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식 칼럼] 절박한 쪽이 이긴다

한겨레 2021. 6. 8.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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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식 칼럼]민주당은 어떤가. 전당대회를 통해, 그 이후에도 국민은 절박감은 고사하고 무슨 변화를 느끼고 있을까. 불과 1년 전 해보나 마나 했던 대선이 이제 누구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그런 선거에서는 절박한 쪽이 이긴다. 쇼한다는 비판보다 더한 것은 쇼라도 하라는 힐난과 조롱이다.

김기식 ㅣ 더미래연구소장

1342만표 대 1485만표. 헌정사상 초유의 탄핵 상황, 정권교체가 기정사실화된 조건에서도 문재인 후보의 득표수는 홍준표, 안철수 후보의 합산표보다 143만표 적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과 중간층이 결합했다는 이른바 정치적 탄핵연합은 2017년 대선에서 형성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초기 80%에 이른 지지도는 2017년 대선에서 안철수를 찍은 중간층의 지지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여당에 180석에 이르는 압승을 안긴 2020년 총선에서도 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과 열린민주당의 정당득표는 1081만표,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과 국민의당의 정당득표는 1133만표였다.

돌이켜 보면 대선은 늘 다자구도였고, 김대중 대통령은 아이엠에프(IMF) 경제위기라는 보수정당 집권 기간 나라가 망한 상황에서 디제이피(DJP)연합을 하고도 겨우 39만표 차로 당선되었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정몽준과 단일화를 했음에도 57만표 차로 승리했다. 2012년에는 안철수와 단일화하고도 108만표 차로 패배했다.

대선은 구도, 인물, 정책 쟁점에 의해 좌우된다고 한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구도다.

민주당 일각에서 주장하듯 지지층을 결집하면 승리한다는 생각은 역대 선거에서 다자구도가 만들어낸 착각이다. 거대 양당의 지지층이 30% 내외에 불과한 유권자 지형에서 지지층의 결집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더구나 이제 민주당에는 김종필도, 정몽준도, 안철수도 없다.

반면 야권은 4·7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압승을 통해 단일화를 통한 양자구도의 효과를 확인하였다. 스스로 자만에 빠지지 않는 한 야권의 분열을 통한 다자구도는 다시 기대하기 어렵다.

어쩌면 2017년 대선 41.1%의 득표율이 기존 민주당이 독자적으로 얻을 수 있었던 표의 최대치였을지 모른다. 민주당으로서는 차기 대선이 다자구도에서의 단일화 효과 없이 양자구도로 치르는 첫 대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민주당은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를 잃었고, 야권에는 탄핵을 지지했던 중간층이 투표할 만한 후보가 등판을 준비 중이다. 이제 민주당은 스스로의 힘으로 신뢰를 회복하고 중간층의 표심을 잡지 않고는 대선에서 승리하는 길이 없다.

그러나 중간층 전략을 정책과 노선의 우경화로 이해하면 그 역시 큰 착각이다. 구도는 세력구도만이 아니라 경제민주화처럼 시대적 과제와 관련된 정책 프레임을 통해서도 형성된다.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을 표방하는 민주당의 부동산 대책이 무주택자와 서민주택에 사는 계층이 아닌 서울 20여만 종부세 대상자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산술적 표 계산으로 스스로 구도를 무너뜨려 게도 구럭도 다 놓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지금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는 위기의식에 기반을 둔 절박감이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국민이 느끼기에 그렇다. 이준석 돌풍이 무서운 것은 보수적이고 꼰대 세대가 주류인 국민의힘 지지층이 그를 전략적으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텃밭 대구에서 이준석은 탄핵은 정당했다고 거침없이 이야기한다. 그런데 티케이(TK) 지역에서 이준석 후보의 지지율이 40% 중반대로 경쟁 후보를 압도한다. 2002년 정권재창출을 위해 노무현 돌풍을 만들어냈던 호남 유권자의 전략적 선택을 연상시킨다. 반드시 정권교체를 하겠다는 절박감의 표현이다.

민주당은 어떤가. 전당대회를 통해, 그 이후에도 국민은 절박감은 고사하고 무슨 변화를 느끼고 있을까. 대선 경선 국면에 들어가야 하는 시점에 ‘후보의 시간’이 ‘조국의 시간’으로 되어버린 상황에서도 당은 여전히 과거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혹여나 180석에 가까운 거대 의석에 기대 설혹 정권교체되어도 견딜 수 있다는 심리, 안 되면 차차기를 보자는 심리가 깔려 있는 것은 아닌지.

세를 과시하고, 대규모 행사를 개최하고, 매머드급 캠프를 꾸리는 구태의연한 정치로는 이준석 돌풍에, 윤석열의 등판에 대처하기 어렵다. 윤석열은 그 자체로도 위협적이지만, 적어도 오세훈을 당선시킨 안철수의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불과 1년 전 해보나 마나 했던 대선이 이제 누구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그런 선거에서는 절박한 쪽이 이긴다. 쇼한다는 비판보다 더한 것은 쇼라도 하라는 힐난과 조롱이다.

코로나 이후 대한민국을 어찌 재도약시킬지, 어떻게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지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고 각자가 가진 모든 기득권을 다 버려서라도 반드시 해내겠다는 결기와 다짐을 실천으로 보여야 한다. 이기고 싶다면, 무엇인가 지키고 싶다면 과감하게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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