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의 정사신] 윤석열 움직임과 '개판 오 분 전'

이철영 2021. 6. 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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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정치권 등판이 초읽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그는 지난 6일 전준영 천안함생존자예비역전우회장을 대전광역시 유성구의 전 씨의 자택에서 만나는 등 보폭을 넓히고 있다. 전 회장 자택을 찾은 윤 전 총장. /뉴시스

검사 때와 달라진 윤석열의 '간 보기' 정치?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행보가 조금씩 공개되고 있다. 그의 정치권 등판도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3월 4일 검찰총장 사퇴 후 잠행하던 방식을 깨고 최근 사실상 공개 행보를 하면서다.

가장 최근 행보는 지난 6일, 현충일이다. 현충원을 찾은 그는 '조국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방명록을 작성했다. 이후엔 K-9 자주포 폭발 사고 피해자 이찬호 씨와 천안함 생존자 전준영 씨를 만났다.

윤 전 총장이 현충원을 참배하고 천안함 생존자, K-9 자주포 폭발 사고 피해자를 만났다는 소식에서 그의 국민의힘 합류도 세간의 풍문은 아닐 수도 있겠다고 보았다.

전직 검찰총장으로 정치에 뛰어드는 모양새를 고려한 탓이겠거니 생각하면서도 그의 조용한 행보나 발언은 예전 거침없었던 모습과 다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윤 전 총장은 다들 알다시피 현재 대선후보 선호도에서 1~2위를 오가고 있다. 본인은 아직 대선에 나서겠다고 직접적으로 밝히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윤석열'이라는 이름이 사람들에게 각인된 건 지난 2013년 10월 국정감사에서 한 발언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이다. 그는 당시 국정감사에서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와 관련해 "검사장의 외압이 있었고, 사건을 더 끌고 가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후 발언인 "조직에 충성하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 전 총장을 사람들은 뇌리에 각인시켰다.

윤 전 총장은 총장 재직시절인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냈다. 자의는 아니었지만 이미 대선후보로 여론조사에 이름을 올렸을 때다. 라임 사건의 축소 수사 의혹에 윤 총장은 "'중상모략'은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점잖은 단어",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엔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 박범계 의원의 "윤석열의 정의는 '선택적 정의'라고 생각한다"는 지적엔 "오히려 그것이 선택적 의심이 아니냐. 과거에는 저에 대해 안 그러셨지 않느냐"고 받아쳤다.

지난해 10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단호한 모습. /이새롬 기자

박근혜 정부에서 3년간 한직을 떠돌던 그는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이 표면화한 2016년 박영수 특검의 수사팀장으로 이름을 올리며 부활했다. 국민은 그의 등장에 환호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2017년 문재인 대통령 당선 10일 만에 고검 검사에서 서울중앙지검장, 2019년 검찰총장으로 직행했다. 그러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비리 수사로 문재인 정부, 더불어민주당과 여권 지지자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윤석열 바람'은 이렇게 불기 시작했다. 바람을 타고 그를 따르겠다고 전국적으로 조직이 만들어지며 사람이 모이고 있다. 그런데 거침없던 윤 전 총장의 현재 행보는 뜸을 들여도 너무 들인다는 느낌을 준다. 따라서 그 바람도 언제 잠잠해질지 모를 일이다. 정치권에선 그동안 이른바 '대세론'이라는 바람이 숱하게 불었지만, 바람을 이어간 사람은 손에 꼽는다.

여러 정황을 볼 때 윤 전 총장도 곧 '저는 대선에 출마합니다'라고 선언할 것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개판 오 분 전' 상황이다. 흔히 '개판 오 분 전'은 관용구로 '상태, 행동 따위가 사리에 어긋나 온당치 못 하거나 무질서하고 난잡한 상황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사용한다.

'개판 오 분 전'은 두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는 6·25 전쟁 당시 부산에서 피난민들을 위해 밥을 준비하고 밥솥 뚜껑을 열기 5분 전에 '개(開, 열 개)판 5분 전'이라고 외쳤고, 굶주린 사람들이 밥을 배급받기 위해 몰려들면서 아수라장이 됐다는 설이다.

또 하나는 씨름 경기에서 선수들이 같이 넘어졌을 때 심판이 '경기를 새로 하라'는 뜻의 개(改, 고칠 개)판이란 용어를 사용했다는 데서 유래했다. 선수들은 서로 이겼다고 주장하며 난리가 났고, 심판은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경기 재개를 준비하라는 뜻으로 '개판 5분 전'을 외쳤다는 설이 두 번째다.

두 가지 설 모두 어쨌든 난잡한 상황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정치권도 윤 전 총장의 등장을 목전에 두고 여야 막론할 것 없이 난잡한 상황인 건 마찬가지다. 주인공인 윤 전 총장의 정치권 등판을 앞두고 문득 '개판 오 분 전'이 떠오른 이유다. 그의 정치권 등판은 개(開)판이나, 개(改)판일 것이다. 다만 '개(犬, 개 견)판'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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