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요구하는 창의력은 '공감력'에서 출발

한겨레 2021. 6. 7.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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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의 ‘공부하면 뭐 하니’]연재ㅣ강원국의 ‘공부하면 뭐 하니’

늦은 시간 술에 취한 남자가 택시를 잡으려고 비틀비틀 차도 깊숙이 들어갑니다. 씽씽 달리는 차들은 헤드라이트를 켜고 경적을 울려대며 지나갑니다.

‘저러다 큰일 나는 것 아니에요? 좀 어떻게 해봐요.’ ‘쯧쯧 술을 적당히 마셔야지. 저게 뭐람?’ 이런저런 반응을 보이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공감능력을 타고난다고 합니다. 감성적 공감능력인 측은지심(惻隱之心),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즉 인(仁)에서 우러나오는 사람의 본성이지요. 엄마가 울면 어린아이가 따라 우는 것도, 어려운 사람을 보면 마음이 짠한 것도 그런 측은지심의 발로입니다. 그래서 맹자는 모름지기 사람은 아이가 우물에 빠지면 아이 부모가 누구인지, 나와 어떤 관계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몸을 던진다고 했습니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보는 역지사지 역량도 공감능력에 해당한다. 남의 사정이나 입장, 심정, 마음을 헤아리고 이해하는 능력 말이다. ‘역지사지’ 같은 공감능력은 학습과 경험을 통해 발달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굳이 위급한 상황이 아니어도 사람은 감정이입이 쉽게 된다고 하지요? 주변 사람의 기분에 동요하고 그들의 감정을 내게로 옮겨놓는 것 말입니다. 한 사람이 서럽게 울면 옆 사람도 눈물이 나잖아요. 왜 우는지 영문을 몰라도요. 우리 뇌에는 거울신경세포가 있어서 다른 사람의 움직임을 흉내 내고 비슷한 반응을 보이려고 한답니다. 부부가 오래 살면 닮아가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하지요.

이뿐 아닙니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 역량도 공감능력에 해당합니다. 남의 사정이나 입장, 심정, 마음을 헤아리고 이해하는 능력 말입니다. 누군가 두 손에 무언가를 들고 문을 열려고 하면 다섯 살만 되어도 딱한 처지를 헤아려 문을 열어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역지사지 능력도 타고나는 것일까요? 어느 정도는 그러하겠지만 이는 학습과 경험을 통해 발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편차도 크다고 합니다.

공동체 의식과 정의감도 공감능력입니다. 나에 갇히지 않고 나를 확장할 수 있는 능력이지요. 사람에게는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도 있지만, 자기중심적인 속성도 강하게 있습니다. 이타적이면서도 매우 이기적이지요. 서로 돕는 것이 생존에 유리한 측면이 있어 이타적이지만,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무임승차할 수 있으면 수수방관하게 됩니다.

나는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군사정권에 분노하고, 희생당하는 친구들을 보며 안타까워했지만 내 몸을 던지진 않았습니다. 일찍 군대에 갔다 왔다는 핑계로 매일 친구들과 술 마시며 성토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부끄럽지만 돌이킬 수 없지요.

학교는 과연 공감능력을 키워줄까요? 공부 못하는 친구를 불쌍히 여겨 도우려고 하나요? 힘들게 공부한 내용을 친구를 위해 공유하나요? 왕따당하는 친구의 심정을 헤아려 위험을 무릅쓰고 나서나요? 적어도 내가 중고교 다니던 시절에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물론 공감능력이 좋은 친구들이 있었지요. 그런 친구는 대체로 공부를 잘하진 못했습니다. 사람 좋다는 소리만 들었지요.

이제 이구동성으로 공감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시대가 공감능력을 요구합니다. 공감력은 창의력입니다. 사람들의 사정과 심정에 관심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사람을 위한 제품이나 서비스, 제도나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인데 말이죠.

어떻게 하면 공감력을 키울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소설을 읽으며 작중 인물에 동화되어 보는 것도 좋고, 영화나 드라마 주인공에 감정이입이 되어 보는 것도 좋습니다. 무엇보다 이런저런 일을 많이 경험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나 부모가 되어야 비로소 부모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잖아요.

대화를 나누는 것도 방법입니다. 자기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경청하는 것이죠. 지위가 높아지고 나이를 먹을수록 경청이 잘 되지 않아 공감력을 잃게 됩니다. 가르치고 규정하려 들지 말고, 상대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하고, 상대의 의중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잘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남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기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남을 이해할 수 없지요.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남보다 자신에게 더 관대하고 친절해야 합니다. 내 감정과 느낌을 존중하고, 이를 통해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감정조차 주체하지 못하고 자기 생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남의 말에 동의하고 동감하긴 어렵지 않겠습니까.

자신을 탐구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글을 쓰는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써봄으로써 감정을 조절하고, 자기 생각에 대한 생각, 즉 메타인지를 높일 수 있지요.

언젠가 술에 취해 집 근처 도로에서 헤매고 있는 나를 경찰이 발견해 집까지 데려다준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 술에 취해 차도에 뛰어드는 사람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또 과민성 대장 증세로 오랫동안 고생해온 나는, 끼어드는 차가 있으면 화장실이 급한가 보다 생각하고 넣어줍니다. 공감력이 턱없이 부족한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공감능력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강원국 ㅣ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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