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항 이선호씨 죽음은 총체적 안전 부실 '인재'

고희진 기자 2021. 6. 7.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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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점검 중간결과 발표

[경향신문]

이선호씨 부친 “대통령·노동자 직접 만나게 해달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7일 오전 ‘중대재해 근절을 위한 긴급 비상조치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평택항에서 작업 중 숨진 이선호씨의 아버지 이재훈씨(왼쪽에서 두번째)와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노동부 “불법파견 정황”
컨테이너 고정핀 미확인,안전원 미배치, 보호장비 비지급 등
‘원청 안전조치 위반’ 무더기 적발

지난 4월 경기 평택항에서 노동자 이선호씨(23)가 작업 도중 사고로 사망할 당시 각종 안전조치가 제대로 취해지지 않았던 사실이 고용노동부의 특별점검 결과 확인됐다. 이씨의 원청회사인 동방이 안전보건업무를 위반한 것도 무더기로 적발됐다. 노동부는 7일 이씨 사망 사고와 관련해 실시한 특별점검 중간 조사 결과 브리핑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씨는 4월22일 오후 4시9분쯤 평택항 내 ‘FR 컨테이너’(천장 없이 앞·뒷면만 고정한 컨테이너)에서 화물 고정용 나무 제거 작업을 하다 지게차가 갑자기 왼쪽 벽체를 접은 탓에 발생한 충격으로 오른쪽 벽체도 함께 접히면서 그 밑에 깔려 사망했다. 노동부는 사고 컨테이너에 고정핀이 제대로 장착되지 않은 점, 중량물 취급 작업을 여러 명이 할 때 적절한 신호 또는 안내가 있어야 했으나 그렇지 않은 점, 지게차의 활용이 부적절했던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했다.

노동부는 원청회사인 동방이 해당 작업에 대한 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이씨에게 보호장구를 지급하지 않은 사실도 확인했다. 이씨의 사망은 총체적 안전관리 부실에서 기인한 인재라는 것이다.

원청회사인 동방과 이씨가 속한 ‘우리인력’ 간 계약관계가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이씨 유족 측 주장도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유족 등은 이씨의 업무가 컨테이너 정리와 상관없는 동식물 검역이었음에도 사고 당시 원청 직원이 이씨에게 나무 제거 작업을 지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규석 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은 “동방과 ‘우리인력’의 계약 관계가 불법파견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노동부에 따르면 이씨는 평택항 컨테이너 관리를 하는 동방의 하청업체 우리인력과 근로계약이 체결돼 있었음에도 실질적인 작업지시는 원청인 동방으로부터 받았다.

노동부 평택지청은 이번주 중 수사를 마무리한 뒤 책임자를 형사입건할 예정이다. 앞서 경찰은 지난 4일 동방 직원 등 5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동방의 불법파견 혐의에 대한 수사도 지속하기로 했다.

노동부는 동방 평택지사 전반에 대한 산업안전보건감독 실시 결과도 공개했다. 산재예방을 위한 안전통로 미설치 등 법 위반사항 17건을 적발해 과태료 1930만원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지난달 24일부터 해양수산부 등 관계 기관과 합동으로 평택뿐 아니라 부산, 인천, 여수·광양, 울산 등 전국 5대 항만 특별 점검과 동방 전국 지사 특별감독을 진행했다. 현재까지 컨테이너 화물 취급·운영사 22곳 중 18곳을 점검해 시정 지시 193건을 내리고 과태료 1억3000만원을 부과했다. 동방 전국 지사 특별감독은 15개 지사 중 9곳을 끝냈는데, 위법 사항 57건을 적발해 사법 조치하고 과태료 4000여만원을 부과했다.

민주노총과 이씨 유족 등은 이날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반복되는 중대재해를 막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노동자와 만나는 ‘노정교섭’을 요구했다. 이씨 아버지 이재훈씨는 “아이가 죽기 전에도, 죽고 나서도 변한 게 무엇이냐”며 “책임회피성 부실 관리감독에 제2의 이선호는 오늘도 이유도 모른 채 산업현장에서 유명을 달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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