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피해자, 日기업 상대 소송 못해"
3년전 대법원 판결 뒤집혀
당시 '소수의견'과 같은 취지
법원 "日기업 대상 개인청구권
소송으로 행사하긴 힘들어"
피해자측 "분노 금할 길 없어
바로 항소 나설 것" 반발
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판사 김양호)는 강제징용 피해자 A씨 등 85명이 일본제철, 닛산화학,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각하 판결했다. 이 사건은 강제징용 노동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여러 소송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소송이다.
재판부는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 또는 일본 국민에 대해 가지는 개인청구권은 청구권협정에 의해 소멸되거나 포기됐다고 할 수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청구를 인용할 경우 국제법을 위반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먼저 "A씨 등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에 해당한다"며 "조항에서 규정하는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해결' 등은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이나 일본 국민을 상대로 소송으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비엔나협약 27조에 따르면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국내법적 사정만으로 상호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조약에 해당하는 청구권협정의 불이행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며 "청구를 인용하는 것은 국제법을 위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A씨의 청구를 인용하는 판결이 확정돼 강제집행까지 마쳐질 경우 국제적으로 초래될 수 있는 역효과 등까지 고려하면, 강제집행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질서유지라는 헌법상 대원칙을 침해한다"고 덧붙였다.
피해자 측은 반발했다. 피해자단체 대표 장덕환 씨는 "이번 결과에 대해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 가슴을 치고 통탄할 일"이라며 "85세 어르신의 아버지가 징용에 다녀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들이 소송하는데 기가 막혀 말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바로 항소를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선고는 당초 10일로 예정돼 있었으나 오전에 오후 2시 선고로 변경돼 소송대리인들에게 통지됐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법정의 평온과 안정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해 판결선고기일을 변경했다"고 했다. 이어 "변론속행을 구하는 당사자들이 있으나 판결 결과는 민사소송법에 따라 무변론 소각하도 가능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다. 한 소송 관계자는 "당사자들에게 연락도 없이 선고를 당겨서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부터 알고 싶다"고 했다. "말문이 막힐 정도"라고 했다.
[정희영 기자 / 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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