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민.크리그림] 대한민국 손흥민, 토트넘 흥민쏜
[골닷컴] 처음 시작할 때 꼭지명이 필요했다. 머리를 쥐어짠 결과가 ‘크리그림’이었다. 몇 주 써보니 그럴듯해 보였다. 생각이 짧았다. 코로나19가 지웠던 국가대표팀 일정이 언젠가 되돌아온다는 생각을 왜 못 했을까? 어쨌거나 A매치의 귀가에 기분은 좋다.
5일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투르크메니스탄을 5-0으로 대파했다. 2019년 10월 10일 스리랑카전 이후 604일 만에 홈에서 치러진 대표팀 공식전이었다. 코로나19의 심술로 아직 온전한 A매치의 모습은 아니다. 티켓은 4천 명에만 돌아갔고, 육성 응원도 자제해야 했다. 방역 지침에 따라 현장 취재 활동도 크게 제한되었다. 코로나19의 심술이 여전한 가운데 대표팀의 5골 파티는 우리 모두에게 큰 위안이었다.
손흥민은 변함없이 주장 완장을 차고 풀타임을 소화했다. 날카로운 슛으로 상대 골문을 두들겼지만 골맛을 보진 못했다. 슈팅 지점은 대부분 페널티박스 라인 바깥이었다. 경기 중 손흥민은 골대와 멀리 떨어진 위치에서 뛰었다. 상대 수비수들을 자기 쪽으로 끌어내 수비 조직을 흩트리고, 측면에서 개인기로 득점 기회를 창출하거나 먼 거리에서 강한 슈팅으로 골을 노리는 플레이가 벤투호 손흥민의 주된 기능이었다. 상대의 압박이 생각보다 느슨했던 덕분에 손흥민은 비교적 편하게 공격 빌드업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이런 모습은 소속팀 토트넘 홋스퍼와는 크게 다르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손흥민은 해리 케인과 함께 팀의 득점을 책임지는 기능을 수행한다. ‘피니셔(finisher)’란 속칭처럼 손흥민은 팀의 공격 빌드업을 마무리하는 선수다. 득점 확률을 높이기 위해 최대한 골문과 가까운 위치에서 패스를 받고, 수비 시에도 역습을 대비해 비교적 높은 위치에 자리를 잡는다. 2선과 측면에서 동료들이 창출한 기회를 득점으로 연결하는 플레이가 손흥민이 해야 할 일이다.
벤투호에서 손흥민은 20경기에 출전해 3골을 기록 중이다. 토트넘의 개인 기록과 비교하면 아쉬움이 생긴다. 벤투호에서 손흥민이 토트넘에서만큼 골을 넣지 못하는 현상도 벤투 감독의 국내 지지율 하락의 원인 중 하나였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의 손흥민 활용법을 근거로 벤투 감독의 전술 역량에 의문을 품는 시선도 많았다. 부임 초기 벤투 감독은 ‘토트넘과 대표팀에서 손흥민의 득점력이 왜 다른지’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박빙 승부가 불가피한 3차 예선부터도 ‘토트넘 손흥민 vs 벤투호 손흥민’ 논란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앞선 설명처럼 두 명의 손흥민은 다를 수밖에 없다. 토트넘과 벤투호가 놓인 경쟁 상황이 다른 데다 스쿼드의 구성도 차이가 난다. 결정적으로 벤투호에서 손흥민과 동료들의 개인 역량 차이가 토트넘보다 크다. 손흥민이 더 많은 일을, 좀 더 근본적인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뜻이다. 발군의 스타가 소속팀과 국가대표팀에서 달리 뛰는 케이스는 드물지 않다. 다비드 알라바는 바이에른 뮌헨에서 풀백과 센터백으로 뛰었지만, 오스트리아 국가대표팀에서는 공격을 만드는 플레이메이커 기능을 수행한다. 벤투호 스쿼드에는 손흥민을 ‘피니셔’로만 쓰기에 버거운 측면이 있다. 손흥민은 좀 더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고, 골대에서 멀어질수록 득점 수는 자연히 줄어든다.
에이스 역할론에 관해선 의견이 나뉠 수 있다. 손흥민이 벤투호를 돕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일까 라는 질문이다. 손흥민은 벤투호의 간판스타이자 주장이다. 그 자리를 유지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직접 골을 터트려 팀을 승리로 이끄는 것, 또는 팀이 이길 수 있도록 동료들을 돕는(판을 깔아주는) 것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말할 것도 없이 전자 스타일이다. 포르투갈에서도 호날두는 과할 정도로 욕심을 내지만 결국 골을 넣어 권위를 유지한다. 손흥민은 후자를 선택하는 모양새다. 축구 인생 중 유럽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선수치곤 무척 한국적 노선이다.
다행히 벤투호는 운이 좋다. 손흥민이 다른 임무를 수행할 기량과 함께 현실을 받아들이는 배려심까지 갖춘 덕분이다. 풀타임 출전과 득점은 세상 모든 공격수에겐 본능적인 욕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군계일학의 에이스라면 어느 하나 양보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운 좋게 손흥민은 스트라이커와 플레이메이커 기능을 병행할 수 있을 만큼 클래스가 높고, 또 운 좋게 골대에서 멀어지는 플레이를 받아들일 만큼 팀을 이해한다. 팀이 성공하려면 모든 톱니바퀴가 딱딱 들어맞아야 한다. 벤투호는 최소한 에이스란 부품은 아주 잘 구비했다.
글, 그림 = 홍재민
사진 =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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