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만 백신 지원에, 중국 "레드라인 시험"

베이징|이종섭 특파원 2021. 6. 7.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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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차이잉원 대만 총통(오른쪽 첫번째)이 지난 6일 타이베이 쑹산공항 접견실에서 미 상원 대표단을 접견하고 있다. 대만 총통부 제공


미국이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에 처한 대만에 백신을 지원하기로 한 것을 놓고 중국의 차이잉원(蔡英文)) 정권 흔들기를 차단하기 위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달 대만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한 후 중국이 여러 차례 백신 지원 의사를 밝혔지만, 대만은 이를 거부해왔다. 중국에서는 미 상원의원들이 군 수송기를 타고 대만을 방문한 것에 대해서도 민감한 반응이 나온다.

7일 대만 총통부에 따르면 차이잉원 총통은 지난 6일 타이베이 쑹산공항 접견실에서 태미 덕워스(민주)·댄 설리번(공화)·크리스토퍼 쿤스(민주) 의원 등 미 상원 대표단을 접견하고 “미국과 일본의 지원으로 대만이 더 많은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할 수 있게 됐고, 이것이 팬데믹과의 싸움에 큰 도움이 됐다”면서 미국의 백신 지원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한국을 방문한 미 상원 대표단이 이날 오산 공군기지에서 미 공군 C-17 글로브마스터 수송기를 타고 대만을 찾아 75만회분의 백신 지원 계획을 밝힌 데 따른 것이다.

차이 총통은 또 이날 접견에서 “한국에서 바쁜 일정을 마치고 대만에 대한 초당적 지지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대만에 들르기로 한 결정은 다시 한번 대만과 미국의 굳건한 우정을 보여준다”며 “최근 수년간 대만과 미국 관계는 ‘진정한 친구, 진정한 진전’으로 발전해왔다”고 미국과의 우의를 과시했다. 이 자리에서 태미 덕워스 상원의원은 “방역은 정치적 영향을 받아서는 안되고, 미국이 대만을 첫 백신 지원 대상에 포함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면서 “대만에 대한 백신 지원은 3명의 의원과 백악관 관료의 여러 차례 논의를 거쳐 결정된 것”이라고 백신 지원 배경을 설명했다.

앞서 대만은 지난달부터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된 데다 백신 수급에까지 차질이 생겨 이중고를 겪어왔다. 그 사이 중국이 대만에 백신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차이잉원 정부는 이를 거부해왔다. 차이 총통이 이로 인해 정치적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 일본이 지난 4일 124만회분의 백신을 지원한 데 이어 미국도 대만을 돕겠다고 나선 것이다. 린원청(林文程) 대만 중산대 교수는 “미국과 일본이 대만을 돕는 것은 우방 사회의 질서를 안정화하고 중국이 백신 외교를 통해 인도·태평양 지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막으려는 대중국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전문가들은 이 같은 움직임을 “도발적 행위”로 규정했다. 중국이 백신 지원 문제로 대만과 신경전을 벌여 온 상황에서 미국과 일본이 잇따라 대만에 백신을 지원하기로 한 것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다. 뤼샹(呂祥)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은 관영 글로벌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 상원의원들의 대만 방문은 백신 제공을 위장한 계획적이고 위험한 도발”이라며 “중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측은 미 상원 대표단이 대만 방문에 군 수송기를 이용한 것에 대해서도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군사전문가인 쑹중핑(宋忠平)은 “C-17은 미 공군에서 두 번째로 큰 전략 수송기”라면서 “미 공군 전략 수송기가 대만에 착륙한 것은 미국과 대만섬간 군사협력과 교류가 증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위안정(袁征) 중국사회과학원 미국학연구소 선임 연구원도 “바이든 정부가 대만과의 외교관계를 발전시켜 중국의 ‘레드라인’을 계속 시험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7일 정례브리핑에서 “미 의원들이 대만을 방문해 대만 지도자를 만나면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엄중히 위반했다”며 “중국은 이에 단호히 반대하며 이미 미국에 엄정 교섭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은 대만과의 어떤 공식적 왕래도 즉각 중단하고 대만 독립 분열 세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지 말아야 한다”며 “중·미 관계와 대만해협의 평화·안정을 더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을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이징|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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