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이상 약 복용하고 있다면..장수국가 日의학박사가 권하는 '후회없는 약 선택법'

이병문 2021. 6. 8.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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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대사 떨어진 고령층
여러 약 함께 먹다간 부작용 십상
심장병 환자 항응고제 복용때
척추관절약 끊지 않으면
온몸에 시퍼렇게 멍들기도
소염진통제도 고혈압 위험 키워
선진국에선 '탈처방' 운동 활발
한국도 약 남용 심각한 수준
불필요한 처방 줄인 의사에게
과감한 인센티브 주고
약성분 영어표기 등 불친절한 정보
한글로 알기 쉽게 설명 서둘러야

◆ 매경 포커스 / 100세 건강 ◆

약은 양날의 칼과 같다. 약은 병을 낫게 하지만, 오·남용하면 또 다른 질환을 불러 수명을 재촉한다. 약은 잘 쓰면 명약(名藥), 잘못 쓰면 독약(毒藥)인 셈이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의료기관을 방문한 횟수는 연간 16.9회(2018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6.8회)보다 2.5배 높다. 일본은 12.6회로 우리나라에 이어 두 번째다. 병·의원에 자주 간다는 말은 약 처방을 많이 받는다는 얘기다. 한 해 지출된 약값은 건강보험진료비 86조원의 20.6%에 달하는 17조7000억원(2019년 기준)이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감기로 병원에 갔을 뿐인데 4~5가지 약을 받아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열 나면 해열제, 두통에는 진통제, 기침이 나면 천식약, 콧물이 나오면 비염약, 식욕이 없다면 소화제, 약 때문에 위가 아픈 것을 막기 위해 위장약을 처방한다. 국내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 달 동안 매일 5개 이상 약을 복용하는 65세 이상은 44%였고 1년간 매일 5개 이상 약을 복용하는 경우도 10%에 달했다.

미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워싱턴포스트는 평소 5가지 이상 의약품을 처방받아 복용하는 인구는 65~69세 25%, 70~79세 46%(2017년 기준)라고 보도했다. 위산역류억제, 심장병, 우울증, 불면증 및 기타 질환과 관련해 20개 이상 약을 복용하는 사례도 흔했다. 일본은 지바대(千葉大)병원이 조사한 결과, 노인 환자의 26%가 약을 10개 이상 복용하고 있고 이 중 48%가 '고령자 주의약물'로 나타났다.

이처럼 다양한 약물을 동시에 복용하는 것을 '폴리파머시(polypharmacy·다제약물)'라고 한다. 특히 신진대사 기능이 떨어진 고령층이 다제약물에 길들여지면 현기증, 착란, 낙상 등에 노출될 우려가 있고 무엇보다 약물 부작용으로 병·의원을 찾으면 또다시 의약품을 처방해 '처방행진'이란 악순환에 빠진다. 고혈압약을 먹으면 발목이 붓는 경향이 있는데, 병원에 가면 의사는 이뇨제를 처방하고, 이뇨제는 칼륨결핍증을 초래한다. 또다시 병·의원을 찾아가면 칼륨을 떨어뜨리는 약물을 처방받는데, 이는 메스꺼움을 유발하고, 또다시 다른 처방약을 받는다. 이는 착란상태로 이어지고 또 다른 약물 처방을 필요로 한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우리 주변에서 매일 아침 고혈압, 고지혈증 치료약을 먹거나 식사 후 소화제, 잠들기 전에 수면제를 복용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문제는 병을 낫기 위해 먹는 약의 개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수명을 단축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약의 부작용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오랫동안 몇 개씩 복용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약 성분이 혈액 속으로 들어가면 일부가 환부에 도달해 약효를 발휘한다. 하지만 남은 약 성분은 혈액과 함께 온몸을 돌아다닌다. 즉, 몸 안에 들어온 약은 병이 없는 부위로 갈 수 있는데, 이때 일어날 수 있는 부적합한 효능이 바로 '부작용'이다. 노인층의 최소 15%가 의약품 부작용을 겪고 있다. 이 중 절반은 예방이 충분히 가능하다.

심장병 가운데 심방세동 및 판막질환자는 와파린(항응고제)을 복용하는데, 다른 약과 함께 먹으면 약효가 아주 좋아지거나 떨어진다. 약효가 확 높아지면 뇌출혈이 생기고, 확 떨어지면 판막이 망가진다. 부정맥 환자는 소화제산제(위산분비억제)를 잘못 먹으면 상태가 매우 악화될 수 있다.

박진식 세종병원그룹 이사장은 "와파린 약을 복용하고 있는 환자분들에게 다른 약이랑 함께 먹으면 안 된다고 아무리 주지해도 척추관절약을 무의식적으로 동시에 복용해 와파린 약효가 확 올라가 온몸에 멍이 드는 경우를 종종 본다"면서 "다양한 약을 동시에 먹는 '폴리파머시'는 약물 간 상호작용에 의해 질환을 초래하고 이는 또 다른 약물 처방으로 이어져 약물 부작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노인성 질환인 척추·관절병으로 병원에 가면 3~4개 약을 처방받게 된다. 통증과 관련해 처방받은 소염진통제는 혈압을 높일 수 있다. 혈압을 높이는 대표적인 호르몬은 '레닌앤지오텐신'이고, 혈관을 확장해 혈압을 낮추는 대표적인 생리 활성물질은 '프로스타글란딘'이다. 이 프로스타글란딘이란 물질이 만들어지려면 특정 효소들(COX)이 작용해야 한다. 그런데 COX 효소는 통증에도 관여한다. 즉, COX를 억제하면 통증을 줄일 수 있다. 이를 이용한 소염진통제가 개발돼 있는데, 이를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NSAIDs)라고 한다. 아스피린과 같이 우리가 복용하는 진통제의 상당수가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다. 이 약물은 통증 억제 효과가 뛰어나 골관절염이나 류머티즘 관절염의 통증 억제를 위해 사용된다. 문제는 약이 통증을 줄이면서 동시에 혈압을 낮춰주는 프로스타글란딘 형성도 억제한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약을 먹고 통증은 줄었지만 혈압이 오르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젊은 사람은 프로스타글란딘이 일정 수준 이상 생성되기 때문에 소염진통제를 복용해도 혈압 조절에 별문제가 없지만 고령자는 고혈압에 쉽게 노출된다.

이 같은 '다제약물 부작용'은 이제 세계 의료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캐나다, 호주에서 시작되어 미국 의료계를 중심으로 '탈처방(deprescribing)'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약을 안 쓰고 최고의 치료법을 찾자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약 처방을 줄이려면 △약제급여 적정성 평가 등 제도적 보완 △환자가 약 효능, 부작용과 위험성을 이해하기 쉽게 개선 △환자 및 보호자 인식과 노력 등이 필요하다. 2001년 도입된 약제급여 적정성 평가는 의약품 처방을 줄이는 의사에게 절감된 약제비의 30%를 인센티브로 주고 있지만 효과가 없다.

한 병원장은 "꼭 필요하지 않은 약을 습관적으로 처방하는 경향이 많은 소화기질환과 같은 일부 진료과목의 적정성 평가를 강화하고 약 처방을 줄인 병원과 의사에게 보다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약 처방전도 환자가 알기 쉽게 바꿔야 한다. 병원에서 처방전을 쓸 때 거의 대부분 영어로 쓴다. 환자나 보호자는 한글로 써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영어로 약품명이 표기되어 물어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 때문에 환자나 보호자는 대학 졸업자라도 어떤 성분의 약이냐고 묻기보다 식전·식후 몇 알을 복용해야 하느냐에만 관심을 갖는다. 영어나 한글 처방전 뒤에 '어떤 약'인지 보다 자세하게 써줘야 한다.

약물 부작용에서 벗어나려면 환자나 보호자의 노력도 매우 중요하다. 실제 의사가 약 처방을 줄이려고 하면 '왜 약을 안 주냐'고 따지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불필요한 약은 '독약'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고령 환자의 자식들은 '부모에게 건강하게 오래 사시라'고 말만 하지 말고 지금 당장 복용하는 약이 몇 개이며 어떤 용도로 먹는지 파악하는 게 최고의 효도인지 모른다. 약은 가장 중요한 간이나 신장에 부담을 준다. 몸 안의 화학공장인 간(肝)과 정수기 역할을 하는 신장(콩팥)은 매일 다양한 약을 먹게 되면 기능을 제대로 유지할 수 없다. 간은 체내 유해 성분을 해독할 수 없고 신장은 혈액을 여과해 불필요한 이물질을 몸 밖으로 소변과 함께 배출하기 어렵게 된다. 이와 함께 모든 약은 장(腸) 속의 환경이나 호르몬 등 몸속 균형을 어지럽힌다. 약은 편리하고 고맙기도 하지만 그 대가가 너무나도 크다. 약은 올바른 식·생활 습관을 개선해 끊는 게 정답이다.

"좋은 의사는 약을 권하지 않고, 똑똑한 환자는 약을 멀리하죠"

장수국가 日의학박사가 권하는 '후회없는 약 선택법'

콜레스테롤 수치 적신호 4050
식생활 개선·운동으로 관리 가능
오래 살려면 지나친 약 의존 피해야

혈중 LDL(저밀도 지단백)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으면 고지혈증 약을 '보약'이라고 생각하고 먹으라는 의사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혈압도 마찬가지다. 혈압이 140㎎/Hg만 넘으면 의사는 혈압강하제를 권하고 환자들도 아무런 거부감 없이 처방받아 평생 먹게 된다.

나이가 들면 콜레스테롤(정상범위 LDL 콜레스테롤 130㎎/㎗ 미만, 총 콜레스테롤 수치 200㎎/㎗ 미만, 중성지방 수치 150㎎/㎗ 미만)이나 혈압(정상범위 수축기 120㎜Hg, 이완기 80 ㎜Hg 미만) 수치가 올라가게 된다. 40~50대 중장년층 상당수가 약복용 기준의 전 단계나 경계선에 걸쳐 있다. 이들은 식생활 개선보다 '약물'에 쉽게 의존한다.

장수 국가인 일본에서는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약을 멀리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초고령사회 전철을 밟고 있어 귀 기울일 만하다. 일본 니가타대학 명예교수인 오카다 마사히코 의학박사('죽을 때 후회하지 않을 의사와 약 선택법' 저자)는 "연령과 타고난 체질, 자연 치유력을 고려하지 않고 약부터 건네는 의사는 좋은 의사가 아니다"면서 "약은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당신이나 가족이 10가지 이상 약을 복용하고 있다면 담당 주치의에게 약을 줄여줄 것을 요청하라"고 조언했다.

약의 부작용은 처음 복용한 며칠 후부터 6개월 사이에 나타난다. 약은 항상 부작용이 나타날 위험이 있지만 예측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이러한 배경을 설명하면서 어떤 증상이 나타날지, 증상이 나타날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설명해 주는 의사가 좋은 의사다.

곤도 마코토 의학박사('약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47가지 방법' 저자)는 "'효과가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몇 십 년이나 계속 복용했기 때문에 끊으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무섭다'는 환자들이 많다"면서 "식생활 개선과 함께 단계적으로 약을 끊어야 장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약은 아는 만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기 전에 약학정보원 홈페이지에서 의약품과 성분, 제조사로도 검색할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운영하는 의약품안전나라에서도 의약품 정보와 안전한 사용법, 부작용 등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약학정보원 홈페이지에서 항암제로 쓰이는 '아바스틴주'를 검색하면 위장관계 천공 및 누공, 고혈압 등 16가지에 달하는 경고, 이상반응, 투여하면 안 되는 환자를 비롯한 주의사항 등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병문 의료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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