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이 '잘리면' 안도하는 '진짜' 책임자들 [그렇군]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2021. 6. 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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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국방부가 지난 7일 성폭력 예방 제도개선 전담팀 출범 회의를 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아니나 다를까. 청와대는 성추행 피해 여군 중사 사망 사건의 책임을 묻겠다며 ‘조자룡 헌칼 쓰듯’ 공군참모총장을 잘랐다. 분노의 여론을 조금이나마 달래는 데는 효과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일 “최고 상급자까지 보고와 조치 과정을 포함한 지휘라인 문제도 살펴보고 엄중하게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국방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사건의 경위에 관련된 자들을 모조리 조사하겠다고 ‘칼춤 추기’에 나섰다.

과연 효과가 있을까. 또 총장이 경질되면 그 이후 무슨 일이 벌어질까. 과거 사례를 보면 대형 사건·사고가 발생한 후 총장이 경질되면, 그 여파로 관련 실무자들은 줄줄이 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그 뒤에 숨어있는 ‘진짜’ 책임자들은 대부분 빠져 나갔다. 진짜 책임자들은 대형 사건·사고가 일어나게끔 책임감 없이 조직을 이끈 부서장들이다. 이들은 도의적 책임은 있을지라도 시스템 속에서 절차상으로 문제가 없었다는 식으로 빠져 나간다. 장관이나 총장급이 경질되면 그 다음 수순은 무슨 위원회 설치다. 어떤 경우에는 ‘윗선’ 보호 차원에서 ‘꼬리 짜르기’도 이뤄진다. 지난해 해병대 경계실패 책임을 물을 때 그랬다. 징계 잣대가 여러 개인 셈이다.

총장이 잘리면 ‘진짜 책임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쉰다. 총장 경질이라는 대형 폭풍이 오히려 보호막이다. 통상적으로 총장 경질로 ‘줄줄이 사탕’식 징계가 이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계선상에 있는 실무자들만 다칠 뿐이다. 이미 ‘그들끼리 리그’에서는 배후의 ‘쎈놈’은 건들지 않는다. 국방부 검찰단이 관련 부대·기관에 압수수색을 하면서 정작 늑장·부실 수사 의혹의 핵심인 공군 검찰을 제외한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하물며 그 윗선은 말할 것도 없다. 정권과 친하다면 더욱 그렇다.

국방부 차원의 수사·감사는 아마도 잘린 총장 보고라인을 들볶는 데 집중할 것이다. 총장도 없는 데 만만한 대상이다. 이후 이번 사건이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나면 핵심 책임자들은 ‘시간의 면죄부’까지 받고 승승장구할 것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그렇다.

군에서 대형 사건·사고가 터지면 ‘한수 앞’을 보는 군인들을 일찌감치 후임 참모총장이 누구인지부터 촉각을 곤두세운다. 공군에서도 벌써 후임 총장 하마평이 무성하다. ‘공군에서 사고가 터졌으니 공군본부 예하에서는 나오지 않으니 A중장이 유력하다’ ‘이 정부가 파격과 개혁을 좋아하니 B사령관이 온다고 하더라’는 말이 벌써 파다하다.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군 간부들이 후속 장군 인사까지 헤아리는 사이 군심은 엉뚱한 데로 흘러간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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