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이어 엇갈린 강제징용 판결.. 대법과 정반대 결론

이현주 2021. 6. 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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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피해자 승소 확정한 대법에 '반기'
일본 기업 16곳 상대 소송서 '각하' 결정
"한일협정서 피해자 청구권 최종 해결"
엇갈린 하급심 판결들.. 대법서 정리될 듯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대리한 강길 변호사가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소송 선고기일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 기업들의 ‘한국 노동자들 강제동원’과 관련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해자들의 청구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1심 법원 판단이 7일 나왔다. 지난 2018년 일본 기업 측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봤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하급심이 사실상 ‘반기’를 든 것이다. 소송 제기 13년 만에 세워진 강제징용 대법원 판례가 3년도 안돼 정반대 취지의 하급심 판결을 마주한 셈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 김양호)는 송모씨 등 85명이 일본제철과 닛산화학, 미쓰비시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1인당 1억 원씩 배상하라”며 낸 손해배상 청구를 각하했다. 각하란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했을 때 본안 심리 없이 내리는 결정으로, 결과적으로는 원고패소 판결과 동일하다. 지난 2015년 5월 제기된 이번 소송은 역대 강제징용 피해 소송 가운데 최대 규모였는데, 재판부는 지난달 28일에야 열린 첫 변론기일에서 심리를 곧바로 종결한 뒤, 이날 선고를 하는 수순을 밟았다.

재판부는 “1965년 12월 발효된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청구권’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청구권협정 제2조는 “한일 양국과 국민의 재산, 권리, 이익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임을 확인한다”고 돼 있다. 재판부는 “한국 국민이 일본 또는 일본 국민(법인 포함)에 대해 갖는 개인 청구원은 청구권 협정에 의해 바로 소멸되거나 포기됐다고 할 순 없으나, 소송으로 이를 행사하는 건 제한된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재판부는 “청구권 협정 문구를 정확히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한일 협정 당시, 청구권 대상에 ‘징용된 한국인의 미수금ㆍ보상금 등 청구권’도 분명히 포함돼 있었고, 양국도 이를 인식했다”고 설명했다. 일본 식민 지배의 불법성 여부는 청구권협정 해석과 관련이 없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헌법상 국가안전보장과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국내법적으론 법률 지위에 있는 조약에 해당하는 청구권협정에 의해 소송 제기 권한이 제한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국제법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취지인 셈이다. 아울러 “청구권협정 당시,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도 포함됐다고 하기엔 일본이 무상 제공한 3억 달러가 너무 적다”는 원고들 주장도 재판부는 “현재 잣대로 판단해선 안 된다”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판결은 지난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강제징용 관련 일본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재상고심에서 ‘원고승소’ 판단을 내린 것과는 정면 배치된다. 피해자 4명이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당시 대법원은 일본 기업의 강제징용을 ‘식민지배와 직결된 반인도적 불법행위’로 규정한 뒤, “피해자들의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은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당시 권순일·조재연 대법관은 “청구권협정엔 강제징용 위자료 청구권도 포함된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이날 1심 재판부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소수의견과 결론적으로 같다”고 부연했다.

법조계에선 ‘사실상 예고된 판결’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재판장인 김양호 부장판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던 전임 재판부 판결(올해 1월)을 두고 지난 3월 말 “국제법 위반 가능성이 있어, 일본 정부에서 소송 비용을 추심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놓은 바 있다. 또, 올해 4월 21일 같은 법원 민사합의15부(부장 민성철)의 ‘위안부 피해자 2차 소송’ 각하 결정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 식민지배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에 대한 최근 하급심의 엇갈린 판결은 결국 상급심을 통해 최종적으로 정리될 전망이다. 피해자들은 즉각 항소 의사를 밝혔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대리한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가 쉽게 변경될 여지는 적다고 봐야 한다”고 내다봤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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