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이팅' 하듯 침투.. "중국의 속내를 보라"

오남석 기자 2021. 6. 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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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 거주하는 위구르 공동체의 한 관계자가 지난 3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터키 방문에 맞춰 이스탄불에서 열린 위구르 인권 탄압 규탄집회 도중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밟고 서 있다. AP 뉴시스

■ 글로벌 반중정서 확산… 中비판서 잇단 출간

경제원조·투자로 교류 시작하지만 정치·문화 등 전방위로 영향력 확대

中, 건국이후 20차례 넘는 영토분쟁… 국력 강해지면서 분쟁 강도 세져

美·中대립 갈수록 심화… 韓 ‘정치·경제 분리 외교전략’ 유지 어려워져

대선국면서 치열한 토론 필요…“지정학적 고민 담은 책 더 많이 나와야”

신(新)냉전이라는 말을 낳을 정도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 긴장이 높아지고 전 세계적으로 반중(反中) 정서가 확산하는 가운데,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체제의 중국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책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이들 책은 중국을 반자유·반민주 체제로 규정하고, 국제사회에 미치는 중국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을 방치해선 안 된다는 경고음을 담고 있다. 국제 정치, 국제 경제의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은 한편으로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의 주요 동맹국이면서 다른 편으로는 경제 및 북한 문제를 두고 중국과도 협력해야 하는 복잡한 위치에 놓여 있다. 대외정책의 성패에 따라 한국의 번영은 물론 한반도의 운명도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만큼, 내년 3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국내 정치권과 지식 사회에서도 중국 관련 토론이 보다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習 체제 중국 비판서 잇단 출간 = 중국이 미국과 함께 이른바 ‘G2’ 국가를 형성하면서 중국 관련 책은 끊이지 않고 나왔지만, 올 상반기 두드러지는 특징은 영토뿐 아니라 정치·경제·문화 등 다방면에 걸친 중국의 팽창을 분석하고 그 위험성을 경고하는 책이 많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호주 찰스스터트대 교수 클라이브 해밀턴의 저서들이다. 지난 4월 중국 공산당의 세계 지배 음모를 다룬 ‘보이지 않는 붉은 손(원제 Hidden Hand·실레북스)’에 이어 최근 ‘중국의 조용한 침공(원제 Silent Invasion·세종서적)’이 번역 출간됐다. 호주 출신 저자의 책이 연이어 번역돼 나온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마치 ‘가스라이팅(심리지배)’을 하듯 처음엔 경제 교류나 원조, 투자 등의 형태로 시작했다가 상당한 영향력을 갖춘 뒤로는 이를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는 중국의 전형적인 방식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밝혀낸 게 그의 책에 주목하게 하는 요인이다. 정소연 세종서적 주간은 8일 “‘중국의 조용한 침공’은 우리에겐 좀 낯선 호주를 배경으로 하지만, 대만과 홍콩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베스트셀러 2위에 오를 정도로 화제가 된 책”이라고 설명했다.

책에서 저자는 “중국 공산당은 전략적 계획에 따라 호주에 체계적으로 침투하려는 노력을 차근차근 실행해 왔다”면서 이제 정치·경제·문화 등 각 부문에도 중국 공산당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중국이 호주의 주권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는 저자의 경고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코로나19 우한(武漢) 기원설에 대한 국제 조사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중국이 호주에 대해 무차별적 무역 보복에 나섰다. 이 책도 애초 출간하기로 했던 호주의 유력 출판사가 중국 당국의 보복을 우려, 돌연 출간을 취소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나왔다. G2 가운데 유독 중국만 가혹하게 평가하는 것을 두고 인종 등의 편견에 빠진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지만, 저자의 입장은 확고하다. “미국은 중국처럼 영향력을 행사한 적도 없고, 따르지 않으면 해치겠다고 협박한 적도 없다. 우리가 민주적으로 선출한 정부 체제를 위협한 적도 없고, 정치인들을 돈으로 매수한 적도 없다.” 한마디로 중국이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 공화당 강경파인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의 ‘전체주의 중국의 도전과 미국(원제 Trump vs. China·김앤김북스)’은 중국몽(中國夢)을 내건 시진핑 체제에 대한 미국 보수의 우려를 잘 보여준다. 깅리치는 중국에 대해 “공산주의 전체주의 국가이며, 인권과 자유, 법치라는 미국의 가치와 공존할 수 없는 나라”라고 비판하면서 “미국이 역사상 상대했던 가장 강력한 경쟁자”라고 했다.

테일러 프레이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안보연구센터장의 ‘중국의 영토분쟁(원제 Strong borders, secure nation·김앤김북스)’과 로버트 D 캐플런의 ‘지리 대전(원제 Asia’s cauldron·글항아리)’은 중국의 팽창을 영토의 측면에서 다룬다. 프레이블은 중국이 1949년 건국 이후 2008년까지 23건의 영토 분쟁 가운데 17건을 타협을 통해 해결한 사실을 근거로 중국과 주변국이 물리적 충돌까지는 가지 않을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 그러나 새로 쓴 한국어판 서문에서는 “중국은 국력이 모든 측면에서 과거보다 강해지면서 더 심각한 마찰과 갈등도 감당할 수 있게 됐다”며 유보적인 자세를 취한다. 남아 있는 분쟁 지역들이 중국이 양보하기 어려운 해양 거점이라는 점도 안심하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인류학자 김인희의 ‘중국 애국주의 홍위병, 분노청년(푸른역사)’은 중국의 우경화를 뒷받침하는 ‘분노청년’ 현상을 분석했다. 시진핑 체제가 애국주의 총동원 체제를 갖추는 데 성공했다는 저자의 진단은 왜 중국이 국제사회의 비판이나 내부 반발 등에 상관없이 폭주하는지 설명해준다.

◇코로나19·홍콩 사태 이후 중국에 대한 관심 반영 = 이들 책의 첫 출간부터 한국어판 출간까지 적잖은 시차가 나타난다. ‘중국의 조용한 침공’은 2018년, ‘전체주의 중국의 도전과 미국’은 2019년, ‘중국의 영토분쟁’은 2008년, ‘지리 대전’은 2014년 처음 출간됐다. 현재의 반중 분위기가 이들 책을 재소환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은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도입을 빌미로 한 중국의 경제 보복을 통해 중국의 막무가내식 ‘힘자랑’ 외교의 실상을 경험한 바 있다. 코로나19 사태와 홍콩 민주화 시위 등과 관련, 글로벌 스탠더드와 거리가 먼 중국 당국의 대응은 다시 한 번 반중 정서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지난 5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시민 1만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대규모 반중 시위가 열린 데서 알 수 있듯, 중국의 팽창주의에 대한 우려와 견제 움직임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미국은 일본·인도·호주가 참여하는 안보협의체 쿼드(Quad)를 통해 대중 압박을 높이는 한편 경제나 인권 문제에서도 일관되게 대중 강경책을 견지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9~16일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중국의 대외정책 ‘일대일로(一帶一路)’를 견제하기 위한 반중 연대 구상을 구체화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선택 강요받는 한국…토론 활발해져야” = 중국 문제가 이제 한국의 문제가 됐다는 사실은 ‘중국의 조용한 침공’ 한국어판 서문에서도 드러난다. 해밀턴 교수는 “베이징(北京)이 국제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추진하는 전략 목표는 대미 동맹 해체이며, 중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노리는 주요 국가가 호주와 일본, 한국”이라고 했다. 이어 “호주 정부는 베이징의 괴롭힘에 맞섰지만, 한국의 정치 지도층은 지레 겁을 먹고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이란 나약한 태도를 유지한다”며 “한국 정부가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독립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위험한 도박을 하는 것으로, 중국의 진정한 본질과 야망을 깨닫지 못하면 한국도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이는 미·중 신냉전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어려운 선택에 내몰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채 1년도 남지 않은 대선 정국에서 한국의 대외 정책을 둘러싸고 치열한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8일 “‘보복을 할 수 있는 대국(중국)’과 관계를 맺는 건 우리에겐 낯선 상황”이라며 “중국과의 경제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미국의 강경한 태도를 고려할 때 이제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 접근하는 우리의 기존 외교전략을 유지하기도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한국은 경제적으로는 강국이 됐지만, 그에 걸맞은 정신적·문명적 준비는 하지 못한 미숙아 상태”라면서 “어떻게 국익을 실현하고 국제사회에 기여할지 토론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지정학적 고민을 담은 국내 저자들의 책도 많이 출간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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