이 5명의 택배기사 분류작업을 지원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CJ도 인력이 부족한 편인데, 다른 업장들의 경우 채용된 분류작업 인력 규모가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여전히 택배기사들이 분류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별도의 보상은 없는 상황이다. 택배기사 김모(37)씨는 “택배회사가 최근 택배비를 200원 넘게 인상하면서도, 분류작업 비용은 한 푼도 주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한 택배회사 물류 터미널에서 택배 기사들이 자동 분류기를 통과해 나온 택배 물건을 차량에 싣고 있다(기사와는 무관). /연합뉴스

택배노조는 업체들이 택배비를 인상하고도 지원인력을 제대로 충원하지 않고 있다며, 지난 7일부터는 분류작업 거부를 선언한 상태다. 한 택배기사는 “돈을 받아야 아르바이트생이라도 구할 것 아니냐”면서 “결국엔 택배회사 이익을 위해 택배기사들만 몸으로 때워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택배회사들은 택배기사들이 분류작업을 할 경우 비용 지급을 약속한 건 맞지만, 사회적 합의를 이행하는 구체적인 시점에 대해선 아직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택배비 인상 역시 노조 측과 약속한대로 분류작업 이행을 위한 시설투자나 인력채용 등의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택배업계에 따르면 CJ대한통운은 지난 4월부터 택배요금을 250원 올렸다. 다른 택배회사들도 최근 200~250원 가량 택배비를 인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형택배회사 관계자는 “사회적 합의 이행 시점에 대한 유예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지금 당장 택배 분류작업비까지 모두 지급할 경우에는 대규모 영업적자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한편 8일 택배 노사간 2차 사회적 합의안 작성을 위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택배노조 측은 합의문 이행을 더이상 유예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택배회사들과 사회적 합의가 타결될 때까지 분류작업 거부를 이어갈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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