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소자들 슬픔 어루만진 서정시인 '죽음의 적막 속으로'

최재봉 2021. 6. 7.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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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수 시인이 7일 오전 12시35분 지병으로 별세했다.

그러나 이 시집 표제작에서 보듯이 시인은 죽음을 부러워하고 염원할 정도로 힘들고 절망적인 이들에게도 삶을 향한 의지와 희망의 근거가 있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2012년 시집 <적막 소리> 의 표제작에서 시인은 부모님의 산소를 찾아 홀로 소주를 마시며 적막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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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수 시인 별세..'늦깎이' 등단 뒤 시집 11권
고 문인수 시인.

문인수 시인이 7일 오전 12시35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6.

1945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만 40살이던 1985년 <심상>을 통해 늦깎이로 등단했다. 등단 직후부터 꾸준히 시집을 내기는 했지만, 그의 이름이 시단과 일반 독자들 사이에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와서였다. 특히 2006년에 낸 시집 <쉬!>와 2008년에 낸 <배꼽>, 2012년에 낸 <적막 소리> 등을 통해 그는 원숙하면서도 젊은 감각이 살아 있는 서정시의 세계를 한껏 뽐냈다. 2008년 시집 <배꼽>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문학나눔추진단 문학나눔사무국이 뽑은 ‘올해의 시’로 선정된 사실은 그의 시에 대한 문단의 평가를 보여준다.

그의 시는 무엇보다 약소자들의 아픔과 슬픔에 주목하고 그들의 처지에 공감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뇌성마비 중증 지체·언어장애인 마흔두살 라정식씨”의 빈소 풍경을 담은 시 ‘이것이 날개다’는 많은 이들의 눈물샘을 건드렸다. 빈소에 모인 동료 장애인들이 차라리 먼저 죽은 라정식씨를 부러워하며 조문한 데 이어, 시인은 사태를 이렇게 정리한다.

“입관돼 누운 정식씨는 뭐랄까, 오랜 세월 그리 심하게 몸을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 이제 비로소 빠져나왔다, 다 왔다, 싶은 모양이다. 이 고요한 얼굴,/ 일그러뜨리며 발버둥치며 가까스로 지금 막 펼친 안심, 창공이다.”(‘이것이 날개다’ 부분)

같은 시집에 실린 시 ‘만금이 절창이다’에서도 개펄에서 조개 캐는 일을 힘들게 마치고 돌아온 할머니가 조갯짐 망태를 트럭 옆 땅바닥에 내던지듯 부리며 이렇게 말한다. “죽는 거시 낫겄어야, 참말로.” 이 말을 들은 시인의 품평이 곧 시의 제목이 되었다. “참말로/ 늙은 연명이 뱉은 절창이구나, 질펀하게 번지는 만금이다.”

그러나 이 시집 표제작에서 보듯이 시인은 죽음을 부러워하고 염원할 정도로 힘들고 절망적인 이들에게도 삶을 향한 의지와 희망의 근거가 있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외곽지 야산 버려진 집에/ 한 사내가 들어와 매일 출퇴근한다./ 전에 없던 길 한가닥이 무슨 탯줄처럼/ 꿈틀꿈틀 길게 뽑혀나온다.// 그 어떤 절망에게도 배꼽이 있구나.”(‘배꼽’ 부분)

2012년 시집 <적막 소리>의 표제작에서 시인은 부모님의 산소를 찾아 홀로 소주를 마시며 적막에 대해 생각한다. 그간 숱한 사람들과 동물들의 죽음을 노래하고 고분과 폐가, 간이역처럼 스러져 가는 것들에 애틋한 눈길을 던져 온 그가 자신의 죽음을 미리 상상한 장면처럼 읽힌다.

“적막도 산천에 들어 있어 소리를 내는 것이겠다./ 적막도 복받치는 것 넘치느라 소리를 내는 것이겠다./ 새소리 매미소리 하염없는 물소리, 무슨 날도 아닌데 산소엘 와서/ 저 소리들 시끄럽다, 거역하지 않는 것은/ 내가 본래 적막이었고 지금 다시/ 적막 속으로 계속 들어가는 중이어서 그런가,”(‘적막 소리’ 앞부분)

문인수 시인은 <달북>(2014), <나는 지금 이곳이 아니다>(2015)를 비롯해 열한 권의 시집을 냈고, 대구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노작문학상, 미당문학상, 목월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장례는 대구시인협회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으로는 부인 전정숙씨와 아들 동섭, 딸 효원씨, 며느리 구승희씨 등이 있다. 빈소는 대구 파티마병원. 발인 9일 오전 9시다. (053)940-8198.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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