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멀고 名品은 가깝다" 지르고.."오늘이 가장 싸다" 샤넬 단타

전설리 2021. 6. 7.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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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플렉스' 대한민국의 자화상
해외여행 막히자 보복소비로 풀고
자산 인플레.."부자됐다" 착각소비
2030 "명품백 하나는 누리고 살자"
SNS로 '명품 언박싱' 과시욕도 한몫
'국제호갱' 되면 어때 ~ 오늘도 뜀박질

2001년 9·11 테러 직후 미국에선 보석, 시계, 스포츠카 등 명품 소비가 가장 먼저 반등했다. 질병, 테러 등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 ‘자기애’가 강하게 발현돼 미래를 위해 저축하는 대신 명품 소비가 늘어난다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은 분석했다.

코로나19 이후 한국 사회에 불어닥친 명품 열기를 위기 시 발동되는 심리적 요인과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샤테크(샤넬과 재테크의 합성어)’라 불리는 리셀 시장 확대,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동조화, 주식·부동산·코인 등 자산 효과 등이 이와 맞물려 명품 소비심리를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샤테크족·MZ세대 가세

최근 샤넬 오픈런 줄이 길어졌다. 명품 커뮤니티 등에서 “해외에서 샤넬 가격이 올랐으니 조만간 가격 인상이 있을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기 때문이다. 명품업체들은 1년에도 4~5차례 가격을 올리고 있다. 게다가 구매 제한을 둔다. 샤넬 클래식 라인은 1인당 1년에 한 개 제품만 살 수 있다. 샤넬백 리셀 가격이 견고한 이유다.

최근 국내 명품 소비 시장이 급속도로 커진 이유 가운데 하나는 ‘환금성’이다. 제품을 구입한 뒤 언제든지 더 높은 가격에 되팔 수 있다는 믿음이다. 명품업체들이 계속 가격을 올리기 때문에 “오늘 가격이 제일 싸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재테크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샤테크’란 말이 나온 배경이다.

MZ세대가 새로운 명품 소비층으로 유입된 것도 명품 시장이 커진 이유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지난 4~5월 명품 소비자 가운데 MZ세대 비중은 45.2%에 달했다. 2019년 같은 기간(25.6%)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유튜브엔 10대와 20대 초반 인플루언서들이 올린 ‘명품 하울(구매한 물건을 품평하는 영상)’ ‘명품 언박싱(구매한 상품을 개봉하는 영상)’ 콘텐츠가 넘쳐난다.

최근 MZ세대의 소비 성향을 보여주는 키워드인 ‘플렉스(Flex: 1990년대 미국 힙합 문화에서 유래한 말로 래퍼들이 돈을 쓰며 과시한다는 뜻의 용어)’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현재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것)’ 등의 트렌드도 명품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젊은 층은 자신만 유행에서 뒤처지거나 소외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또래집단 동조화 심리가 강하다. 이른바 ‘FOMO(fear of missing out: 다른 사람은 모두 누리는 좋은 기회를 놓칠까 봐 걱정되고 불안한 마음)’ 증후군이다. 10대 사이에선 “명품을 쟁취하지 못하면 또래 집단에서 인정받기 어렵다”는 얘기도 나온다.

 끊임없이 비교하는 집단사회

팬데믹 이후 여행·취미·외식 등 평범한 일상을 누리지 못한 데 따른 보상 심리와 아파트, 주식, 코인 등 자산 가격 상승도 영향을 미쳤다. 자산 가격 상승으로 부자가 됐다는 심리가 명품 소비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해외 소비가 차단된 영향도 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평소 해외에서 명품을 사던 사람들이 백화점에서 명품을 구매하고 있다”며 “코로나19로 해외여행, 신혼여행 등이 막히자 그 돈으로 명품 소비에 나서는 사람도 늘었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사진)는 한국의 집단주의적 사회 분위기가 명품 선호 현상의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은 개인주의가 아니라 집단주의 사회로 집단에 소속돼야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에 의류와 맛집 등 유행이 빠른 편”이라며 “최근 명품 소비 열풍도 집단주의 사회 현상의 연장선에 있다”고 진단했다.

물질과 타인의 시선을 중시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곽 교수는 “한국은 외모와 물질로 사람을 비교하고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악기, 외국어, 요리 능력 등을 기준으로 중산층을 정의하는 프랑스와 달리 연봉, 아파트, 예금 등을 기준으로 중산층을 정의하는 것만 봐도 한국인이 얼마나 물질을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전설리 기자/이서영 인턴기자/일러스트=허라미 기자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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