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소송 각하 판결, 한-일 관계 변수 되나

김지은 2021. 6. 7.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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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노역]1심 판결이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론 전면 부정
전문가들, 법원이 '외교' 고려한 "이례적 판결"
한-일 관계에 긍정적 영향 줄지는 미지수

정부가 7일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낸 소송에 제동을 건 법원의 판결에 대해 한-일 관계 등을 고려하면서 일본 정부와 협의를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판결에 대해 “관련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면서 “정부로서는 앞으로도 사법판결과 피해자 권리를 존중하고 한-일 관계 등을 고려하면서 양국 정부와 모든 당사자가 수용 가능한 합리적 해결방안을 논의하는 데 대해 열린 입장으로 일측과 관련 협의를 지속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이날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4민사부(재판장 김양호)는 강제징용 피해자 송아무개씨와 유족 등 85명이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중공업·스미세키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모두 각하했다. 재판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2조)이 “개인청구권의 완전한 소멸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이나 일본 국민을 상대로 소로써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비엔나협약(27조)를 들어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국내법적 사정”만으로 “청구권협정의 ‘불이행’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면서 청구권협정에 배치되는 발언이나 행위는 “국제법상 금반언의 원칙(禁反言·이미 표명한 자신의 언행에 대해 모순되는 행위를 할 수 없다는 원칙)에 위배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비록 1심이지만 이는 2018년 10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위자료 청구권’이어서 청구권협정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13다61381)과 배치되는 결과여서 주목된다. 당시 대법원은 일본기업인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 배상하라는 서울고법의 판결을 확정한 바 있다.

이번 판결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재판부가 ‘외교적 고려’를 한 부분이다. 재판부는 청구가 인용돼 강제집행까지 갈 경우 “국제적으로 초래될 수 있는 역효과 등까지 고려해 보면, 강제집행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질서유지라는 헌법상의 대원칙을 침해하는 것으로 권리남용에 해당해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지난 2018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뒤 일본 정부의 반발로 한-일 관계가 곤두박질쳤으며 지금껏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적극적으로 고려한 모양새다. 재판부는 설명자료에서 “(법원이) 헌법기관으로서 헌법과 국가 그리고 주권자인 국민을 수호하기 위해 위와 같이 판결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여 이런 해석에 무게를 더했다. 이와 관련해 한-일 전후보상 소송에 오랫동안 참여해 온 이상희 변호사는“대통령과 외교부가 고민해야 할 일을 재판부가 한 것”이라며 “아주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이날 판결 결과에 대해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을 그대로 따라 했다”며 “금반언이라는 일반 법리를 가지고 소를 각하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고 비판했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도 “20년 전 일본 최고재판소가 판결했던 논의와 같다”면서도 “1심이기 때문에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항소하면 (사안의) 본질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에서는 이번 판결이 한-일 관계에 특별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는 보지 않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오는 11~13일 영국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 또는 한미일 정상회의 추진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지만 “그럴 개연성은 적다”는 게 정부 관계자 설명이다. 정부에서는 이번 판결 자체가 한-일 관계 악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없다는 점에서 다소 안도하는 모양새지만, 어차피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해왔기 때문에 딱히 호재로 작용할 일도 아니라는 판단이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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