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행복 추구하려는 욕망이 타인의 삶 파괴할수도 있어"

서정원 2021. 6. 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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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의 여왕 정유정 신작 '완전한 행복'
'7년의 밤' 등 '악의 3부작' 이은
'욕망 3부작' 첫번째 작품 출간
"주인공과 달리 불행·결핍도
행복하기 위해 필요하다 생각"
정유정(55)은 '악(惡)의 소설가'로 알려져 있다. 등단작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부터 시작해 그간 작품들 기저에 악에 대한 탐구가 있었다. '악의 3부작'이라 불리는 '7년의 밤' '종의 기원' '28'은 그 정수다. '종의 기원'은 '악은 어디에서 유래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28'은 인간이 다른 생물들을 학살할 권리가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7년의 밤'은 천하의 살인마로 지탄받는 주인공 뒤 숨겨진 진실에 대해 보여준다. 왜 이런 작품을 쓰느냐고 물으면 정유정은 이렇게 답하곤 한다. "최선의 길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길로 가는 사람들 얘기를 쓰고 싶다."

2년 만에 나온 신작 장편 '완전한 행복'은 이전과는 조금 다르다. 타고난 악인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으로 말미암아 악을 저지르는 인물이 극을 이끈다. 7일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출판사에서 만난 작가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며 "'악의 3부작'에 이은 '욕망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라고 말했다.

작품 속 주인공 신유나는 '완전한 행복'을 꿈꾼다. 그의 행복은 '무결함'에 기초하는 것으로, "행복한 순간을 하나씩 더해가면, 그 인생은 결국 행복한 거 아닌가"라는 남편 차은호에게 유나는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라고 반박한다. 그는 완전한 행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유나의 '노력' 속에 주변 사람들은 끊임없는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를 명징하게 보여주기 위해 정유정은 피해자들 입장에 선다. 소설은 남편과 언니, 그리고 딸의 시선을 교차하며 얘기를 써 내려 간다. 그간 작품들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기법이고, 특히 사이코패스인 주인공의 시점에서 쓴 '종의 기원'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내가 행복을 추구함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불행해지고 삶이 파괴될 수도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다"며 "다른 소설에서 충분히 악인의 심리를 보여줬기 때문에 이번엔 다른 목소리를 들어봤다"고 설명했다.

정유정의 '행복론'은 유나와는 정반대다. 불행·결핍·불안이 없어야 행복이라는 유나와 달리 정유정에겐 필요악이다. 그림자가 있어야 빛을 인식할 수 있듯이 이런 흠들도 모두 "인생의 요소"라고 그는 말한다. 지금 그의 행복인 '스스로를 위해 자기 삶을 사는 것' 역시 남을 위해 살았던 젊은 날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배려의 윤리' 또한 정유정 행복론의 핵심 요소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임을 인정하면서도 그는 늘 "우리에겐 행복할 권리와 타인의 행복에 대한 책임이 함께 있다"고 덧붙인다. 이런 맥락에서 정유정은 '나르시시즘'을 경계한다. 자기만이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할 때 인간은 책임 의식 없이 행복을 추구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그는 "남들과 비교해 우월한 '특별한 존재'는 없다"며 "자신 같은 사람은 자신밖에 없는 '고유한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고 설명했다.

작품은 코로나19 시기 쓰였다. 작년 3월 집필이 시작돼 올해 4월에 마무리됐다. 코로나19로 인한 고독은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다줌과 동시에 '집단 차원의 악'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했다. 힘 있는 나라들이 백신을 쓸어가는 것, 조금이라도 해가 될 것 같으면 철저하게 국경을 봉쇄하는 장면 등은 극한 상황에서의 인류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정 작가는 "'코로나'는 디스토피아였지만 의학의 발달로 유토피아가 와도 사람들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며 "인간에게 유토피아가 왔을 때 어떤 문제들이 생겨날지 쓰고 싶게 됐다"고 했다.

이처럼 현실의 일들은 꽤 자주 정유정에게 창작의 영감을 준다. 전작 '7년의 밤'과 '종의 기원' 역시 실제 사건이 모티프다. 이번 작품은 아내가 전 남편을 잔혹하게 살해한 '고유정 사건'으로부터 시작됐다. 특히 최근의 사건이므로 '재현의 윤리'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정 작가는 "최대한의 고민 끝에 최소한의 요소들만을 가져오려고 노력한다"며 "실제 사건이 던지는 '문학적 질문'과 몇 가지 설정 외 모든 것들은 나의 창작물"이라고 설명했다.

'K스릴러 대표 작가' '스릴러의 여왕' 등 별칭이 정유정에게 붙지만 그는 '이야기꾼'이 가장 좋다고 한다. "스릴러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성장소설 등 제 소설은 꽤 다양합니다. 장르는 수단일 뿐이고, 독자에게 재미있고 의미 있는 얘기를 들려주면 그만이지요. 이번 소설도 부디 잘 읽고 웃고 울며, 마음속에 깊이 남는 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서정원 기자 / 사진 =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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