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약속' 지키지 못하고..하늘의 별이 된 월드컵 스타 유상철

최송아 2021. 6. 7.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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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월드컵 4강 신화 이끌고 '올스타' 선정된 멀티 플레이어
지도자로도 활발히 활동..마지막 팀 인천서는 투병 중 1부 잔류 지휘
'한일 월드컵 영웅' 유상철 전 감독 별세 (서울=연합뉴스) 2002년 한일 월드컵 영웅인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췌장암 투병 끝에 7일 숨졌다. 향년 50세. 인천 구단에 따르면 유 전 감독은 이날 오후 7시께 서울 아산병원에서 사망했다. 유 전 감독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2002년 6월 4일 저녁 부산에서 열린 월드컵 D조 한국의 첫경기 폴란 드와의 경기에서 두번째 골을 성공시킨 유상철이 환호하고 있다. 2021.6.7 [연합뉴스 자료사진] jjaeck9@yna.co.kr

(서울=연합뉴스) 최송아 기자 = 췌장암 투병 끝에 7일 오후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은 성인 국가대표로만 124경기에 출전하며 한국 축구의 대표적인 멀티 플레이어로 이름을 날린 전설이다.

1994년 울산 현대 유니폼을 입고 프로 생활을 시작하고 그해 A매치에도 데뷔한 그는 일찌감치 유럽 무대에서도 통할 만한 재목이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키 183㎝의 탄탄한 체구에서 비롯된 강철 체력은 물론 슈팅력, 투지를 두루 갖췄고, 필드 플레이어의 웬만한 위치에 설 수 있었다.

프로 첫해 수비수로 K리그 시즌 베스트 11에 선정됐고, 1998년엔 미드필더, 2002년엔 공격수로 베스트 11에 뽑힐 정도로 다양한 포지션을 훌륭히 소화했다. 1998년엔 K리그 득점왕(15골)까지 차지했다.

유상철 전 감독, 췌장암 투병 끝에 별세 (서울=연합뉴스)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7일 별세했다. 향년 50세. 사진은 2002년 6월 22일 광주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일월드컵 한국-스페인 8강전에서 히딩크 감독의 격려를 받는 유상철. 2021.6.7 [연합뉴스 자료사진] utzza@yna.co.kr

1998 프랑스 월드컵 벨기에와의 조별리그 3차전 동점골, 2002 한일 월드컵 폴란드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 추가골 등 태극마크를 달고도 굵직한 득점들을 남겼다.

특히 한일 월드컵에선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끈 대표팀의 주축으로 '4강 신화'를 이끈 뒤 히바우두(브라질), 미하엘 발라크(독일) 등과 대회 올스타 미드필더 부문에 뽑히기도 했다.

한일 월드컵 이후엔 대표팀 주장을 맡았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엔 와일드카드로 출전해 8강 진출에 기여했다.

프로 선수로는 울산 외에 일본 J리그의 가시와 레이솔과 요코하마 마리노스에서 맹활약한 그는 2006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K리거로는 울산에서만 뛰며 통산 142경기 37골 9도움을 남겼다.

'한일 월드컵 영웅' 유상철 전 감독 별세 (서울=연합뉴스) 2002년 한일 월드컵 영웅인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췌장암 투병 끝에 7일 숨졌다. 향년 50세. 인천 구단에 따르면 유 전 감독은 이날 오후 7시께 서울 아산병원에서 사망했다. 유 전 감독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사진은 2019년 11월 30일 경남 창원시 창원축구센터에서 열린 프로축구 K리그1(1부리그) 경남FC-인천유나이티드 경기에서 무승부로 1부 리그 잔류를 확정한 뒤 코칭스태프와 포옹하는 유상철. 2021.6.7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은퇴 이후 유 전 감독은 방송 프로그램 '날아라 슛돌이'에서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며 대중에 한층 친근하게 다가갔는데, 당시 지도를 받은 대표적인 선수가 한국 축구의 미래로 성장한 이강인(발렌시아)이다.

2009년 춘천기계공고에서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2011년 대전시티즌(현 대전하나시티즌)을 맡아 프로 사령탑으로 데뷔, 이듬해까지 지휘했다.

2014년부터는 울산대 감독으로 경험을 쌓은 그는 2018년 전남 드래곤즈의 부름을 받아 프로 무대에 복귀했으나 8개월 만에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2019년 5월 부임한 인천은 '축구인 유상철'이 몸담은 마지막 팀이 됐다.

최하위권을 맴돌던 인천의 1부 잔류라는 막중한 임무를 안고 매 경기 살얼음판 같은 생존 경쟁을 치러야 했다.

시즌이 막바지이던 그해 10월 황달 증세로 입원한 그는 11월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고 구단 소셜 미디어로 직접 밝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2019년 11월 30일 경남전에서 1부 잔류 확정한 뒤 유 전 감독 등 인천 선수단 [연합뉴스 자료사진]

선수 시절부터 헌신과 열정이 남달랐던 유 전 감독은 병마와 싸우며 1부 생존을 위한 경쟁도 놓지 않았다.

K리그 현장은 물론 일본에서도 경기장에 걸개가 걸리는 등 '응원 물결'이 일었다.

당시 인천의 생존 드라마는 팀을 이끄는 유 전 감독의 상황과 맞물려 더 극적으로 펼쳐졌다. 인천은 2019시즌 정규리그 최종전에서 경남 FC와 비겨 10위를 확정하며 1부 잔류를 결정지었다.

인천의 잔류가 결정된 뒤 창원축구센터 관중석에는 '남은 약속 하나도 꼭 지켜줘'라는 현수막이 걸렸는데, '1부리그 생존'에 이은 병마와의 싸움을 이겨내겠다고 다짐한 유 감독에게 힘을 싣는 인천 팬들의 메시지였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의지력을 갖고 힘들더라도 잘 이겨내겠다"던 유 전 감독은 지난해엔 요코하마 마리노스의 경기장을 방문해 응원에 감사를 전하고, 인천의 부진이 이어질 땐 전격 복귀설이 나올 정도로 건강을 어느 정도 되찾은 듯했다.

올해 들어서도 상태가 악화했다는 보도에 반박을 내놓는 등 종종 근황을 전하곤 했으나 유 감독은 끝내 마지막 하나의 약속은 지키지 못한 채 너무 일찍 하늘의 별이 되고 말았다.

song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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