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51% "성폭력, 개인이 알아서 조심해야"

이희경 2021. 6. 8.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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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들 절반은 성폭력 사건이 '개인이 알아서 조심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10명 중 3명 정도는 성희롱·성추행 피해자가 주로 여성인 이유로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명백히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군에서 성희롱, 성폭력 상황이 발생하면 상담 및 피해자 지원(보호)이 잘 될 것이라 생각한다'는 문항에 27%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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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실태 현황' 설문 결과
10명 중 4명 "軍 아닌 가해자 문제"
조직 아닌 개인 일탈로 인식 여전
26% "여성이 거부의사 안 밝혀서"
피해자 태도 문제 삼는 분위기도
7일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공군 성추행 피해자 이모 중사의 추모소에서 조문객이 조문하고 있다. 성남=허정호 선임기자
군인들 절반은 성폭력 사건이 ‘개인이 알아서 조심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10명 중 3명 정도는 성희롱·성추행 피해자가 주로 여성인 이유로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명백히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군대 내 성폭력을 조직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일탈이나 잘못으로 인식하는 병영문화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러나 국방부는 조사결과를 토대로 조직문화 쇄신이나 피해자 지원 방안을 마련하지 않았고, 결국 지난달 말 공군 부사관 성추행 피해자의 비극도 막지 못했다.

7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국방부가 지난해 10~11월 정보사 등 7곳에서 실시한 ‘성희롱 성폭력 실태 현황’ 설문조사 결과는 공군 부사관이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짐작하게 한다. 이 설문조사는 정보사 등 7개 부대 소속 군인 1492명(남성 1023명, 여성 469명)을 대상으로 양성평등정책 인식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 실시됐다.

국방부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를 막기 위해 개인이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는 질문에 평균 51%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부대별로는 777사령부가 62%로 가장 높았고, 정보사(58%), 해병1사단(49%)이 뒤를 이었다. 아울러 ‘군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은 부대 관리나 군문화보다는 가해자 개인의 문제다’라는 문항에 평균 41%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이 대부분 수직적·우월적 관계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군대에선 여전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높았다.

이런 인식은 현실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실제 이번 사건의 피해자 이모 중사는 “야간 근무를 바꿔서라도 (회식에) 참석하라”는 가해자 장모 중사의 강압적 지시에 따라 지난 3월2일 회식에 참석했다. 당시 회식은 업무와 상관없는 선임 지인의 개업 축하자리였다. 이후 회식이 끝나고 이 중사는 장 중사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다. 지시를 거부하기 힘든 위치에 있는 후임 이 중사가 ‘스스로 조심해서’ 피할 수 없었고, 당시 현장에서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지만 소용없었다.
피해자의 태도를 문제 삼는 인식도 여전했다. ‘성희롱이나 성추행이 여성에게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여성이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명백히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질문에 평균 26%(정보사·777사령부 33%, 군수사 34%, 해병1사단 32%)의 군인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이 중사가 피해사실을 신고한 뒤에도 보호는커녕 지속적으로 ‘2차 피해’를 당한 것도 이런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이 중사는 여러 명의 상사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돌아온 건 ‘살면서 한 번 겪을 수 있는 일’, ‘없던 일로 해주면 안 되겠냐’는 회유와 묵살이었다.

군에서 성폭력 피해를 인지하더라도 보호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도 적지 않았다. ‘군에서 성희롱, 성폭력 상황이 발생하면 상담 및 피해자 지원(보호)이 잘 될 것이라 생각한다’는 문항에 27%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실제 이 중사는 가해자와 즉각 분리되지 못했고 전출 요청도 즉각적으로 수용되지 못했다. 또 군인 국선변호사(공군 중위)가 선임됐지만 이 중사와의 면담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국방부는 이 설문조사를 토대로 성폭력 피해자가 2차 피해를 겪게 될 우려가 있다고 진단하며 성희롱 예방 교육,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개선 요소’로 꼽았다. 하지만 4개월 뒤 발생한 이 중사 사건에서는 피해자 지원을 위한 어떤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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