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으로 얻은 아이 키우며 내 불행 치유.. 새엄마로서 행복 깨달아"

문주영 기자 2021. 6. 7.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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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영의 '새엄마, 육아일기'..의붓아들 키우며 깨달은 행복 담아

[경향신문]

신간 <새엄마, 육아일기>를 쓴 번역가 오진영씨. 박민규 선임기자
재혼으로 얻은 아이 ‘인생 로또’
SNS에 10여년 육아일기 작성
첫 만남·초교 때 얘기 보태 출간
친권 행사, 자녀 복리 위해 중요
때론 아동학대처럼 덫이 되기도
새 가족 형태 맞게 제도 개선을

국내 재혼 비중은 2019년 기준 20.6%, 결혼식을 올리는 5쌍 중 1쌍일 정도로 재혼은 이제 흔하다. 하지만 혈연으로 얽힌 가족을 ‘정상 가족’으로 보는 사회적 시선은 여전하다. 끊임없이 보도되는 의붓자식 학대 사건은 동화 <신데렐라> <콩쥐팥쥐>에 등장하는 나쁜 계모의 현대판 변주곡과 다름없다. 좋은 계모 이야기가 드문 요즘 포르투갈어 번역가로 잘 알려진 오진영씨(55)가 의붓아들을 키우며 행복을 깨닫는 과정을 책에 담아냈다. 그는 최근 출간한 책 <새엄마, 육아일기>(눌민)에서 마흔 살에 재혼으로 얻은 여덟 살 아들을 ‘인생의 로또’라고 부른다. ‘자식은 평생의 족쇄이자 십자가’라며 한평생 마음 편한 대로 살겠다던 그는 아들을 키우며 불행했던 과거를 치유하고 일상의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아들이 어릴 적 연예인들이 나오는 TV 육아 프로그램을 보다가 별안간 풀 죽은 목소리로 ‘나는 육아일기도 없어’라고 말한 적 있어요. 그 땐 당황해서 아무 말 못했는데 그날 혼자 속으로 다짐했어요. 아들에게 육아일기를 꼭 써주기로요.”

오씨는 그렇게 마음먹은 육아일기를 아들이 중학생이던 2011년부터 페이스북에 10여년간 꾸준히 썼다. <새엄마, 육아일기>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들을 바탕으로 아들과의 첫만남,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들을 별도로 써서 냈다. 그는 지난 4일 인터뷰에서 “아들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한순간이었다”고 말했다. ‘남의 자식 키운 공은 없다’며 주변에서 우려했지만 그는 아들과 한가족이 되자마자 자신에게 모든 걸 의지하는 작은 생명이 너무 예뻤다고 했다. 견뎌야 할 ‘남이 낳은 아이’가 아닌 자신의 하루를 기쁨으로 채워주는 ‘나의 아이’였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오씨에게 육아는 학창 시절의 상처를 돌아보고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는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한 후 교수가 되기 위해 브라질 상파울루로 유학갔지만 학위를 취득하지 못해 좌절과 우울의 세월을 보냈다. 한국에 돌아와 3년간 일한 잡지사에서는 권고사직을 당했다. 오씨는 “과거엔 공부 잘해서 고소득 전문직종이 돼야만 행복해질 것이라는 강박관념이 심했다”며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에 대해 얼마나 큰 오해를 하고 살아왔는지 알게 됐다”고 밝혔다.

아들이 초등 3학년 때 삐뚤빼뚤한 실 글씨로 쓴 ‘엄마 사랑해요’ 수건을 보물 1호로 간직하고, 군대 간 아들 걱정에 딸 가진 부모가 세상에서 가장 부럽다고 느낀 에피소드 등은 그가 천생 엄마임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세 살 때 헤어진 친엄마를 기억 못하는 아들이 안타까워 친엄마를 직접 찾아주고, 어릴 적 자신이 받았던 폭언과 잔소리에 넌더리가 나 아들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한번 안 했다는 ‘쿨내’ 나는 엄마다.

그는 16년간 아들을 키우는 과정에서 겪은 불합리한 친권제도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들 여권을 갱신하러 갔는데 새엄마는 친권자가 아니어서 여권 신청을 할 수 없었다”며 “친부모가 모두 돌아가신 상황에서 의붓부모와 사는 아이들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담당자가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친권 행사가 자녀의 복리를 위해 필요하지만 아동학대사건에서 보듯 오히려 덫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며 새로운 가족 형태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브라질의 유명 작가 파울루 코엘류, 포르투갈의 국민작가로 불리는 페르난두 페소아 등의 작품을 번역한 그는 최근엔 어린이책을 번역하고 있다. 그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많아졌고 실제로 새엄마, 새아빠와 행복하게 사는 아이들이 많지만 여전히 ‘내가 새엄마’라는 것을 당당히 드러내는 이들은 거의 없다”며 “나 같은 경우가 많이 알려져 새로운 가족에 대한 인식 개선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문주영 기자 moon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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